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지금, 여기에서 정상적인 것이란? - <브로커>(2022)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지금, 여기에서 정상적인 것이란? - <브로커>(2022)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3.03.06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 개념의 전복, 그 정상성에 대한 도전

돌아보면 한국의 주류 영화 속 가족은 비교적 최근까지 남성 중심의 혈연과 단일민족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 있을 때가 많았다.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 사회가 정상적이고 보편적이라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인식의 실체이자 그것이 영화에 투영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주류 영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재현되는 가족의 모습에는 그 외의 모든 가족 공동체를 비관습적이고 정상에서 일탈한 것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 개념과 다른 가족 집단은 비정상적인 것처럼 특수화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그러한 집단 내에서 개개인이 직면하는 문제는 사소화되고 있다. 적어도 한국의 주류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대부분 이러한 선택적 주류화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무엇보다 젠더적 다양성과 문화적 복합성이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기 시작한 지금은, 전통적 정의로만 가족을 개념화하거나 그 정상성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바로 이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2022)가 비현실적인 판타지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야기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에 시작된다.

 

소영(이지은)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안고 한 교회의 베이비박스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아기를 그냥 바닥에 두고 떠난다. 잠복근무 중이던 형사 수진(배두나)이 이를 목격하고 아기를 베이비박스 안으로 옮겨 넣는다. 같은 시각,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소영의 아기를 몰래 팔기 위해 빼돌린다. 그 사이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 소영은 다시 교회를 방문해 보지만 아기의 존재를 아는 직원들이 없다. 그 소식을 접한 상현과 동수는 소영을 따돌리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게 베이비 브로커와 생모가 함께 하는 기상천외한 아기 팔이 여정이 시작된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브로커>에는 전통적 개념으로 정의되는 부모나 부부, 형제자매 등의 가족관계가 눈에 띄지 않는다. 미혼모인 소영은 천륜을 끊으려 했고, 상현의 가족은 부서져 있으며, 동수는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시설에서 성장했다. 즉, 이들 셋은 서로 남남일 뿐 혈연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영과 상현 그리고 동수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익숙한 가족 서사를 끌어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진부하다기보다 진보적이라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가족관계도 아닌 인물들이 오히려 전통적 가족 서사를 안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관습적인 가족관계의 필요성과 그 개념을 전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브로커>는 자연스럽게 육아하는 남성들과 동시대의 주류 담론에 맞서는 여성들을 주요 인물로 배치함으로써, 남녀 성역할의 고정성을 극복하고 모성과 부성을 전통적인 생물학적 젠더만으로 구분하기를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이 가족관계와 젠더 등의 정상성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잣대 또한 무력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가족이란 무엇이며, 그 정상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로 무관한 사람들이 모여 가족 이상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이야기는 캐나다의 모자이크식 다문화주의를 떠올린다. 가까이 가면 제각각의 조각들이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 편의 뛰어난 작품인 모자이크…….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브로커>를 통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중에 모자이크 조각처럼 조금 달라 보이는 이들 또한 각자의 가치가 있고,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야금야금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전한다. 또한, 초월자의 시각으로 저 높은 곳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이 곳의 모두가 하나하나의 작품으로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존재들임을 상기시킨다.

 

<브로커>를 다루면서 배우들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 없다.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지만 그 서사는 매우 급진적이다. 그래서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무게감이 덧입혀진 가벼움으로 그 톤이 절제된 채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치 촘촘한 거름망으로 걸러낸 듯 웃음기가 사라진 이지은의 연기는, 건조하면서도 습한 소영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익숙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강동원의 연기는, 태생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을 지닌 채 젖은 마음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는 동시대인들을 대표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더해진 송강호의 경이로운 생활 연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법한 타자의 이야기에 잠잠하고도 묵직한 메시지를 부여한다. 이로써 마침내 <브로커>는 ‘너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영화적 가치를 도출하기에 이른다.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대학에서 강의하며 스토리 문법, 담화분석, 한국문화 및 문학치료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학위논문 준비 중 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시나리오를 배우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