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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통영에서의 하루(2022)>라는 일상이 치유가 되다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통영에서의 하루(2022)>라는 일상이 치유가 되다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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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회 초년 시절을 함께했던 두 여성이 몇 년이 흐른 후 통영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며 위로와 치유를 받게 된다는 영화 <통영에서의 하루> (선연희 각본, 한경탁 감독)는 소소한 일상이 편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경탁 감독도 인터뷰에서 "(통영의) 골목길, 가로수, 소소하지만 디테일한 일상적 그림들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자평한다. 일상과 치유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어라면 감독이 의도한 대로 담백한 영화 스타일로 어울리게 담겼다. 

 

치유의 공간, 통영
치유의 공간, 통영

이미도와 유인영 배우의 이미지가 완성한 영화 속 두 여성

20대를 함께 보낸 희연(유인영)과 성선(이미도)은 뮤지컬 기획을 함께했던 직장동료였다. 희연은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아갔고, 성선은 어느 날 갑자기 고향 통영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서로 수년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이제 3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이 두 여성의 삶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되어있다. 성공 가도로 앞만 보고 달렸던 도회적인 희연, 주부와 엄마로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통영 아줌마 성선.

뮤지컬 기획, '순신'으로 순조롭게 성공적 경력을 쌓아가는 희연의 성취는 영화 도입부에 친절하게 묘사된다. 한때는 잘나가던 뮤지컬 기획팀장이지만 지금은 저조한 실적으로 권고사직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성공과 실패의 부침은 다소 장황하다. 더 압축되었어야 했다. <주먹이 운다>(류승완, 2005)의 태식이 한때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로 잘 나가는 복서였다는 것이 은메달이라는 소품 하나에 효과적으로 압축되는 것처럼. 서사의 핵심은 ‘앞만 보고 달리다가 갑자기 멈춘 직장인이 모두 그러하듯 망연자실한 허망함으로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보니 문득 덕수궁 돌담길의 추억을 나눈 성선이 그립다. 통영으로 귀향한 성선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니까.

희연은 통영행 고속버스를 탄다. 몇 년 만에 재회한 희연과 성선은 서먹하다. 낯선 자와 서먹한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도 흥미롭지만 가장 소중한 추억을 나눈 절친 사이가 낯설어진 곳에서 시작하는 영화 서사구조도 흥미롭다. 이 둘의 관계부터가 풀어야 할 실타래로 던져졌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서먹한 긴장감은 '통영에서의 하룻밤'을 위한 단단한 밑돌이 된다. 그리고, 이미도와 유인영 배우의 기존 이미지가 적절하게 소구되어 발생하는 화학작용은 이 영화에서 매우 영리하게 사용된다. 그동안 배우 유인영이 성공한 차가운 도시 여자의 이미지였다면 이미도는 순박하고 인간적인 이미지였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두 배우가 연기한 화연과 성선의 개인사가 생략되었어도 관객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데 있어서 전혀 공백을 느끼지 않는다. '엄마의 개인 생활'이라는 인스타 콘텐츠로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이미도는 엄마의 역할과 자아를 함께 지키는 이미지까지 장착하고 있어서 모성과 아내라는 자리에서 만들어가는 일상이 자아실현의 일부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희연보다 몇 년 먼저 치유와 일상을 결합한 삶을 살아가는 이미도의 성선은 유인영의 희연에 치유를 위해 손을 내민다. 영화 포스터에서도 이런 점이 잘 묘사되어 있다.

 

통영에서의 하루 포스터
<통영에서의 하루> 포스터

포스터 상단 부분에서 통영의 한려수도를 향해 눈을 감고 있는 희연과 하단에서 그런 희연을 바라보듯 따뜻한 눈매로 위를 보고 있는 성선의 이미지는 필터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조명과 색감으로 연출된다. 두 여성의 우정과 오해와 화해의 과정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덕수궁 돌담길과 통영: 마른 꽃 같은 기억과 치유의 공간

영화를 증상에 관한 영화와 치유에 관한 영화로 나눠본다면, 이 영화는 치유의 영화다. 영화 속 두 인물과 함께 관객도 함께 공감하며 치유의 과정을 함께 겪게 된다. 그런 영화가 있다. 주인공과 함께 치유되는 영화, 예컨대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2018)를 통해 관객은 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과 함께 건강한 음식을 통해 휴식과 치유를 경험한다. <사랑 후의 두 여자>(알림 칸, 2022)를 통해 관객은 남편의 여자를 만나야 하는 뜻밖의 여행을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함께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라라랜드>(데이미언 셔젤, 2016)를 본 관객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꿈과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경험을 나누게 된다. 기본적으로 관객은 영화를 통해 공감과 감동을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 치유가 된다. 더군다나 영화 서사가 대놓고 치유와 회복인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치유의 수단으로 통영과 덕수궁 돌담길, 이순신 동상과 희연이 성공적으로 기획한 뮤지컬 '순신' 그리고 한산대첩의 상징, 통영이 병치된다.

희연과 성선에게 덕수궁 돌담길은 '눈부신 시절 통조림'처럼 오랜 기간 밀봉했던 희미한 옛 추억의 공간이다. 그러나 덕수궁 돌담길은 희연과 성선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똑같은 미장센을 가진 똑같은 기억이지만 그들 각자에게 전혀 다른 해석이 시작된 간극의 공간이기도 하다. 희연에게 덕수궁 돌담길은 봄 향기 가득했지만, 이제는 시들어 뽀얗게 먼지 쌓인 마른 꽃 같은 공간이며 성선에 대해 오해가 시작된 공간이다.

 

마른 꽃같은 덕수궁 돌담길
마른 꽃같은 기억의 공간, 덕수궁 돌담길

그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눈 성선이 바로 귀향했으니, 그 시공 이후 그들은 각각의 삶을 살게 된다. 희연이 성선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덕수궁 돌담길은 희연에게는 성공을 향해 성선과 함께 매진하자고 독려하던 길이지만, 성선에게는 서울을 떠날 계기가 된 공간 즉, 자아 찾기라는 치유를 시작한 공간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친밀했던 공간이 가장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얽히기 시작한 실타래가 성선의 고향, 통영에서 풀리길 기다리고 있다는 단순한 배치지만 통영의 존재감은 성선의 고향이라는 것 이상으로 희연에게도 아주 특별하다. 희연에게 통영은 성선의 초대로 인해 우연히 방문하게 된 낯선 도시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땅끝 도시, 아름다운 바닷가 휴양지 통영의 한려수도는 느긋한 쉼표일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 한산대첩의 현장이며, 희연에게 용기를 주던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과 그녀에게 영광의 순간이던 '순신'이라는 뮤지컬 등 희연을 중심으로 시공을 넘나드는 퍼즐이 맞춰지는 공간이다.

이제 통영은 낯설고 서먹하게 시작한 덜거덕거리는 공간에서 치유가 실재하는 공간이 된다. 성선과 희연의 기억을 충실히 따라가 보면, 덕수궁 돌담길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돌아와 누이가 된" 통영이다. 통영은 성선에게 있어 치유의 태반이며, 희연에게는 '순신'을 기획했던 초심의 공간이며 그래서 다시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는 회복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 두 여성 모두에게 상실된 소통 부재와 관계를 되찾고 서로를 다독거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이 치유의 과정이 통영에서의 하루라는 소소한 일상이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지나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것만큼 쉽고 친근하게 치유의 과정을 나눌 수 있다. <통영에서의 하루>를 본 관객도 자신만의 통영이 있을 것이고, 오늘 문득 그 통영으로 쉽게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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