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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후회- 흔적 그리고 내일은 없다
[최양국의 문화톡톡] 후회- 흔적 그리고 내일은 없다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0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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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그때 이랬다면, 그때 저랬다면, 하는 생각은 아무리 해 봤자 소용없다. 행동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선택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새로이 만드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금을 만들면 된다.~(후략)~”

- <투명 카멜레온>(2019년), 미치오 슈스케 -

절제의 2월이 입춘을 대보름의 강에 띄운다. 강과 달이 여백으로 흐르며 화석으로 서 있다. 달빛으로 떠 있는 설익은 봄이 <Moon River>(1961년)를 부른다.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을 갖고 강과 달이 어우러진다. 강은 흐름으로 인한 후회로 이어진다. 달은 있음으로 인한 흔적을 새긴다. 강과 달은 후회와 흔적의 시소 타기를 한다. 큰길과 골목길 시소 타기를 하며 우리의 사전에 감정과 이성을 덜어내고 더해 가는 과정으로 삶에 남겨진다.

 

후회의 / 긍정 부정 / 가정 세계 / 시간 여행

어느 여배우의 기타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후회를 만난다.

 

* 후회, Pixabay
* 후회, Pixabay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후회의 재발견, The power of Regret>(2022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후회를 유형화하여 제시한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수집된 수많은 후회를 분석한 후, 네 가지 핵심 후회로 정리하여 후회의 심층 구조를 들여다본다. 그 첫째는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안정적 인프라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기반성 후회(Foundation regrets)이다. ‘그 일을 했더라면’, ’좀 더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꾸준히 저축했더라면‘처럼 건강·자산·교육 등 우리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영역에 대한 후회다. 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준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 신체적 안녕과 물질적 안정이 없다면 다른 목표는 상상하기 어렵고 추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기반성 후회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모든 심층 구조적 후회와 마찬가지로 기반성 후회 역시 선택에서 출발한다. 기반성 후회는 피하기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되돌리기도 어렵다. 기반성 후회에 대한 수정과 회피 방법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까지 재구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둘째는 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대담성 후회(Boldness regrets)이다. ’위험을 감수했더라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더라면‘, ’그때 사업을 시작했더라면‘처럼 더 대담한 결정을 했다면 더 많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을 거라는 ‘반사실적 사고’로 인해 찾아오는 후회다. 삶에는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세월이 흐른 뒤에 붙잡은 기회보다 흘려보낸 기회를 후회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위험 부담이 따르는지의 여부와 같은 표면적인 영역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동하지 않은 것 그 자체다. 셋째로 들고 있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한 일에 대한 도덕성 후회(Moral regrets)이다. ‘옳은 일을 했더라면’,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처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찾아오는 후회다. 우리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비도덕적인 길로 유혹하는 선택에 직면한다.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항상 즉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결정은 우리를 갉아 먹을 수 있으며,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오래 지속된다. 도덕성 후회들은 특이한 범주다. 양적으로는 가장 적지만 가장 다양하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후회이지만, 집단적 측면에서는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후회이기도 하다.

넷째는 더 사랑하고 손 내밀지 못한 관계성 후회(Connection regrets)이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친구에게 먼저 손 내밀었더라면’처럼 배우자~연인~부모~자녀~친구와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후회로, 네 가지 핵심 후회 중 가장 많이 발생한다. 관계성 후회는 일체감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등한시할 때 나타난다. 이 관계들이 흐트러지거나 사라지거나 발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속적인 상실감을 느낀다. 다양한 역할 속에서 관계의 고리를 맺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며, 거절의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행동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삶의 목적을 부여한다.

이러한 네 가지 핵심 후회는 불균형적으로 함께 작동하며, 좋은 삶의 네거티브 이미지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 모습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후회에 대한 대응법을 이미 ‘발생한 후회’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예상되는 후회’, 두 가지로 나누어 알려준다.

‘발생한 후회’에 대해서는 ‘자기 노출(self-disclosure)-자기 연민(self-compassion)-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라는 3단계 과정을 제시한다. 자신의 후회를 드러내어 후회를 짊어지는 부담을 덜어주는 자기 노출, 그 후회에 대해 무력한 결점이 아닌 우리가 공유한 불완전함으로 재인식하게 해주는 자기 연민, 그리고 수치심이나 원한 없이 냉정하게 후회를 검토하고 미래의 행동을 이끄는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후회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기 거리두기이다. ‘예상되는 후회’에 대해서는 ‘후회 최적화 프레임워크’를 얘기한다. 지금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네 가지 핵심 후회 중 무엇과 연결될지 예상한 후, 핵심 후회는 최소화하고 그 외의 일은 쉽게 결정하고 적당히 만족하는 길을 걸으라고 한다.

후회는 우리가 걷고 있는 시간 여행을 잠시 멈추고 되돌아보며 부르는, 부정적 감정의 자기노래이다. 마침표로 끊어져 있거나 쉼표로 머물러 있는 노랫말 짐을 꾸려 가방에 넣고 가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를 통한 현재의 여행을 위해 들고 가는 짐은 시계열적으로 자기 유사성을 드러내며 도돌이표와 같은 순환성을 갖는다. 후회는 인간 욕구에 대한 주관적 평가이며, 욕구 단계별 또는 복합적 하강~멈춤~상승에 대한 자의식의 이면이다. 우리는 욕구의 주체로써 후회에 대한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하며, 어떤 형태를 보이는 삶의 데이터로 축적해 나가야 할까?

 

흔적의 / 4D 자국 / 신을 만난 / 존재 세계

 계수나무가 화석이 되어, 그 흔적을 담은 달빛 되어 내려온다. 달빛으로 내려온 흔적이 우리의 흔적을 만난다.

 

* 흔적, Pixabay
* 흔적, Pixabay

우리의 흔적은 인식 또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출력하는 Print 함수로 나타난다. 4D Print인 Data Print, Date Print, Disposable Print(Footprint) 및 Doomsday Print가 그것이다.

첫째, Data Print는 주체 및 객체 대상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SNS와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여, 일상에서 필요한 대부분을 처리하면서 데이터를 만들고 쌓아가며 남기는 손자국 흔적을 의미한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호모 데우스, Homo Deus>(2017년, 김영사)에서, 미래 사회의 인간은 인공지능 신기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며 ‘데이터교’라는 신흥 종교를 신봉할 것으로 예견한다. 데이터교는 최고 가치가 정보의 흐름이며, 숭배의 대상은 신이나 인간이 아닌 데이터로써, 인간은 그저 만물을 창조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한다. ‘데이터교’의 출현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빅데이터를 위한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 체계라는 밈(Meme)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밈은 정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여 ‘아무거나’ 또는 ‘가치의 평균 회귀’ 증후군에 빠져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Barry Schwartz)’을 초래하도록 한다. 다양한 정보와 선택 영역은 우리에게 자유와 행복한 만족감을 주기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하며 예상되는 후회로 인해 가치의 중립 영역을 더 선호하게 한다. 심하면 ‘선택의 역설’에서 벗어나 선택을 거부하거나 하지 못하는 ‘결정 마비 현상(Decision Paralysis)’까지 이르게 되어, 데이터에 의한 가치 결정 장애라는 흔적을 더욱 깊게 새기게 한다.

둘째, Date Print는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대상과 사건이라는 점을 연속적인 선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지속적 간격의 매듭인 경험과 역사의 시간 자국 흔적을 의미한다.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The order of Time>(2019년, 쌤앤파커스)에서,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과 고통의 원천으로 묘사한다. 시간 속 우리 자아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조직화 및 기억으로 형성되며, 우리 자아를 구성하는 현재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떼 지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역사이고 이야깃거리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는 혼돈이라기보다는 텅빈 공간을 의미하는 카오스에서 시작하며, 티탄 12신 중 하나인 크로노스(Chronos, ’시간‘)가 누이인 레아(Rhea, ’흐름‘)와 결혼하며 ’시간의 흐름‘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유한한 존재라는 기한의 개념을 깨닫게 하며, 경험하지 않은 역사도 좌표로 남긴다.

셋째, Disposable Print는 인간의 이동 및 경험 욕구 충족 지향이 지구 온난화로 연결되어, 건강한 지구 생태계의 점진적인 파괴를 남기는 발자국 흔적을 의미한다. <A Net Zero Roadmap for Travel & Tourism>(WTTC, 2021년 11월)에 따르면, 관광하기 위해 찾아가고 머무르는 우리 발자국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1%, 이동 수단인 비행기는 전체 관광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17%를 차지한다고 한다. 눈 내린 새벽에 공허를 걷는다.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이 하얀 신음을 힘겹게 토해 낸다. 걷는다는 것은 어떤 곳을 향해 가고 오기 위한 기본적 욕구 충족의 수단인데, 발자국 수와 무언가의 사라짐이 상관성을 갖게 된 현실이 슬프다. 넷째, Doomsday Print는 지구 종말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의 시간을 자정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문명 자국 흔적을 의미한다. 경향신문 기사(2023년 1월 25일)에 따르면, 미국 핵과학자회(BAS,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24일(현지시간) ‘지구 종말(둠스데이) 시계’의 초침을 파멸 시간인 자정의 100초 전에서 90초 전으로 10초 더 이동시켰다고 한다.

 

* Doomsday Clock 2023, Google
* Doomsday Clock 2023, Google

이는 BAS가 지구 종말 시각을 처음 발표한 1947년(11시 53분) 이후 가장 자정에 다가간 것이다. BAS는 2020년 이후 지구 종말 시계 초침을 파멸 100초 전으로 유지해왔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생화학 및 핵 사용 우려, 그리고 코로나 유행과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한 강도가 커지며 경고 수위를 높인 것이다. 문명을 향한 오만과 편견이 ‘첫인상(First Impressions)’과 함께 확대 재생산되는 초침은, 지금도 후진을 잊은 채 자정을 향해 정주행 중이다.

흔적은 우리가 걷고 있는 서사 여행을 동행하며 부르는 부정과 긍정의 이중창이다. 물음표와 느낌표로 이어지는 노랫말 짐을 꾸려 가방에 넣고 존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를 지나온 서사 화석은 현재의 여행을 위해 들고 가는 짐으로 엮어지며, 없고 있음의 이원성을 갖는다. 흔적은 인간 욕구에 대한 진화를 위한 나머지 값이며, 욕구 단계별 또는 복합적 하강~멈춤~상승에 대한 경험이나 역사의 단면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은 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에서 실종된 신을 만난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지 않을까?

 

후회와 / 흔적 네 유형 / ‘첫인상’은 / 내일은 없다

 달빛이 흐르는 강에서 후회와 흔적이 시소 타기를 한다. 시소 타기는 우리의 사전에 용량(Volume), 다양성(Variety), 속도(Velocity), 그리고 가치(Value)를 올린다. 용량(Volume)은 삶의 기본적 안정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저장 용량에 대한 양과 질적 측면의 크기 및 지속성을 의미하며, 기반성 후회와 Data Print(손자국 흔적)의 특성이다. 다양성(Variety)은 대상 간 서로 다른 값이나 근사치들에서 파생되거나 확연히 다른 많은 속성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삶의 시간 여행 중 햇살에 비치어 드러나는 횡단면적 모양, 빛깔, 형태 및 양식 따위의 다채로움을 의미하며, 관계성 후회와 Date Print(시간 자국 흔적)의 성격을 드러낸다. 속도(Velocity)는 유한한 시공간적 자원 제약하에서 주체와 대상 간 상대적인 흐름 관계의 크기를 선형 및 비선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써, 대담성 후회와 Doomsday Print(문명 자국 흔적)의 성질을 대표한다. 그리고 가치(Value)는 삶이 지향하는 유의미한 지푯값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의사 결정과 행동에 정체성을 제시하며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것으로써, 도덕성 후회와 Disposable Print(발자국 흔적)의 바탕색을 이룬다.

기반성 후회와 Data Print(손자국 흔적)는 최적화된 기본적 인프라 구축과 플랫폼 주도형 결정 알고리즘에 대한 분별력, 관계성 후회와 Date Print(시간 자국 흔적)는 아날로그적 관계 강화와 유한자로서 갖는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한 통찰력, 대담성 후회와 Doomsday Print(문명 자국 흔적)는 Plan-R(Risk)이나 Plan-D(Digital)에 대한 인지력과 공감력, 도덕성 후회와 Disposable Print(발자국 흔적)는 인간과 지구 생태계에 대한 건강성이라는 화두를 남긴다. 후회는 최소화 또는 최적화의 길을 향해 떠나고, 흔적은 진화의 길을 좇아 나아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큰길에 해가 돋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골목길에 해가 진다. 후회는 해가 돋는 큰길을 찾고, 골목길에 해가 지며 흔적을 남긴다.

 

* 골목길 일몰, Google
* 골목길 일몰, Google

하루를 마감하는 오늘의 세상 풍경은 N극화된 후회와 양극화된 흔적으로 그려진다. 우리의 후회와 흔적을 위한 오늘의 ‘첫인상(First Impressions)’은 윤동주(1917년~1945년)의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 <내일은 없다-어린 마음이 물은>(1934년), 윤동주 -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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