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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사회 리뷰...<폴: 600미터>, 어트랙션과 스펙터클로 자아내는 아찔한 쾌감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사회 리뷰...<폴: 600미터>, 어트랙션과 스펙터클로 자아내는 아찔한 쾌감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1.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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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어트랙션, 수평적 스펙터클 통해 아찔함과 간절함이 절묘히 응축된 신선한 스릴감 완성

중세 시대 화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해 정지된 그림에 사실감을 더욱 정밀하게 부여할 수 있었고, 1800년대 말 미국의 에디슨은 거기서 좀 더 발전된 형태인 키네토스코프를 발명하여 대중들이 혼자서 동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래프라는 현대적 의미의 영사기를 발명해 불특정 다수에게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이 만든 초기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런 초기의 상업(?) 영화는 그저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기차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포착하는 정도였음에도 관객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낯선 기법과 그것이 제공하는 쾌감의 신선함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관점에서는 단지 무의미한 동영상일 뿐이었던 당시의 상업 영화가 대중들에게도 지겨워질 때쯤 프랑스의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은 거기에 이야기를 가미하여 장르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네이버)

이러한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중들이 선호하는 '재미있는 영화' 즉, 영화의 오락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재미있는 영화'란 단순히 정지된 피사체를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복제한 것을 포함하며, 거기에 움직임을 가미함으로써 실재감을 높이고, 그것을 다른 관객들과 함께 보며 웃고 기함하기도 하면서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흥미로운 서사가 내재된 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폴: 600미터>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볼 만한' 오락영화라 할 수 있겠다. 그 보는 재미는 암벽 타기를 하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두 여성이 지상 최고 높이의 TV 안테나 구조물 앞에 서며 점입가경으로 흐른다.

 

헌터(버지니아 가드너)는 비극적인 사고로 남자친구를 잃어 상실감에 빠져 사는 베키(그레이스 펄튼)을 찾아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600미터의 타워에 오르는 것. 베키는 애써 거절하지만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헌터의 설득에 이 위험천만한 모험에 함께 하게 된다. 마침내 그 곳을 오르는 데 성공하는 베키와 헌터. 그러나 누구도 오르지 못한 높이를 정복했다는 짧은 쾌감도 잠시, 곧이어 아무도 예상 못한 사고가 터진다. 600미터의 녹슬어 낡은 타워에 위태롭게 붙어 있던 사다리가 맥없이 떨어져 나간 것. 그렇게 베키와 헌터는 아찔한 높이에 고립된 채 생존을 위한 숨막히는 사투를 펼친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을 보며 스크린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열차에 칠 듯한 공포감에 휩싸였다가 그것이 스크린 밖으로 지나간 후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의 모습을 통해서 느끼는 안도감. 당시 관객들은 이렇게 <열차의 도착>을 보며 마치 놀이공원의 역동적인 놀이기구를 경험한 듯한 신선한 쾌감 때문에 그리도 단순한 영화에 열광했다. 이에 근거해 톰 거닝(Tom Gunning)은 영화사 초기의 작품들을 어트랙션(attraction) 영화로 분류한 바 있다. 쉽게 말해,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나 특정 여행지의 관광명소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이용한 어트랙션으로서의 열차는 영화 <폴: 600미터>에서 지상 최고 높이의 구조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1895년에 <열차의 도착>이 관객들에게 극도의 수평적 스릴과 쾌감를 선사했다면, 2022년의 <폴: 600미터>는 관객들이 영화사 어느 지점에서도 경험한 바 없는 수직적 공포와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평론가로서 영화사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 <폴: 600미터>에는 명백히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오금 저림 고공 스릴'의 신선함이 있다. 영화 <폴: 600미터>가 주는 이 신선한 스릴감은 xR 등 가상현실이 일상화 된 미래의 영화 상영 현장에서는 아마도 지금의 관객들이 <열차의 도착>을 보며 느끼는 이해하기 어려운 쾌감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를 기준으로 할 때 이 작품이 주는 어트랙션 영화로서의 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영화사 초기의 어트랙션 영화들은 대부분은 러닝타임이 짧기에 관객들이 그것은 스크린에 재현된 '가짜'임을 알아차릴 때쯤 영화가 끝난다. 반면, 지금은 장편 극영화가 대부분 90분 이상을 넘어가고 있으므로 단순한 어트랙션만으로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유지하기에 불충분하다. 다행히 조르주 멜리에스가 영화에 불어넣은 서사라는 개념 덕분에 단순한 어트랙션 영화에 스토리가 생겨나고, 그것은 장르 문법의 발달과 함께 스펙터클로 발전한다. 그 점에서 영화 <폴: 600미터> 또한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빚진 부분이 많다. 즉, 수직으로 높이 솟은 600미터의 TV 안테나는 압도적인 높이감 외에는 낡고 녹슨 철제 구조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오래 지켜볼 만한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좌절을 딛고 당당히 일어서는 여성서사와 만났을 때는 그야말로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서사를 통해 캐릭터들이 어떻게든 살아서 내려가야 할 이유가 생기고, 그렇게 캐릭터들이 하강을 시도할 때 관객들은 그들과 함께 낙하하는 공포에 동참하며 아찔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동원되는 독수리와 드론은 이 영화의 스펙터클 구축에 힘을 싣는다. 공간적 배경이라고는 좁은 철탑 난간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등장인물들을 공격하는 독수리를 통해서 하늘을 경험하게 되고, 드론을 통해서 등장인물들 앞에 펼쳐진 발아래 세계와 연결된다. 영화 <폴: 600미터>는 이렇게 최고 높이의 TV 안테나라는 수직적 어트랙션을 통해 캐릭터들의 가슴 졸이는 사투를 그려 내고, 그들 주변을 날아다니는 비행체(독수리와 드론)를 통해 수평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낸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강력한 생존본능에 동참하게 되고, 그것은 아찔함과 간절함이 절묘히 응축된 신선한 스릴감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폴: 600미터>는 오락영화로서의 소임은 다하지만 분명 그 속에 펼쳐지는 서사는 턱없이 헐거운 게 사실이다. 초반의 신파에서 급변하는 중반의 여성들의 동지애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번 방향을 급전환하는 종반의 가족주의는 각각이 긴밀한 연결고리 없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거기에 <47미터>(2017)의 그늘을 지우지 못한 '비밀'은 다소 구태의연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폴: 600미터>는 아찔한 높이만으로도 충분히 '극장'에서 '보는 맛'이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2022년 11월 16일 개봉)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며 공연기획 '최영주의 in클래식' 상임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화분석 및 스토리 문법과 문학/서사치료 연구, 한국문화교육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영화비평 대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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