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존 덴버 죽이기>가 던지는 고민과 공감, 그리고 무력감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존 덴버 죽이기>가 던지는 고민과 공감, 그리고 무력감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27 18: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존 덴버 죽이기> 포스터

지난 11월 23일 개봉한 <존 덴버 죽이기>(아덴 로즈 콘데즈, 2019)는 자주 만나기 힘든 필리핀 영화다. 그러나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익숙해서, 국경의 벽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SNS 가짜 뉴스 이슈가 전 지구적이라는 걸 확인하며, 심각성을 더더욱 인식하게 된다. <존 덴버 죽이기>가 던지는 고민에 대해 생각해봤다.

 

- 무엇을 믿어야 할까?

처음 제목을 보고는 유명 가수 고 존 덴버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이 영화의 존 덴버는 엄마와 살고 있는 소년이다. 존은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이 이번엔 자신을 아이패드 도둑으로 몰아붙이자,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은 존 덴버의 가해 부분이 강조된 영상을 SNS에 올리고, 사이버상에서 사람들은 진위 파악은 건너뛴 채, 댓글도 달며 영상을 퍼뜨린다.

순식간에 존은 이 영화의 영어 제목 <John Denver Trending> 그래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아이패드 도둑이자 폭행 가해자로 낙인찍혀 버린다. 학교와 경찰, 시까지 진상을 밝히겠다고 나서고, 학부모까지 모인 자리에서 학생들의 주장은 엇갈린다. 피해자를 자청한 학생들은 아이패드값을 물어주면, 영상을 내리겠다고 제안하지만, 존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거부한다.

 

<존 덴버 죽이기> 스틸

<존 덴버 죽이기>는 존이 도둑이자 가해자인지를 밝혀내는 대신, 존에게 낙인을 찍은 사람들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한다. 존을 도둑이자 가해자라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은 한쪽의 입장에서 작성되고 편집된 글과 영상을 믿고,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일종의 정의감으로 또 다른 가해를 하고 있다.

녹취, 녹음, 녹화된 콘텐츠가 증거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온라인에 떠도는 것들은 누군가 일부러 만든 거짓일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접하는 수많은 정보에 대해 대중은 판단한 능력이 있을까? 진짜와 가짜 자체를 구분하기조차 어려운데, 나름의 판단을 하고, 신념으로 행동까지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무조건 믿기도, 믿지 않기도 어렵다.

 

- 관객은 방관자인가?

존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비난에 분노하고 억울해한다. 엄마에게도 미안하다. 그리고 무섭다. 자신을 알아보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거리의 사람들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자신의 억울함을 푼다 해도, 자신에게 찍힌 낙인은 과연 지워질 수 있을까?

 

<존 덴버 죽이기> 스틸

관객은 이런 존의 감정에 공감하며 무력감도 느끼게 된다. 관객은 이미 영화 초반에 문제의 영상이 촬영되기 전후 상황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에게 제시할 해결 방법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관객은 존이 무고하다는 걸 지켜본 목격자이지만, 증언할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다.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해결자보다는 방관자가 될 거라는 불안감은 무력감과 걱정으로 이어진다. 과거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고, 나름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판단하고 있지만,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됐고, 그조차 인식 못 한 건 아닐까? 게다가 영화 내내 존이 살고 있는 마을은 너무나 아름답다. 하늘과 산과 논 등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래서 존이 겪는 일들이 더 안타깝다.

 

<존 덴버 죽이기> 스틸

2022년을 마무리하며, 더더욱 열심히 기억하고, 고민해야겠다. 국경을 초월한 공감을 통해, 막연하지만 간절하게 희망을 품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민임을 인식했으니 말이다. 또 다른 존 덴버가 생기지 않는 새해를 꿈꿔본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