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시아의 문화톡톡] 백남준의 기백: 새로운 다다이즘 정신과 <다다익선>
[김시아의 문화톡톡] 백남준의 기백: 새로운 다다이즘 정신과 <다다익선>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10.04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과 비디오, 나아가 퍼포먼스를 결합한 행위예술가이자 미디어아트 예술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생전 사진 중에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끈에 매달아 질질 끌고 가는 사진이 있다. 문화이론가이자 미술비평가인 이용우가 쓴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열음사, 2000)의 표지로도 쓰인 사진인데 1975년 피터 무어가 찍고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예술가 백남준이 ‘서양’을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셉 보이스(1921-1986)와 친구이기도 한 백남준은 플럭서스 운동이라 불리는 ‘새로운 다다이즘’ 예술에 참여하며 전통 예술에 대한 ‘파괴’적인 미학으로 독일에서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전위예술의 선봉에 섰다.

백남준은 친일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이라고 불린 백낙승(1886-1956)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누나 백희득의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신재덕(1917-1987)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해방가요로 불린 <여명의 노래>를 작곡한 월북 음악가 이건우(1919- )의 영향으로 12음기법을 확립한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놀드 쇤베르크(1874-1951) 음악에 심취하였다. 백남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족사에서 [이건우]만큼 우수한 음악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암울하던 당시에도 세계 속에 열심히 코를 대고 살았으며 어린 나에게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세계에 대하여 지독히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게 1946년의 이야기인데, 오죽하면 내가 쇤베르크 연구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였을까. 그 결과 동경대학 졸업논문을 ‘아놀드 쇤베르크 연구’로 하게 된 것이다.”

 

백남준을 인터뷰한 이용우에 의하면, “백남준은 김순남과 이건우를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고 전한다. (2000:39) 해방 전후, 자본가인 아버지와는 달리 백남준은 다른 지식인들처럼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했고 쇤베르크 음악을 연구하며 1956년 독일로 유학을 간다.

 

“쇤베르크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서양음악에서의 고질적 계급을 소멸시킨 전위예술가이며 음악을 소리 개념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백남준은 쇤베르크 음악에 영향을 받은 이후에 1958년 프라이부르크 국립 음대에서 ‘우연성’ 과 침묵, 소리 지르기조차 음악으로 간주하는 존 케이지를 만나 많은 영감을 받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와 더불어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등 충격과 놀라움, 기괴함 등은 다다이즘을 계승한 예술세계를 표현했다.

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년 만에 다시 켜진 <다다익선>과 함께 열리는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아카이브 전시 중에는 이은주 예술가가 찍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는 인상적이다. 부인 구보타 시게코의 말에 의하면 백남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노란 전차 안에 스누피가 혼자 있는데 이게 바로 백남준 자신이란다. 독일 부퍼탈은 1963년 백남준이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 개인전을 연 도시이다. 미디어 아트 선구자가 처음 전시를 연 부퍼탈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태어난 곳이다.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한 독일 사회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부퍼탈의 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는 국제 노동자 계급운동의 지도자가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백남준도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국제적으로 추앙받는 비디오 예술을 창시한 전위적인 예술가가 된다.

 

이은주,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 2011, 작가 소장, 사진 김시아
이은주,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 2011, 작가 소장, 사진 김시아

고급예술을 경멸한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함께 했던 백남준이 주목한 매체는 맥루언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쿨미디어로 규정한 TV 매체이며 비디오다. 백남준은 음악을 시각화하고 시각을 음악화하는 비디오 예술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의 상징인 TV를 도구로 예술적인 조형물로 형상화한다. 설치미술로 변환한 <TV 붓다>, <TV 정원>,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등 많은 작품을 통해 비디오 예술을 발전시켰다. 매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비디오의 몸짓’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비디오 제작자의 재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 즉 장면들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 속에서 움직일 뿐만 아니라, 그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몸짓은 탈역사적이다. 그의 관심은 단순히 사건을 노래하는 것(역사적 개입)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사건들을 조합하는 것(탈역사적 개입) 또한 목표로 한다.” (빌렘 플루서, 『몸짓들:현상학 시론』, 2018:211)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다다익선>은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으로 안정상의 문제로 불이 꺼진 지 사 년 만에 다시 켜졌다. 개천절 10월 3일을 상징하는 1,003대의 TV를 탑처럼 쌓은 영상설치 작품은 모니터의 수명을 고려하여 전시 기간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하루에 두 시간만 가동된다고 한다. 아카이브 전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통해 <다다익선>의 제작 배경부터 운영과정과 복원과정, <다다익선>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작품과 영상을 만든 폴 개린의 인터뷰, 설치와 보존복원에 참여한 이정성의 인터뷰, 모니터 운영을 담당했던 안종현 인터뷰 등을 들으면 <다다익선>은 설계와 설치, 운영과 보존에 있어 수많은 사람이 협력하여 만든 미디어예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백남준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와 기술자와 함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수많은 조율을 거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진 김시아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진 김시아

<다다익선>은 크기가 다양한 1003대의 TV 모니터에서 사진과 기호가 끊임없이 변주된다. 남대문, 고려 청자 등 우리 문화재 이미지뿐만 아니라 파리 개선문이 등장하고 새, 물고기, 하트, 원, 사각 기호와 근접 촬영된 눈, 백남준과 함께했던 요셉 보이스, 샬롯 무어만, 키스 해링도 볼 수 있다. 이미지와 이미지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또 병렬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원이 꺼진 <다다익선>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사라진 껍데기일 뿐이다. <다다익선>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볼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재가동 기념 퍼포먼스가 있었던 9월 15일의 축제 분위기도 단 하루뿐이었다. <다다익선>은 조용히 천장을 향한 가장 아래 브라운관에 화면이 서서히 켜지면서 작동된다. 현재는 단지 하루에 두 시간만 영상을 볼 수 있다. 하루에 겨우 두 시간 쓸 수 있는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백남준의 예술 정신은 ‘동사’적이다. ‘명사’적으로 굳어가는 예술이 아니라 ‘동사’적으로 행동하는 살아있는 정신이다. 수많은 관람객이 오늘도 ‘홍익인간의 정신’ 개천절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다다익선>을 만나길 바란다.

 

 

·김시아 KIM Sun nyeo

파리 3대학 문학박사. 연세대 매체와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그림책에 대해 가르치고 문학과 예술, 그림책 매체를 넘나들며 글을 쓴다.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엄마』 『오늘은 수영장일까?』 등을 번역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