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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균의 문화톡톡] 젊은 청년들의 아름다운 서사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
[추동균의 문화톡톡] 젊은 청년들의 아름다운 서사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
  • 추동균(문화평론가)
  • 승인 2023.01.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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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단골로 공연되는 오페라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ème)”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로 각색되기도 한 이 작품은 예술과 가난한 삶 속에서 온갖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파리 뒷골목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묘사한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Henry Murger,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토대로 한 오페라다. La Bohème, 제목이 말해주듯 오페라 '라보엠'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이야기다.

우선 “라보엠(La Boheme)”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라 보엠(La Boheme). 이탈리아어로 La는 여성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이고 보엠(Boheme)은 ‘보헤미안 기질’이란 뜻으로 예술가 또는 세속적인 풍습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보헤미아는 동유럽 체코의 어느 지방이름으로 15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유랑민족인 집시족을 ‘보엠’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어서였다. 모든 젊은 남녀의 '사랑과 상처' 나아가 '상실'을 뜻하는 라보엠은 허름한 방에서 가난하지만 예술을 위해 모인 소외된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 그리고 아픔을 동시에 경험하는 성장통 같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라보엠은 현실감 있는 스토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전 세계는 물론이고 시대를 넘나들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푸치니의 대작이다.

푸치니의 '라보엠'은 1896년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 시대 즉,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한껏 격양된 감정을 분출하는 그야말로 감정의 날 것을 표현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등장했다. 푸치니는 동시대 사실적인 소재와 구시대의 유려함을 갖춘 감성적인 낭만주의적 멜로디로 청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본 필자는 수없이 공연되었고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라보엠 중 2022년 12월 24일 대구서구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라보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페라 라보엠이 초연되고 126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베르시모 오페라를 어떻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대구서구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라보엠은 대구서구문화회관과 상주단체인 프리소울이 협력하여 제작한 작픔이다. 특이점을 보이는 것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연극과 오페라아리아가 함께하는 이야기로 기존의 정통 오페라 라보엠과는 차이를 보이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공연은 주요 아리아를 제외하곤 전부 연극적 대사로 처리를 하고 있다. 아리아는 알고 있지만 오페라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해설에서 연출을 맡은 추동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젊은 예술가들의 삶은 어떻게 보여 줘야할까? 그리고 MZ세대의 사랑법은 어떠할까? 현대적 각색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서사를 어떻게 반영해야할지 고민을 했다. 그것이 푸치니가 바랬던 오페라 라보엠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1막은 크리스마스이브로 시작한다.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그리고 철학자 콜리네, 음악가 쇼나르가 반지하방에서 추위에 떨며 모여 있다. 그때 집주인이자 그들의 친구인 베누아가 찾아와 밀린 월세를 요구하고 전기마저 끊겨 버리다. 그들은 원고를 마치려는 로돌포를 홀로 두고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러 라이브 카페로 향한다. 친구들이 떠나고 때마침 찾아온 한 여인. 바로 미미다. 로돌프는 전기가 나갔다며 촛불을 얻으러 온 미미와의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작 라보엠에서 추위를 이기기위해 활용한 벽난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다. 현대의 집에 벽난로를 가지고 있는 집은 대저택 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근데 놀랍게도 벽난로가 아닌 캠핑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숯불그릴을 사용한 것이다. 방이 추워 조그마한 숯불그릴에 불을 피우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원작에서 늙은 노인으로 표현되고 있는 베누아를 프리소울이 올린 라보엠에서는 주인공들의 친구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누아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같이 고민하고 보헤미안을 자처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원작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4막에 다시 등장하여 주인공들에게 보헤미안은 죽었다며 소리를 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직언을 날리고 사라지는 현실적인 인물로 그리고있다. 또한 촛불을 켜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전기세도 밀려 전기가 끊기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고, 촛불이 아닌 휴대폰 불빛으로 무대를 밝히는 모습은 현대의 모습을 그대로 무대에 표현한 듯 했다. 원작에서 청순가련형의 여인으로 묘사되었던 미미는 왈가닥으로 표현하고 있다. 푸치니가 바랬던 미미의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푸치니는 그의 이상형을 미미에 투영했다라고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현재 우리주변에서 과연 청순가련형의 여인을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라보엠의 대표 아리아가 나온다. 로돌포는 미미를 마주한 순간 기적처럼 사랑에 빠진다. 당돌한 모습에도 어찌나 그리 아름다운지 단숨에 로돌포의 눈에는 미미를 향한 콩깍지가 씌워진다. 사랑에 빠져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혹은 차지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열심을 다하게 된다. 로돌포도 그렇다. 미미와 함께 있고 싶은 로돌포는 죽은 첫사랑을 닮았다는 핑계(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핑계다.)를 만들며 그녀와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 '오, 사랑스런 그대(O soave fanciulla)' 연이어 들리는 두 캐릭터의 아리아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처럼 느껴진다.

 

2막은 라이브 카페다.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미와 친구들의 시선을 끄는 이가 있었으니, 마르첼로의 옛 연인 '무제타'다. 무제타는 마르첼로를 발견하곤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요염한 자태를 아낌없이 뽑낸다. 발이 아프다는 핑계로 지금의 연인 알친도르를 속인 무제타는 마르첼로와 재회하게 된다.

2막에서는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연극적 요소인 브레히트의 서사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미미와 로돌포가 관객석을 시장삼아 돌아다니며 관객과 이야기하고, 관객 중 한명이 무대에 올라와 라이브카페의 성격에 맞게 노래를 하고 관객과 함께 놀기도 한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관객이 부르는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다. 오페라에서 트로트가 불려 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래서 아~~ 연극과 오페라 아리아가 함께하는 공연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2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아리아는 '내가 혼자 거리를 걸어가면(Quando me’n'vo)'을 부르며 옛 연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무제타의 아리아다. '라보엠'이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제타는 그저 매혹적이고 요염한 아가씨가 아닌, 사랑을 원하지만 구애의 방법을 알지 못해 서툴게 표현하는 청춘의 모습처럼 보인다. 다행히 완벽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설픈 무제타의 작전은 마르첼로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들은 다시 예전과 같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4중창은 마치 사랑의 황홀경을 그리는 듯 벅찬 감동을 전달한다.

 

3막은 몇 달 후, 병이 악화된 미미는 로돌포의 집으로 찾아오고, 마르첼로에게 로돌프의 지나친 질투와 의심에 힘들다며 토로한다. 뒤이어 잠에선 깬 로돌포 때문에 미미는 황급히 숨는다. 로돌포는 마로첼로에게 미미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때 숨어있던 미미는 기침소리를 내고 로돌프에게 들키고 만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때, 마르첼로가 무제타의 웃음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고 그들은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무제타가 다른 남자를 또다시 유혹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미미의 이야기를 듣고 로돌포에게 연인을 의심하고 질투한다고 질타하던 마르첼로도 자신의 연인 앞에서는 역시나 의심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나 남의 일이 자신에게 닥치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두 쌍의 연인들이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4중창을 부른다.

원작에서는 배경이 안페르의 관문으로 되어있고, 미미가 찾아간 곳은 무제타와 마르첼로가 운영하는 여관이다. 그러나 이번공연에서는 미미가 찾아간 곳은 1막과 동일한 로돌포와 마르첼로가 살고 있는 방이다. 제작비와 관련이 있기도 하겠지만 현시대에 안페르의 관문을 각색을 통해 시대에 맞게 표현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3막에서 보여지는 4중창 <당신의 사랑의 말을 듣고 나오던 저 집으로Donde lieta usci altuo grido d'amore>에서 1층 상하수에 멈춰서서 부르는 미미와 로돌포의 2중장과 무대센터의 2층에서 불리워지는 무제타와 마르첼로의 2중창이 합해진 4중창은 서로가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적인 사랑의 미미와 로돌포의 사랑, 격렬한 불꽃같은 무제타와 마르첼로의 사랑으로 보여지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다. 결국 미미와 로돌포,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서로 헤어지기로 한다.

 

4막의 배경은 1막과 같은 로돌포의 지하방이다. 일 년이 지난 크리스마스이브다. 평범한 일상생활은 반복되고 아직도 베누아는 월세타령이다. 미미와 헤어진 로돌포, 무제타와 헤어진 마르첼로 두 사람의 대화는 그저 추억에 잠겨 허공을 난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로돌포, 마르첼로, 콜리네, 쇼나르는 다시 모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파티를 즐긴다. 그때 다급하게 무제타가 들어온다. 무제타는 미미가 죽어가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무제타의 말에 로돌포는 미미를 찾아가고 로돌포는 힘없이 누워있는 미미를 마주한다. 간절한 친구들의 기도에도 끝내 숨을 거둔 미미를 마주한 이들은 절규와 눈물만 흘릴 뿐이다.

원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몇 개월이 지난 봄으로 묘사되었지만 이번 작품에선 1년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가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1막에 등장했던 베누아의 재등장으로 보헤미안을 생각하는 예술인과 현실을 직시하고 예술계를 떠난 친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무제타의 등장 직전까지 관객과 크리스마스 케롤을 부르고 객석으로 내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는 등의 행동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과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며 관객이 극에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서사적 기법을 다시 한 번 사용하고 있다. 오페라 라보엠의 줄거리를 아는 관객이라면 이미 미미가 등장해 죽을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과 함께 놀며 관객의 긴장을 놓게 하고 다음에 일어날 사건(미미의 죽음)의 긴장을 배로 만들고 있다. 한바탕 관객과 놀고난 후 무제타가 등장하고 죽음을 예감한 미미는 '안녕, 달콤한 아침이여(Addio, dolce svegliare alla mattina)'을 부르며 로돌프에게 작별을 전한다. 미미와 로돌프는 '다들 떠났나요? 나는 잠자는 척을 했어요(Sono andati? Fingevo di dormire)'를 부르며 좋았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행복은 찰나의 순간이라고. 결국 세상을 떠나버린 미미 그리고 그녀를 보며 로돌포는 허공에 '미미'를 연신 외친다. 죽음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피해가지 못한 젊은 남녀에게는 뜨겁고 날카로운 절규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긴장감을 유지한체로 막은 내린다.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ème)은 베리스모 시대의 낭만주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적나라한 현실을 오페라 무대 위에 펼쳐 보이려 했던 베리스모 오페라의 음악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격정, 절망, 분노 등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푸치니는 동시대 작곡가이면서도 구시대의 낭만주의적 멜로디로 청중을 매혹하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객관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서사와 낭만주의의 멜로디가 합쳐진 것이 라보엠의 매력이고 그런 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랑받아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페라 라보엠은 수십 년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다른 오페라 작품에서는 획기적인 연출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라보엠만큼은 여전히 구식연출이 대세다. 이번 대구서구문화회관에서 올렸던 프리소울의 라보엠은 연극과 오페라 아리아가 함께한다는 타이틀에 맞게 원작이 가진 힘이나 이야기하고자하는 주제를 잘 표현하며 연극과 현시대 문화의 혼종성(Hybridity)을 적절히 시도한 작품인 것 같다. 혼종성과 포스트드라마가 만계하고 있는 이 시기에 공연예술계 특히 클레식음악계에도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 일어나서 특정계층만의 음악이 아닌 관객과 함께 할 수 있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정통 클래식과 오페라가 가진 매력을 버린란 얘기는 아니다. 전통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프리소울에서 만든 푸치니의 라보엠을 접하며 왜 대작인지 그리고 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작품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방식으로도 표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출처 : 대구서구문화회관

 

 

글·추동균
문화평론가이며, 대학에서 연극과 영화를 전공했으며, 대구에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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