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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독창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챗GPT와 다빈치 러닝 교육 모델
[김민정의 문화톡톡] 독창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챗GPT와 다빈치 러닝 교육 모델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3.04.0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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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분이 왔다. 그분이 강의실에 등장하면서 그동안 평화롭던 ‘진리의 전당’ 대학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대학 교수들은 처음의 충격과 당혹감이 진정되자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교수법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교수들이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학생들이 그분을 강의실에 데리고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투명 인간이어서 강의실에 못 들어오게 막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분의 이름은 바로 챗GPT3.5다.

지난 3월에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신문사에서 재학생과 휴학생을 대상으로 ‘챗GPT 사용실태 및 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학 강의 과제와 학부 졸업 논문에서 챗GPT를 활용하는 것에 관한 찬반을 묻는 설문이었다. 이번 설문은 AI의 교육적 활용 정도와 윤리적 태도를 확인하고 논의하는 담론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설문조사 결과, ‘챗GPT’를 사용해본 학생은 67.1%였고 앞으로 사용할 의사가 있다는 학생은 강의 과제의 경우 75.7%에 달했다. 한때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그렇다. 어느 날 내 강의실로 챗GPT가 ‘성큼’ 들어왔다.

 

AI 시대 교육의 미래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AI 상용화 시대가 열렸다. AI 기반 영상 번역 솔루션 기업 ‘엑스엘에이트(XL8)’는 영상을 업로드하면 대사를 자동으로 번역하여 원하는 음성으로 더빙작업을 진행하는 영상 기계 번역 엔진 ‘미디어캣’을 출시하였다. 현재 넷플릭스, 디즈니 등 OTT플랫폼에 제공되는 자막과 번역 일부는 사람이 아닌 AI가 맡고 있다.

AI의 언어 생성 능력은 단순한 텍스트 번역뿐 아니라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작 분야에서도 맹위를 떨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출시한 ‘달리2’뿐만 아니라 미드저니AI연구소가 출시한 ‘미드저니’에 ‘달리 풍으로 해운대의 저녁을 그려줘’하면 1분 안에 그림을 ‘뚝딱’ 그려준다. AI 추모서비스 ‘리메모리’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영상과 음성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딥러닝 학습 과정을 거쳐 사후에도 대화가 가능한 AI휴먼을 제작하였다. 외모뿐 아니라 평소 억양과 습관까지 학습화된 AI휴먼은 사전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덕분에 인간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AI의 도입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대학에서는 AI 활용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그러한 대학의 분위기 반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교수자가 아니라 학습자들이다. 구글보다 훨씬 똑똑하고 일타강사보다 훨씬 친밀한 그분, 챗GPT를 대동하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학생 한 명당 개인 비서와 개인 과외교사, 그리고 개인 조교가 한꺼번에 생긴 셈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는 학생들에게 어떤 소원이든 말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는 영화 <알라딘> 속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존재다. "주인님, 소원이 뭔가요?" '램프의 요정 지니' 챗GPT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딥러닝을 진행한 다음, 스스로 언어를 생성해 이용자를 위한 맞춤형 과제를 척척 창작해낸다. 수십 년을 답습해온 주입식 교수법으로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던 교육은 이제, 확실히 수명을 다했다. 지식과 정보는 미리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사전 학습을 활용하여 토론과 실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단순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은 앞으로 학생들에게 외면당한 채 대학에서 멸종 위기에 놓일 것이다.

 

창작 교육과 다빈치 러닝

 

‘그분’이 대규모 멀티모달역량을 기반으로 인간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는 챗GPT-4로 재탄생하면서 예술 분야 교수들의 고민도 더욱 깊어졌다. 인간이 작성한 글은 AI가 작성한 글과 어떻게 차별화되어야 할까. 창작 교육 커리큘럼에서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지적 훈련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2023년 1학기부터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 AI시대의 차별화된 창작 역량 개발을 위한 교과를 설계·운영하고 있다. 문예창작학과 1학년 전공 수업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는 교수학습개발센터의 지원을 받아 '다빈치 러닝'으로 교과목을 개편하였다. 창의적 인간의 상징인 다빈치의 이름을 딴 ‘다빈치 러닝’은 참여 활동 중심의 수업 진행을 위해 수업 전에 미리 개념을 학습하고, 수업에서는 심화활동을 수행하는 중앙대학교의 고유한 교육모델이다.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영상콘텐츠의 서사패턴과 캐릭터 유형을 사전 학습한 다음, 수업에서 하나의 설정을 두고 스토리를 다양하게 창작하는 심화학습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토대로 ‘스토리 다이어그램’을 만든다. 스토리 다이어그램(Story Diagram)은 스토리 구성 3요소 ‘인물·사건·배경’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확장할 수 있는 변수의 확장성(Variation)을 간단하게 도식화한 표를 의미한다.

 

2020년 지금 여기, 한국을 배경으로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두 명 이상을 주요 인물로 넣어 짧은 소설을 창작하시오. ‘태양’ ‘식물원’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시오. (2020년 중앙대학교 대학입시 문예창작 전공 수시전형 창작적 글쓰기 기출문제)

 

위의 문제는 내가 재직하는 학과의 신입생 수시전형 실기시험 문제였다. 우리 학과의 글쓰기 실기시험 문제는 우리 학과가 주최하는 백일장의 시제와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입시용 글쓰기 훈련을 받은 ‘백일장 선수’들의 뻔한 글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매우 어렵게 출제된다. 우리가 선발하려는 학생은 잘 다듬어진 문장기술자들이 아니라 인문적 소양과 창의적 상상력이 뛰어난 '원석(原石)'이기 때문에 다소 거칠더라도 자기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점에 들어가보면 서로 의논하고 글을 썼나 의심이 들 정도로 유사한 패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입시에서 냈던 문제와 유사한 시제를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 수업에서 스토리 다이어그램을 활용한 집단 협업형 창작 과제로 냈을 때 학생들은 훨씬 개성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쌍둥이가 주인공인 이야기, 단 이야기의 첫 문장은 "백두산이 폭발했다"로 시작할 것.

 

스토리의 스펙트럼은 인물(쌍둥이)의 유형, 사건(만남과 이별, 모험과 성장, 도주와 추적, 배신과 헌신, 환상과 초월, 비루와 숭고)의 유형, 공간(백두산, 남과 북)의 유형에 따라 폭넓게 확장되었다. 쌍둥이가 일란성인가 이란성인가. 나이는 많은가 적은가. 남에 사는가 북에 사는가. 쌍둥이라는 캐릭터 설정 하나에서만도 다양한 이야기가 파생되었다. 6.25전쟁 때 잃어버린 연로한 쌍둥이 형제부터 구독자 100만 명의 탈북자 유튜버과 북한의 꽃거지 쌍둥이 자매까지 스토리를 창작한 학생들의 각기 다른 얼굴처럼 그들의 스토리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밖에도 스토리의 변수는 다양했다. 이러한 복잡한 스토리 구조(Story Structure)를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으로 도식화한 것이 바로 스토리 다이어그램이다.

 

표1 스토리 다이어그램 유형 A
표1 스토리 다이어그램 유형 A
표2 스토리 다이어그램 유형 B
표2 스토리 다이어그램 유형 B

스토리 다이어그램은 표1처럼 세부 유형의 컨버전스로 구성될 수도 있고, 표2처럼 선택과 집중의 인터랙티브 알고리즘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시각적 도식화에 따른 형식상의 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스토리를 분석하고 스토리 다이어그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스토리에 내재한 장르적 관습과 차이화를 경험한다는 점이다.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진부한지 나만의 ‘드라마티카 프로’를 시뮬레이션해보며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를 설계해보는 것이다.

축적된 DB를 활용해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구성을 지원해주는 드라마티카 프로(Dramatica Pro)는 1990년 이후 미국 아카데미 후보작의 80% 이상, 에미상 수상작의 90% 이상이 사용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미국 디지털 서사 창작 프로그램이다. 스토리 다이어그램은 드라마티카 프로의 축소판인 셈이다.

 

AI시대의 창의성 교육

 

다빈치 러닝으로 진행하는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의 목표는 높은 완성도의 창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 창작 경험(Narrative Experience Design in Group)’ 그 자체다. 독창성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 혹은 타인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완성된다. 창작자는 항상 나의 글은 다른 사람의 글과 어떻게 다른가, 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결국, 독창성은 많은 작품을 읽고 쓰는 평범한 습관에서 탄생한다. 읽는 행위는 능동적인 창작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대한 자료를 종합하여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챗GPT는 인간의 창작 활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작 활동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유용한 보조 수단이다. 챗GPT는 스스로 스토리를 창작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아닌 선행한 창작자들의 성과를 리서치하고 정리한 것을 토대로 시안을 만들어 인간에게 제공하는, 알라딘을 주인으로 섬기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헌신적인 조력자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내민 따듯한 도움의 손길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

유능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사전 학습을 한 학생들이 참여하는 다빈치 러닝 모델을 접목한 수업 커리큘럼은 토론과 실습을 통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 즉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 타임 테이블은 아래와 같다.

 

표 3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 타임테이블
표 3 [스토리텔링과 문장기초] 타임테이블

학생들은 수업 내 소그룹에 소속되어 그룹별로 번갈아 가며 직접 스토리 설정을 출제한 다음, 다른 학생들의 스토리를 예상하여 스토리 다이어그램을 미리 작성하는 활동을 한다. 본인이 작성한 스토리 다이어그램과 다른 학생들이 작성한 스토리와 일치도를 확인해보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제공되는 생성형 AI시대에 요구되는 첫 번째 역량은 바로 질문하는 능력이다. 어떤 질문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정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학생들은 스스로 문제를 출제하는 활동을 통해 깨닫는다.

그렇게 도출된 결과를 검증하고, 선택하고, 활용하여 최종적인 결과물을 얻는 것은 창작자의 능력이다. AI 상용화 시대를 앞두고 지금 여기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AI와의 경쟁이 아니다.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과 싸우려고 덤비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AI와의 소모적인 신경전이 아니라 건설적인 협업이다.

AI시대, 인간의 창의성은 새로운 변곡점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능력 좋고 성격 좋은 조력자 AI가 있다. 램프의 요정 지니와 연대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니가 얼마나 일을 잘하게 만드는가는 우리의 능력에 달렸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오는 영화와 소설만 해도 수십 편이 넘는다. 같은 지니도 알라딘에 따라 발휘하는 능력이 다 다르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과 르몽드문화평론가상, 그리고 2022년 중앙대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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