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안숭범의 문화톡톡] 파편화된 세대 감각의 난장- <서울대작전>과 쌍팔년도
[안숭범의 문화톡톡] 파편화된 세대 감각의 난장- <서울대작전>과 쌍팔년도
  • 안숭범(문화평론가)
  • 승인 2022.10.17 11:2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대에 따라 ‘쌍팔년도’에 대한 개념 규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전쟁 체험 세대, 혹은 베이비붐 세대에게 쌍팔년도는 1955년, 곧 단기 4288년이다. 그러나 ‘87년 체제’를 각별하게 경험한 세대, 혹은 1990년대에 20대에 이른 소위 ‘X 세대’에게는 1988년이 쌍팔년도가 된다. 전자의 쌍팔년도는 가시적인 절망이 스민 전후(戰後)의 풍경 속에서 배고픔의 감각으로 기억될 수 있다. 후자의 쌍팔년도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정치체제의 격동 속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전근대적이고 비상식적인 폭력성으로 감각된다.

<서울대작전>이라는 영화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소품같은 장면들은 후자의 의미로 호명되는 ‘쌍팔년도’를 감각하게 한다. 물론 <서울대작전>의 쌍팔년도는 ‘구시대의 낡은 것’을 비하하기 위해 동원되는 단어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의 공기를 키치적으로 각색한 후 패기만만한 주인공들의 스웩으로 덧칠한다. 물론 그 와중에 체제 전환기를 경험 중인 새로운 세대의 불균질한 내면이 상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진중한 가치판단을 거쳐 재현된 쌍팔년도는 아니지만, 희망 섞인 불안으로 점철되는 세대 감각이 감지되는 셈이다. 지금부터 <서울대작전>이 힘주어 재현한 1988년의 풍경 안에서 희망과 불안을 교차하는 순간들을 해명해보고자 한다.

<서울대작전>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강남과 상계동 사이의 상징적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시킨다. 1980년대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1980년만 하더라도 835만명 수준이었는데 1990년에는 천만 명을 훌쩍 넘기게 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8년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4이 서울에 몰리게 된다. 서울과 기타 지역 사이의 위계가 심화된 것은 물론, 서울 내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현격하게 벌어진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상계동 크루가 맞닥뜨린 서울의 충격적 변화는, 물신적 욕망을 끌어안고 높아진 성냥곽같은 아파트들로부터 감지된다. 그들은 영화 중반 과시적 국제 이벤트(올림픽)를 위해 헐려 나가던 상계동 달동네를 떠나 강남 아파트 입성의 꿈에 근접하게 된다. 그 무렵 급속한 계층 분화의 속도에 둘러싸인 채 그들이 올려다본 고층 아파트 꼭대기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뒀다는 거국적 희망(?), 경제성장률 12퍼센트라는 수치가 주는 자신감이 거기 있다. 특히 강남에 거주하던 이들 중 일부는 불어나는 자산에서 솟아나는 속물적 쾌락을 공유했을 것이다. 둘째, 그러한 국가적 비전과 타협하며 몸집을 불려 가던 서민들의 꿈, 이른 바 ‘중산층 되기’의 욕망이 거기 있다. 중산층에 이제 막 진입한 이들은 천민자본주의에 유혹에 더 시달려야 했고, 그들의 후경에서 도시 빈민들은 최소한의 인권을 무시당하기도 했다. 상계동 크루는 그 낙차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하는 신세대에 해당한다.

 

둘째, <서울대작전>은 ‘87년 체제’ 직후 구시대적인 것의 실체로서 전두환의 유산을 지우려는 태도를 담아낸다. 주지하다시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언론사를 입맛에 맞게 통폐합시키면서 강력한 검열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3S 정책(스크린, 섹스, 스포츠에 관한 유화책)을 통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서울대작전>에는 그중 ‘스크린’을 둘러싼 산업 환경이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87년부터 1988년 초까지 영화, 음반, 공연물 등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다. 그 무렵 영화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제작업과 수입업이 분리되기에 이른다. 올림픽이 개최된 9월에는, 외국 영화 직접 배급 시대가 실현된다. 영화 속 인상적인 카체이싱 장면의 출발점으로 등장한 대한극장은 그러한 영화시장 개방 분위기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잘만 킹의 <투 문 정션>은 3S 정책이 견인한 에로영화 붐의 한 표정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로보캅>과 <탑건>, <더티 댄싱>과 <라 밤바> 등이 적힌 필름통은 당시 극장가에 불어닥친 새로운 물결을 보여준다. 덧붙이면 <서울대작전> 곳곳에 등장하는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들도 당대 대중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핵심 소품에 해당한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들은 취향문화가 유통되던 통로였고, 이때부터 비디오 산업은 전성기를 향해 나아간다. ‘보통사람’ 노태우의 시대 초기도,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적 규율과 대중문화 개방화에 따른 취향의 분화가 기이한 낙차를 만들어내던 때였다.

셋째, 서민들이 ‘마이홈 시대’를 향한 노력에 충일할 때, 중산층 일각에서는 ‘마이카 시대’에 편승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1988년의 서울은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분위기 속에서 ‘서울은 세계로’라는 슬로건이 일정 부분 현실화되고 있었다. 재벌 중심의 기형적 산업 구조가 고착화되고 대외의존적 수출중심 경제의 위험성이 더 커졌지만, 많은 이들이 ‘먹고사니즘’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과소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중산층은 새로운 아비투스를 찾고 있었다. 자가용 소유는 그 중 하나였다. <서울대작전>에는 <전격 Z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는 시리즈물 ‘Knight Rider’에 대한 오마주가 빈번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격 Z작전> 속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로 등장하는 ‘키트’는 현실화 될 수 없는 꿈이었다.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벤츠, BMW도 중산층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드림카였다. 그러나 포니, 스텔라, 그랜저는 높아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데 적절한 상징물이었다. 실제로 1985년 55만대였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90년에 이르러 338만 대가 되었다.

넷째, ‘민주’, ‘자유’, ‘평화’, ‘통일’과 같은 단어들로 구성되는 거대 담론이 서서히 저물어간 자리에 소비주의로 무장한 신세대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의 X세대는 소비문화의 주체로서 특유의 존재감을 알리며 등장한다. <서울대작전>의 주인공들은 1988년 압구정동에 처음 생긴 맥도날드를 일찌감치 맛본다. ‘에어 조던 3’ 한정판을 두고 협상을 하고, 마음은 이미 LA에 가 있다. 당대 기성세대의 ‘지배적인 것’ 속에서 자기 취향에 부합하는 과거의 소품들을 골라 즐기며 올드 스쿨 문화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한 장면들은 펑키한 음악을 타고 취향과 욕망에 따라 파편화, 개별화되어가는 신세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세계화’의 바람은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지만, 이때부터 이미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의 골은 훨씬 깊어진다. <서울대작전>의 화면은 레트로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원색 계열을 과장적으로 살리고 있다. 촌스러우면서도 직설적인 이 ‘과잉’의 뉘앙스는 아버지 세대를 향한 신세대의 이중적 분열과 그때의 정서를 추억하게 한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서울대작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갖게 된 아이러니를 옮겨보고자 한다. 새로 집권한 정부는 전정권의 정치적 유산과 거리를 두고, 부정과 부패의 지점을 솎아내려는 시도를 하기 마련이다. 정도 차가 있지만, 그러한 시도는 항상 반복되어 왔다. 이 영화가 2022년 8월, 곧 정권 교체기에 개봉한 이유도 ‘대차대조’의 방식으로 반영론적 관람을 유도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런데 <서울대작전>은 전두환을 등장시키고, 희대의 사기꾼 장영자로 이해되는 캐릭터를 등장시키지만 가벼운 키치적 시대극, 지극히 표피적인 장르물로 마무리된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6국이 있던 남산으로, 당시 범람하던 외화 필름통을 배달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 영화의 패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의도가 불분명해진다. 아직 힙합 문화가 본격화되기 전임에도, X세대 주인공들은 B급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시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스웩을 시전한다. 특정 ‘코호트(cohort)’의 세대 감각과 공유된 기억을 활용하려 하지만, 힘을 준 화면들은 그저 파편화된 세대 감각의 난장으로 남겨져 버렸다.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X세대가 <서울대작전>을 보고 ‘우리의 한 시절’을 각별하게 마주했을지 궁금하다. 최소한 나는 <서울대작전> 속 1988년의 부름에 응답하기 어렵다.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국가 홍보 영문 매거진 <KOREA>에 수정을 거쳐 영문으로도 게재되고 있다.

 

글·안숭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시인.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한 바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