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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강백호가 사라졌다
[김민정의 문화톡톡] 강백호가 사라졌다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2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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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26년만에 <슬램덩크>가 돌아왔다. 극장 스크린에서 북산고 5인방이 그때 그 시절 만화체로 걸어나오는 순간, 지금은 중년이 된 X세대의 심장은 세차게 박동했다. N차 관람은 물론 만화책과 굿즈, 그리고 OST까지 <슬램덩크>의 모든 것이 신드롬급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첫사랑한테 4.5점을 주는 바보는 없어." (5점 만점)

콘텐츠 평점 사이트 왓챠피디아에서 가장 추천수가 많은 리뷰, 이 짧은 한 문장만 봐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하 <슬램덩크>) 인기 이유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첫사랑'. 러닝타임 124분 동안 순수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가슴 벅찬 느낌.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나는 겁니다"라는 명대사와 함께 강렬한 록음악이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3040의 굳어버린 심장을 다시금 뛰게 만든다. 첫사랑이니까. 북산고 5인방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 가졌던 꿈과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영화 리뷰에서 '첫사랑'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그래도'라는 접속사다. "그래도 봤다." "그래도 좋다." 만화책 <슬램덩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샀다." "그래도 소장각."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영화 <슬램덩크>는 작품성이 그다지 좋은 영화가 아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을 몰입시키기에는  스토리라인이  허술하고 단순하다.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스토리를 메워가며 보면 되겠지만 그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에 대한 인간적 배려의 차원이지 '내돈내산' 콘텐츠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는 분명 아니다.

'그래도' 영화 <슬램덩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압도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만화 <슬램덩크>는 100만권 판매고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첫사랑'이니까. 세상 모든 첫사랑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첫사랑은 왜 우리를 찾아온 것일까. 그것도 26년만에 갑자기.

 

송태섭이 돌아왔다
 

영화 <슬램덩크>는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에 참여하고 감독을 맡은 것으로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10년 넘게 영화화 작업을 제안받았지만 계속 거절해오다가 그는 2014년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걸 전제로 승인했다고 전해진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동안 영상화 작업을 왜 반대했고, 지금에 와서 왜 승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의 영화 <슬램덩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왔는가이다.

원작 만화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송태섭'이다. 원작에서 조연이었던 송태섭은 영화 주인공이 되어 영화의 시작과 긑을 장식한다. 송태섭, 그는 누구인가. 원작에서 주요 캐릭터인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은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란 점이다. 재능을 깨달은 시기와 재능이 꽃피운 시기는 다르지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타고난 운동감각이 있었다. 반면에 송태섭은 170cm가 안 되는 작은 키를 가진, 선천적으로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진다.

영화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작은 키는 원작 만화보다 훨씬 더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원작에는 없던 '죽은 형'의 등장은 송태섭의 작은 키를 강조하는 설정으로 활용된다. 유년 시절의 송태섭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고, 그 형은 큰 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뛰어난 농구 선수로 일찍이 부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송태섭에게 왜 갑자기 죽은 형이, 그것도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은 뛰어난 농구선수 형이 생긴 것일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신파적 설정일까. 아니면 영웅 탄생을 위한 또 하나의 고난과 역경일까. 작은 키의 송태섭이 넘버원 가드로 우뚝 서게 되는 '성장서사'가 강조되는 과정에서 지워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누군가의 동생이 아닌 송태섭 본연의 캐릭터다.

 

송태섭이 달라졌다
 

원작의 송태섭은 농구부 매니저 이한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농구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한다. 농구부를 승리로 이끌고, 그래서 이한나가 웃으면 그걸로 자기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한나를 향한 마음이 송태섭 혼자만의 짝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는 일종의 '덕후'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대가나 보상이 필요치 않는, 좋아함 그 자체에 몰두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오타쿠' 말이다.

오타쿠의 기원은 누구나 알다시피 일본이다. 송태섭은 덕후의 나라 일본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로맨스) 덕후다. 그리고 '덕질'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이한나만 바라보는 '덕후' 송태섭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가 꽤 있다. 송태섭뿐 아니라 원작 만화의 주인공 강백호 역시 농구부 주장 채치수의 동생 채소연의 마음에 들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 '채소연' 덕후다. 때문에 원작의 유머 코드는 강백호와 관련된 일화에 많이 기대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즐거운 덕질'에서 발생하는 유머로스한 에피소드를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송태섭과 강백호의 러브라인은 완전히 삭제되어 있고, 원작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 포인트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몇 군데 장치가 있긴 하지만 맥락 없이 제시되어 원작을 모르는 관객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첫사랑'은 완전히 달라졌다. 26년이란 세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백호가 사라졌다
 

<슬램덩크>가 만화에서 영화로 건너오면서 스토리의 톤앤매너가 굉장히 무거워졌다. 영화에서 송태섭은 죽은 형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번번이 무산되고, 죽은 형과의 비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송태섭을 계속 따라다닌다. 영화에서 송태섭의 작은 키는 단순히 신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경쟁적 우위를 차지하는 형과의 비교해서 오는 정서적 열등감의 상징이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동생의 모습, 무언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뛰어난 형과 동경하는 형을 좇아 애쓰는 동생의 구도에서 우리는 경제대국으로의 재도약을 꿈꾸는 '지금 여기' 일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부동산 및 주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경기 침체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은 어느새 '잃어버린 30년'으로 바뀌어졌고,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추억이 되어버렸다.

원작의 주인공 강백호가 영화 <슬램덩크>에서 조연으로 밀려난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원작에서 강백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천재로 그려진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서 서방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칭 천재였으나 점점 타인의 인정을 받아 진정한 천재로 거듭나는 강백호의 성장 서사는 전성기 시절의 일본이 걸어온 길과 닮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만화 주인공 그 이상의 존재였다. 강백호는 거침없는 성장세의 일본 그 자체였다. 하지만 2023년 지금 여기의 일본은 그때 그시절의 일본이 아니다. 그리고 강백호도 더 이상 2023년 일본의 얼굴이 될 수 없다.

아사히TV가 일본 국민 15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무엇입니까?" 그 결과, 1위는 '원피스', 2위는 '귀멸의 칼날', 3위는 '슬램덩크'였다. <원피스>와 <귀멸의 칼날>이 현재 연재 중이거나 지난해 연재가 끝난 최신작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일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최애' 작품은 단연 <슬램덩크>다. 과연 이것이 만화를 향한 단순한 애정일까. 그때 그시절의 일본을 향한 그리움은 아닐까.

 

정우성이 나타났다
 

영화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목표로 뛰는 북산고 5인방에게 가장 중요한 시합, 즉 원작 만화에서 마지막 경기였던 산왕고와의 대결을 중심 사건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산왕고와의 시합을 중심축으로 주요 캐릭터들의 사연이 과거 회상 장면과 교차 편집으로 등장한다. 송태섭을 중심으로, 채치수, 강백호, 정대만의 사연이 조금씩 곁들여진다. 서태웅만 빼고.

원작에서 서태웅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은 '농구 천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없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다음이다. 서태웅이 빠진 자리에 상대팀 산왕고의 정우성이 슬며시 들어온다. 상대팀으로서는 유일하게 전사(前史)를 가진 그는 북산고와의 시합을 앞두고 사원에서 "제게 필요한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원을 한 뒤, 북산고에 패배한다. 원작에서 최강 농구팀의 최고 에이스로 그려지는 '최정상의 선수' 정우성에게 부여된 새로운 서사가 바로 '좌절'의 경험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슬램덩크>의 메시지는 보다 명확해진다. 북산고와 산왕고의 시합이 북산고의 1점차 극적인 승리로 끝난 다음, 북산고의 송태섭과 산왕의 정우성은 다시 맞붙는다. 하지만 그 무대는 일본이 아니다. 미국이다. 두 사람은 각각의 미국 농구팀에서 포인트가드로 다시 재회한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실패를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닮아 있다. 북산고와 산왕고, 송태섭과 정우성, 그들은 하나의 일본으로 새로운 승리를 위해 다시 뛴다. 그 모든 시련과 역경이 더 큰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었다는 듯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두 사람은 세계 무대에서 다시 만난다.

 

슬램덩크가 돌아왔다


영화 <슬램덩크>는 이노우에 다케히로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저성장 시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의 MZ세대에게 보내는 편지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거나 그때 그 시절을 감동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형에게 작은 키의 어린 송태섭이 묻는다. 산왕고에 들어가고 싶어? 산왕고 선수들이 표지를 장식한 스포츠잡지를 보고 있던 형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아니, 산왕고를 이기고 싶어.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송태섭은 라이벌이었던 정우성과 함께 미국 NBA에 선다. 송태섭과 정우성이 이끄는 팀은 더 이상 북산고와 산왕고가 아니다. 미국이고 세계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작은 키의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말하고 싶은 건 '성장'이 아니다. 바로 '도전'이다.

산왕고와의 시합이 끝나고 괜찮았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송태섭은 담담하게 말한다. "나흘만에 어떻게 키가 커요?" 성장은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지만 도전은 현재에서 시작해 미래로 나아간다. 미래를 향한 또 한 번의 도약. 도전은 꿈과 희망, 그리고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보장된 결과가 없다고 해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전은 또 하나의 '즐거운 덕질'이다. 26년 만에 돌아온 '첫사랑'에게서 그때 그 시절의 낯익은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아, 슬램덩크가 돌아왔다!

한국에도 돌아왔다!!

일본 언론은 거침없던 일본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노우에 다케히로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하강기를 살아가는 일본의 MZ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국의 MZ세대가 왜 열광하는지 어리둥절하며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재팬(NOJAPAN)’ 불매운동부터 콘텐츠의 무국적성까지 26년 만에 돌아온 첫사랑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을 해석해내는 관점이 다양하다. 사랑에 국경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영화 <슬램덩크>를 향한 한국 3040의 '즐거운 덕질'은 단순히 학창시절 재밌게 보던 만화를 향한 노스탤지어만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90년대 초반 일본과 유사하게 장기 불황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팽배하다. 슬램덩크 신드롬의 주역인 한국의 3040은 생산과 소비의 중추를 담당하는 핵심생산인구, 즉 경제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회의 '포인트가드'다. 포인트가드란 누구인가. 팀이 공격할 때 게임을 리드하는 플레이메이커다. 송태섭이고 정우성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짊어진 한국의 3040 세대가 감정이입하기에는 역시 '자신만만 농구천재' 강백호보단 '도전의 아이콘' 송태섭이 제격이다.

비록 지금 위축되어 있지만 한국의 MZ세대는 언제나 긴장하며 일본을 경계하던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 한국팀의 포인트가드인 이들은 이제 중국팀은 의식해도 일본팀을 염두에 두진 않는다. K-컬쳐는 이미 세계 정상에 도달했고, 더 이상 한국의 라이벌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일본제국이 아니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대상은 드라마 <오징어게임>, 영화 <기생충>,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그러니까 세계 정상에 오른 ‘지금 여기’의 한국 자신이다. 26년 만에 돌아온 ‘과거의 첫사랑’ 앞에서 일본과 한국의 MZ세대가 함께 열광하지만 그들이 꾸는 꿈의 지도는 완전히 다르다. 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홍보용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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