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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사투를 응원하며
북극곰의 사투를 응원하며
  • 정회훈 |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2.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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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북극곰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모든 것이 잘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오랫동안 내 기억 속의 북극곰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압도적인 덩치에 새하얀 털을 날리며 광대한 북극 설빙 위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강인한 생존력의 상징이었고 생명력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최근 북극곰의 처참한 모습이 자주 언론에 비치면서 그간 북극곰에 가졌던 내 고정관념이 깨지고 마음이 편치 않다.

수천 년 동안 북극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북극곰의 위상이 말이 아니게 추락해버린 것 같아 너무나 안쓰럽다. 삐쩍 마른 처참한 몰골로 먹이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북극곰 모습에 많은 사람이 가슴 아파하지만, 북극곰의 처지를 변화시킨 주범이 기후변화라는 사실 앞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금방 외면한다.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인 북극 환경 변화를 더 이상 막지 못하면 북극곰은 결국 멸종하리라는 게 정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래저래 북극곰 이 헤쳐나갈 미래가 녹록지 않다.

북극곰은 영하 40℃의 추위와 시속 120Km의 강풍을 견뎌내며, 지구에서 가장 추운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는 뛰어난 생존 적응력을 지녔다. 빛의 반사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털은 실제로 투명하다. 북극곰의 털은 몸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여 북극의 추운 기운을 차단해 준다. 피부 아래에 두꺼운 지방층이 형성되어 있어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북극에서 생존하기 위한 놀라운 진화다.

 

오랜 시간 탁월한 진화 능력을 보이면서 척박한 북극에서 강한 생존력을 뽐낸 북극곰에게 기후변화가 야기한 북극의 환경변화가 생물학적 진화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나 보다. 급기야 2008년 5월 미국 멸종위기종보호법(Endangered Species Act)으로 멸종위기종에 지정됐다.

멸종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기온상승으로 북극의 해빙이 지속해서 감소했기 때문이다. 북극곰에게 해빙 감소는 서식지 상실을 의미한다. 북극곰은 생존을 위해 많은 양의 지방이 필요하므로 먹이 사냥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바다표범과 바닷물범을 주 먹잇감으로 하는 북극곰에게 해빙의 감소는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극곰이 충분한 먹이를 먹지 못하면 건강 상태가 악화하고 새끼를 덜 낳게 된다. 자연스레 해당 지역에서 멸종으로 이어진다.

북극곰도 자신에게 불어 닥친 혹독한 환경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북극곰이 회색곰과 만나 생겨난 피즐리의 등장은 기후변화에 대항한 유전적인 생존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린란드 남동부서 발견된 북극곰 집단은 바다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해안가 근처 좁은 만(灣)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고립된 생활을 이어간다. 담수 빙하로부터 떨어져 나온 얼음조각 위에서 물개 사냥을 하며 먹이를 구한다고 한다. 특히 이 사례가 주목받은 것은 이들의 적응과 진화가 전체 북극곰의 미래 모습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해빙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다른 그린란드 지역 역시 남동부 지역과 비슷한 환경이 될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북극곰은 사투를 벌이지만 이들이 여전히 생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음을 반드시 상기해야 한다. 담수 얼음조각 역시 해빙에 비하면 그 양이 적어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북극곰의 사투 속에서 빚어지는 북극곰 집단의 변화는 눈여겨 볼만한 일이지만, 기후변화 자체를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북극곰의 위기는 환경변화가 낳은 북극 생태계 전체 위기의 축소판이다. 북극곰 없는 북극. 북극에 살지 않는 북극곰. 이런 북극의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북극곰의 멸종을 단지 북극에서 하나의 종이 사라지고 마는 것으로 좁게 해석하지 말자. 북극의 북극곰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모든 것이 잘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므로 그 자체가 북극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북극곰은 북극의 설빙 위에서 강인한 생명력의 아이콘으로 위풍당당하게 어슬렁거려야 한다. 그래야 북극곰이다.

 

 

글·정회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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