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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연호의 문화톡톡] 대안영상예술 1: 사이의 '틈'에서 '생성'으로서의 영상언어
[김장연호의 문화톡톡] 대안영상예술 1: 사이의 '틈'에서 '생성'으로서의 영상언어
  • 김장연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3.01.1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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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서는 대안영상예술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영상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한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어느 독자분은 '대안영상예술'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안영상예술'은 2022년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네마프) 주제전처럼  '항상 있었던, 한번도 오지 않은' 영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2015년 네마프 주제처럼 '낯설고 설레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넓게 보면 대안영상예술은 항상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존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출처 www.nemaf.net)

사전적 의미로 대안(對案, alternative)은 ‘어떤 일에 대처할 방안’이라 정의한다. 한국에서 ‘대안’이란 용어는 대안언론, 대안학교, 대안문화, 대안공간, 대안미디어와 같이 기존의 문제를 보완하고,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는 모색에서 대안이라는 용어를 차용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 전후 '대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기존의 위계 문화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평등한 새로운 체제를 제안하면서 문화 전반적으로 '대안'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사용되었다. 이 칼럼에서는 대안영상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 대안영상예술이 어떤 의미로 호출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대안영상예술 문화형성과 그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대안영상예술은 오늘날의 표준화된 체계에서 발생된 어떤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방안을 도출하려는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100년 전의 ‘대안’과 오늘날 호출하는 ‘대안’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대안을 제기하는 ‘당사자’가 누구인가?,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에서의 문제점과 새로운 방안이 무엇이냐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의미가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대안은 새로운 길을 다져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변주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의 용어에 내재된 ‘다양한 변주들’은 사회적 표준 범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체계의 문제점을 극복한 모델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대안영상은 오늘날 발생되는 문제들을 성찰하고 시각체제에서의 '대안'에 관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시각체제에서의 '대안'은 어떤 부분을 가장 고려해야 할까. 필자는 오늘날의 시각체제에서 무엇이 재현의 장에 승인되고 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을 토대로 형식, 내용, 공간, 안무, 매체로 세분화하여 앞으로 칼럼을 연재하려고 한다. 이 칼럼에서는 한정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디지털 영상예술의 영상언어들 중 기존의 형식, 내용, 공간을 해체하거나 안무, 매체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수행물들을 대안영상예술로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물들이 어떻게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고 획일화를 추동하는 자본체제에서 문화예술의 요소들이 다양하게 얽히고설키며 어떠한 새로운 문화토대를 생성해왔는지 톺아볼 것이다. 

우선 대안영상예술은 자본주의에서 배제된 다양한 영상언어를 표현 도구로 활용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이 되는 예술 요소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형성되고 시장을 확장해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재 '영화'라는 정의는 백 년의 역사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영화가 가진 가능성 중 일부만이 '영화'로 규정되고 명명된다. 규격화된다는 의미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규격화된 체계 안에서만 가능성이 발현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규격화된 영상은 '영화'의 존재밖으로 밀려나 '명명될 수 없는', '있지만 재현될 수 없는', 영화가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언어도, 존재도, 탄생과 소멸도, 역사도 없는 존재인 유령 영화화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수많은 영상들이 재현의 시각장에 들어서지 못한 채 백 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소멸되고 사장되어왔다. 이러한 환경에서 영상들은 스스로 명명함과 동시에 비슷한 모양을 찾아내고 복구하고 함께 이어 나가며 다시 재환원하는 과정을 통해 그 존재와 역사를 구축해왔다. 오늘날 이들의 공동체적 가치와 소명이 없었다면, 자본화된 영화만 제작되고 관람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샹탈 아커만(Chantal Akerman), 얀 슈반크마예르(Jan Švankmajer), 바바라 해머(Barbara Hammer), 패트리시오 구즈먼(Patricio Guzmán),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등의 수행물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안영상예술은 자본주의가 획일화한 문화체계를 극복하고 정치적 미학적 가능성들을 표출하는 일련의 수행적 과정을 의미한다. 한 수행물을 살펴볼 때, 앞서 제기한 형식, 내용, 공간, 안무, 매체는 그 의미화 과정에서 서로 뗄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나의 수행 과정에서 발생되는 결과물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샹탈 아커만, 국경 저편에서(Chantal Akerman, From the Other Side, 2002, Video installation in 3 parts(1monitor, 18monitors, 1projection) ) (출처: 샹탈 아커만 기획전 전시장면, 2021년 12월 9일~2022년 2월 5일, Marian Good Man Gallery, mariangoodman.com)

위 사진은 필자도 국내에서 <샹탈 아커만 특별전>을 기획했을 때 소개했던 샹탈 아커만의 <국경 저 편에(From the Other Side)>(2002, 103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동되는 과정과 자신의 존재를 표출하는 과정을 보면,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관객과 마주하고 있는가를 통해 한 작품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영화상영관에서는 103분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었지만, 미술 갤러리에서는 프레임들이 쪼개져 모니터 1대, 모니터 18대, 프로젝션 1대를 활용하여 동시에 재생되고 스크리닝이 되는 안무공간을 연출한다. 시간예술로 기능했던 영화가 시공간예술로 확장되어 변형된다. 영화와 미술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틈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탈주하며 하나의 새로운 수행물이 생성된다. 선형예술인 영화가 화폭처럼 펼쳐져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제안되었을 때 관객은 장편 다큐멘터리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한 눈에 보이는 프레임들, 다각도로 들리는 사운드들, 특히 산책하듯 걷는 자유로운 동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유동성, 능동성, 연결성이라는 새로운 감각들을 갖게 한다. 구경꾼으로 존재했던 경직된 관객의 신체는 작품들 사이사이를 돌며 프레임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탐험가의 신체로 전환된다.  

신석기시대부터 산업혁명전까지 생명체의 종보다 인류세(1950년부터 현재)동안 더 많은 종이 멸종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체제가 본격적으로 인간 사회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구 생명체의 멸종 속도에 가속도가 붙게 된 것이다. 영상문화라고 다를까. 대안영상예술은 물질과 물질 사이의 틈에서 생성되는 하나의 살아 숨쉬는 개체다. 그렇기에 이 칼럼은 한국에도 다양한 개체들이 살아있었다는 기록이자 자본주의체제 문화에서 다양종에 대한 분투를 알리고 있는 대안영상예술에 관한 것이 될것이다. 

 

 

글 · 김장연호
문화학 박사. 한예종 객원교수.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대외협력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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