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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희의 문화톡톡] 관계도 구독이 되나요?
[한유희의 문화톡톡] 관계도 구독이 되나요?
  • 한유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3.01.09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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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플랫폼과 아이돌 팬덤의 방향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과 메시지를 나누고,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과 소식을 아이돌을 통해 직접 전해 듣는다. 꿈이 아니다. 어플을 내려받고 구독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한 달에 5000원. 내가 구독을 시작한 날짜는 아이돌과 나와의 ‘기념일’이 되고, 마음이 식는다면 언제든지 깔끔하게 관계를 끝낼 수 있다. 해지만 하면 되니까. 너와 나의 ‘연결’은 5000원으로 정산된다. 구독과 해지 사이, 아이돌 팬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

 

모두의 윤리, 모두의 목소리

아이돌 팬덤은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으로 여긴다. 사회적인 시선 때문이다. 성별과 나이는 제한선이 된다. 어리면 어린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여자여도, 남자여도.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말 앞에선 모두 걸림돌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냉대받는 시선으로 인해 팬덤이 더욱 공고화된다는 점이다. 동일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대감이 형성되고, 아이돌 팬덤으로서 소속감을 얻는다. 이렇게 형성된 공동체는 SNS를 통해 확산되며 힘이 생긴다. 흔히 말하는 ‘팬질’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옆에서 같이 불타오르는 타인이자, 또 다른 ‘나’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취향으로 똘똘 뭉친 팬덤은 아이돌과 팬덤 간의 유대감, 팬덤 내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나’의 확장이자 동일시하는 대상으로 작동한다.

아이돌 팬덤은 일원화된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리좀적 형태를 유지한다. 팬덤의 이미지는 팬덤 구성원들의 행위로 규정된다. 이전과 달리 누구도 아이돌 팬덤을 대표하지 않기에, 누구든지 팬덤에 오명을 씌워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개개인의 지침이 된다. 팬덤이 아이돌을 ‘고나리’하는 것처럼 아이돌 팬덤은 스스로를 검열한다. 무지하여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빠순이’가 아닌, 주체적 의지로 인한 선택을 하는 이지적 존재로서의 ‘팬덤’의 일원임을 공표하기 위해서다.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위하는 동시에, 아이돌 팬덤 자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고자 한다. 아이돌과 아이돌 팬덤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아이돌 팬덤은 기민하게 반응한다. 수많은 팬들은 일련의 사안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중 가장 ‘윤리적’인 해답에 동조한다. 이른바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다수의 개인들의 지지를 받는 주장은 아이돌 팬덤의 기본적인 스탠스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팬덤은 집단적 목소리를 획득한다. 즉,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과 아이돌 팬덤에 대한 기준점을 스스로 세우고 있고 지침에 따르고자 한다.

아이돌 팬덤이 특히 예민한 지점은 자신의 아이돌과 관련한 이슈다. 아이돌 굿즈의 질, 성상품화가 우려되는 상품, 아이돌 그룹과 협업하는 인물에 대한 논란, 과도한 스케줄 등 문제가 발생하면 팬덤은 성명문을 발표하고 집단적 행동에 나선다. 시위에 나서기도 하고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엔터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을 구성하는 멤버의 문제가 발생할 때 탈퇴를 종용하기도 한다. 팬덤은 최선의 윤리를 향해 발화하는 것이다.

 

악어새 길들이기

팬덤과 엔터사의 관계는 얼핏 악어와 악어새처럼 보인다. 멤버 한 명 당 연간 3천만원. 길게는 10년까지 연습생 생활을 통해 데뷔하는 아이돌. 최근 데뷔하는 아이돌의 멤버가 대부분 5명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는데 10~15억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아이돌 그룹이 매년 50여 개씩 데뷔하고 있고, 이 중 인기를 얻는 아이돌은 한 두 팀에 불과하다. 불확실한 잭팟.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 엔터사는 최선의 기획안을 내세운다. 성공할 수 있는 아이돌을 내놓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덕질’을 할 수 있는 아이돌을 만들어 팬덤이 스스로 조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돌을 기획하는 것이 엔터사의 몫이라면, 아이돌을 키우는 것은 팬덤의 힘이다.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위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소장용 앨범을 구매하고, 각종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스트리밍한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본인의 만족, 즉 아이돌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아이돌에 대한 활동을 독려하는 주체가 팬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를 독려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돌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자처한다. 음원정보(음원총공)팀, 아카이브팀과 같은 계정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팬들과 이를 따르는 팬들이 모여 시너지를 발휘한다. 팬덤은 아이돌을 위한 홍보팀이자, 소비자, 서포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는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서로가 아이돌을 통해 서로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만, 아이돌을 대하는 태도와 아이돌을 위하는 방식에서 이견이 발생하고 점차 더 큰 충돌이 일어난다. 갈등은 빈번해지고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다. 엔터사들은 아이돌을 유지하는 것이 높은 충성도를 지닌 팬덤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율적인 팬 활동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팬덤의 활동을 묵인해왔지만, 점차 더욱 위협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팬덤이 거대화되면서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를 지니게 된 것이다.

팬덤으로서의 소속감을 약화시키되, 팬으로서 ‘아이돌’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 ‘팬덤 플랫폼’이라는 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팬덤 플랫폼은 아이돌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고, 팬 활동을 펼칠 수 있게끔 하는 온라인 공간을 의미한다. 기존에 여러 채널로 분산돼 이뤄지던 팬 활동들이 이제는 팬덤 플랫폼으로 모인다. 팬 모집·관리부터, 공지, 자체 콘텐츠 유통, 굿즈 판매, 이벤트 예매, 그리고 팬-스타 간, 팬-팬 간 소통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팬 활동 전반이 팬덤 플랫폼을 통해 행해진다. 이제 이전의 팬들뿐 아니라 새롭게 팬덤에 진입하는 팬들이 팬 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마트폰에 팬덤 플랫폼 앱을 설치하고 그에 가입하는 것이 된다. 엔터사는 팬덤의 확장보다, ‘유지’에 승부를 건 것이다. 아이돌에게 중요한 앨범 판매량, 수많은 굿즈를 소비하는 것은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국한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팬과 아이돌과 ‘프라이빗’한 대화로,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판매하는 것이다.

 

위버스
위버스(weverse)

물론 모든 팬덤 플랫폼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weverse)는 하이브(HYBE)의 자회사인 위버스 컴퍼니에서 개발·운영하고 있다. 위버스는 팬덤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쥐기 위한 형태로 작동한다.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아티스트를 보호하며, 팬덤을 한데 결집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된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콘텐츠를 모으고, 구매할 수 있는 창구를 단일화함으로써 팬덤이 위버스 안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였다.

 

디어유 버블
디어유 버블(bubble)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 디어유(Dear U)에서 구축한 새로운 팬덤 플랫폼 ‘버블(bubble)’은 위버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팬은 아이돌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타이밍만 맞는다면) 서로 대화가 되기도 한다. 팬덤이라는 집단에게 보내는 게 아닌, 나만을 위한 메시지‘처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사 연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팬덤 ‘모두’에게 전하던 메시지가 팬 ‘개인’을 향하면서 아이돌-팬-팬덤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팬덤으로서 소속감을 느끼지 않아도, 아이돌과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독을 통해 개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경험은 팬 개인의 충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품이 된 소통, 파편화되는 관계

구독 시스템이 익숙해지면서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변모한다. 팬덤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던 아이돌의 메시지는 ‘돈’을 내야만 받을 수 있는 ‘개인적’ 메시지로 소비의 대가가 된다. 따라서 아이돌이 메시지를 남기는 횟수, 사진의 양과 질은 지불한 금액에 상회하는지 평가받는다. 같은 그룹 내의 멤버들, 다른 아이돌과의 비교를 통해 소통은 가성비를 따지게 된다. 아이돌은 이제 팬에게도 완벽한 상품이 된다. 분명 나는 나의 아이돌과 직접 소통하고 있는데, 아이돌과 나와의 관계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빗겨 나 있다. 분명 아이돌은 팬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자신이 받은 메시지 중 몇몇의 메시지를 선택해 대답하며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프라이빗’한 답장은 결국 아이돌의 눈에 띄어야만 가능하다. 도둑맞은 메시지인 셈이다. 완전한 소통이란 근원적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팬들은 매달 고정적인 금액을 납부하며, 언젠가 나의 대답에 답변해 줄 날을 기다린다. 문제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아이돌의 메시지는 점차 ‘제품’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아이돌의 자료를 재가공하여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확장된다. 이때 기본적으로 아이돌의 자료는 ‘공적’ 자원으로 공개적인 콘텐츠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구독을 통한 메시지와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유출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구독으로 얻게 되는 아이돌의 콘텐츠에 대한 공유는 불가능하고, 개인적으로만 소장해야 한다.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소재거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아이돌 팬덤의 폐쇄성을 야기한다. 아이돌 팬덤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만이 아이돌 판에 머무르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대중 또한 아이돌에 접근하기 더 어려워진다. 가볍게 접할 수 있는 공개적인 콘텐츠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돌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관심이 축적되기 전에 아이돌과의 소통을 소비재로만 인식한다면 아이돌은 상품으로만 작동한다. 즉, 팬덤으로서의 소비자가 아닌 소비자로서의 팬덤이 되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이 개인의 집합체로서만 기능할 때, 공동체로 연대하는 팬덤은 한계를 맞게 된다.

유대감과 소속감 없는 공동체는 가능한가. 어쩌면 지금의 팬덤 플랫폼은 팬덤도 ‘구독’하고 있도록 하는 건 아닐까.

 

 

글 · 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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