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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석연찮은 대답-<교섭>과 <수리남>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석연찮은 대답-<교섭>과 <수리남>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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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스틸컷.
'교섭' 스틸컷.

한국영화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수리남>(2022)은 남아메리카 북부의 낯선 나라 수리남, 임순례 감독의 <교섭>(2023)은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다.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 한국인이 극소수인 나라와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국적인 환경과 풍광이 관객들의 관심을 끈다. 남아메리카의 밀림,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은 한국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실화를 각색한 것도 공통점이다. 다만 <수리남>은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과 인물, <교섭>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명 사건을 소재로 한다. 액션의 스케일과 스펙터클도 부족할 게 없다. 여기에 <모가디슈>(2021)와 <카지노>(2023)까지 고려하면,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영토가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의 확장이 작품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관객으로서는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 공간, 스펙터클, 액션의 스케일이 관객을 설득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영화를 포함한 서사물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나아가 관객과 성공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인물의 행동과 사건 전개가 인과관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기본 조건일 것이다. 스토리는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설명하고, 플롯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품의 기반으로 삼는다. 스토리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플롯은 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 이유와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모든 영화에는 두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확실하지 않으면,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섭' 스틸컷.
'교섭' 스틸컷.

<교섭>은 2007년 국내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사건을 다룬다. 외교적, 종교적으로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이다. 임순례 감독은 논란을 피하고자 이와 관련된 내용을 최소화한다. 사건의 발단이 된 선교단 납치는 프롤로그에서 잠시 다룰 뿐이다. 또 <교섭>은 권선징악의 주제와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공포에 떠는 혹은 핍박받는 인질의 모습도 단편적으로만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탈레반을 악의 무리로 인식하거나, 인질에 대한 감정이입을 할 틈이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설정은 대중영화로서 모험이지만, 임순례 감독으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교섭>은 외교관 재호(황정민)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의 인질 구출 작전에 초점을 맞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외교부에서 파견된 재호는 원칙주의자, 대식은 임기응변을 중시하는 현장 중심주의자이다. 하지만 재호와 대식은 어느 순간 일심동체가 되어 구출 작전을 시작한다. 그런데 <교섭>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재호와 대식은 왜 목숨을 걸고 인질을 구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순례 감독은 언론인터뷰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건 기본적인 의무”라고 밝혔다. 감독의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인터뷰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나?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다. 관객들은 국가의 의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섭' 스틸컷.
'교섭' 스틸컷.

<교섭>에는 몇 가지 딜레마가 있다. 우선 탈레반의 성격이다. <교섭>은 테러범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탈레반의 역할과 비중이 크지 않다. 인질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안타고니스트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모가디슈>와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모가디슈>에서 한국의 외교관과 정보 요원은 대사관 직원과 가족을 데리고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모가디슈>에서는 북한 외교관과 반란군이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고, 그들과의 관계는 수시로 변화한다. 그로 인해 갈등이 첨예화되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사건 전개가 역동적이다. <교섭>에서는 탈레반의 존재가 일방적이고 고정적이다. 게다가 그들과는 대화조차 금지되어 있다(하지만 재호는 마지막에 탈레반과 담판을 한다). 원천적으로 서사가 평면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교섭>은 재호와 대식의 갈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런데 재호와 대식은 중반 이후 슬그머니 의기투합한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재호의 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외교관으로서, 공무원으로서 한국인 인질을 구출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니까 재호와 대식이 한 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된 수순이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재호와 대식의 관계와 행동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실화의 결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사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안에서 재호와 대식이 목숨을 걸고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건이 필요하다. <교섭>은 대식의 상처를 플래시백으로 슬쩍 보여준다. 하지만 대식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 과거 장면이 그의 내면을 온전히 설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재호와 관련해서는 이마저도 없다. ‘국가의 의무’라는 선언만 깃발처럼 펄럭인다. 그래서 제1 프로타고니스트인 재호의 행동과 대사는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감독의 설명이나 인물의 대사가 아니라 영화 속 사건을 통해 재호와 대식의 행동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수리남' 포스터.
'수리남' 포스터.

<수리남>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민란의 시대>(2014), <공작>(2018) 등 굵직한 영화들을 선보였던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이다. 수리남이라는 남미의 낯설고 먼 나라가 배경인 것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수리남>이 공개되면서 영화의 소재이자 실존 인물인 조봉행의 행적과 그의 검거 및 사망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수리남>은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2013)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여주인공 송정연(전도연)은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원석을 운반하는데, 그것이 사실은 마약이었다. 그런데 가이아나는 <수리남>의 수리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이며, 송정연이 연루된 마약 밀수 사건은 조봉행이 저지른 짓이다.

마약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유사하다. 마약 생산, 유통, 판매 관련 인물과 검찰(경찰) 혹은 정보기관의 대립 구도가 기본 설정이다. 즉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한 축을 이루고, 마약 관련 조폭들이 대립 축을 형성한다. 물론 세부 설정은 조금씩 다르다. <마약왕>(2018)은 마약왕 이두삼의 일대기이며, <독전>(2018)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앞세워 아시아 마약 시장까지 시야를 확대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의도하지 않게 마약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한 여성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다. <사생결단>(2006)과 <마린보이>(2008)에서는 마약 조직원으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수리남>은 장점이 많은 영화이다. 범죄, 스릴러, 액션물에 필요한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돼 있다. 남미의 이국적인 풍광과 사실적인 액션 장면, 개성적인 인물과 다양한 대립 세력 사이의 복잡한 갈등 구도는 흥미를 자아낸다. 그런데 <수리남>은 강인구/최창호와 전요환의 갈등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강인구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물론 강인구는 교도소에서 나온 후 국정원 팀장 최창호와 거래를 한다. 5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전요환 검거 작전에 합류한다. 5억 원은 강인구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이며, 한국에 돌아가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이다. 그렇다면 강인구가 전요환과 사투를 벌이는 이유는 ‘돈’이 되어야 마땅하다.

 

'수리남' 스틸컷.
'수리남' 스틸컷.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의구심이 든다. 강인구는 정말 ‘돈’만을 노리고 죽음의 정글에 뛰어든 것일까? 선금 2억 원을 집에 부쳤다면, 강인구의 아내가 힘들게 김밥집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인구는 그 돈을 받기는 한 것일까? 그래서 ‘돈’ 이외에 정의, 복수, 가족, 애국심과 같은 단어들이 자꾸 떠오른다. <수리남>이 ‘강인구가 왜?’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에서 강인구는 최창호에게 “애들에게 아빠가 국정원과 작전을 했다고 말해도 되죠?”라고 묻는다. 이 대사는 맥락상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이며, 강인구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 강인구는 국정원이 제공하기로 한 보너스를 사양한 터이다.

전요환은 악랄한 마약 밀매업자이다. 따라서 그를 제거하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이다. 전요환은 강인구의 친구 응수를 죽인 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인구와 전요환의 대결은 정의와 불의가 맞붙는 강인구의 복수 서사가 된다. 그런데 정작 강인구와 응수의 사업을 망친 장본인은 최창호이다. 최창호가 전요환을 체포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렸고, 강인구는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이 지점에서 대립 구도가 살짝 뭉개진다. 강인구가 돈 때문에 최창호와 손을 잡을 수는 있다. 그런데 국정원 미주팀장 최창호는 돈 이외에 애국심을 내세워 강인구를 설득한다. <수리남>은 또 강인구가 얼마나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는지, 그들이 얼마나 착한 가족인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수리남' 스틸컷.
'수리남' 스틸컷.

그렇다면 돈, 정의, 복수, 가족, 애국심 중에서 어느 것이 강인구가 전요환과 대결하는 진짜 동기인가 혹은 가장 중요한 이유인가. 복수 모티브는 영화 중간에 거의 언급되지 않으니 생략한다고 해도(최창호는 교도소에서 강인구에게 죽은 응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전요환의 짓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강인구의 눈이 잠깐 붉어질 뿐이다), 돈을 벌러 머나먼 수리남에 온 강인구가 정의의 투사로 변하는 이유와 과정은 석연치 않다. 또 <수리남>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강인구의 아버지와 중남미 정글에 남은 강인구의 행적을 비교함으로써 가장의 무게를 강조한다. 그래서 강인구가 목숨을 건 모험을 선택한 진짜 동기 혹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이유가 너무 많으면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범한 인물이었던 강인구가 액션 히어로가 되는 과정의 인과관계가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교섭>과 <수리남>은 한국 액션 영화의 영토를 확장한 작품들이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최근 국내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 가운데 소재의 특이함, 감독의 연출력과 변신, 배우의 스타성, 연기력 등 여러 측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기존의 국내 액션 영화들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고, 인물과 배경 등에서도 새로운 점이 많다. 연출이나 연기 등 전체적인 완성도도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교섭>과 <수리남>은 주인공의 행동과 사건 전개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일정 부분 한계를 노출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유를 제시하거나 혹은 이유가 너무 많으면 이유가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섭>과 <수리남>은 한국 액션 영화의 지평을 넓힌 화제작이지만, 서사 전개의 관점에서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아쉬운 작품들이다. <영화평론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캡처

 

 

글: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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