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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찰의 흑역사: 협력인가, 부역인가?
프랑스 경찰의 흑역사: 협력인가, 부역인가?
  • 리오넬 리샤르 l 역사학자
  • 승인 2023.03.31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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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학자들은 단 한 번도, 나치 독일 점령군의 기록을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었다.’ 베른트 카스텐(Bernd Kasten, 1964~ 독일 출신의 역사학자)은 이 점에 주목하며, 독일군의 기록을 파헤쳤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번역해 책으로 냈다.(1) 이 책에 기술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우선, 독일 점령군은 프랑스를 지배하면서도 주요 경찰인력은 프랑스 출신으로 채우게끔 했다. 이런 조치는, 페탱 장군과 그의 부하들에게 프랑스를 스스로 다스린다는 착각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경찰 전체를 교묘히 통제하려는 나치 독일의 전략이었다. 실제로 나치 독일은 1940년 6월부터 대부분의 프랑스 정책에 교묘히 관여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프랑스 경찰이 초기 반유대인 시위를 일으키게끔 한 것이다.

1943년 발간된 한 보고서는, 프랑스 경찰과 헌병들의 충실한 협력이 없었다면 독일군은 그저 ‘소소한 감시’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군 당국이 특히 높이 산 것은 프랑스 헌병대의 ‘단결력’이다. 1944년 프랑스의 헌병 인력은 약 3만 7,000명이었다.

이어서 나치 독일 점령군은 우선적 궤멸 대상으로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을 꼽았다. 독소조약이 결렬되기 4개월 전인 1941년 2월, 독일군은 성과에 만족스러워했다. 독일군의 직접 점령지역에서만 프랑스 공산주의자 1,500명 이상을 체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에 ‘페탱주의자’는 없었다. 자료에 의하면, 레지스탕스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대다수의 프랑스인들도 결국에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에 매우 충실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945~1946년의 ‘과거 청산’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이 주제에 대해 카스텐은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스텐이 장문으로 내린 결론은 풍자로 가득하다. “프랑스 경찰들은 성실한 프랑스인들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 부역자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으나, 프랑스 경찰은 이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

한편, ‘과거 청산’에 대해 장기간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 있었다. 2020년 별세한 유대인 모리스 라즈퓌다. 그는 파리에 살던 유대인으로, 1942년 7월 16일 유대인 검거 사태(2) 때 체포됐다. 라즈퓌는 추방을 모면했으나, 그의 부모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억압한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라즈퓌가 계속 관심을 가진 문제였다.

라즈퓌가 1995년에 출간한 『비시 정부의 경찰』(3)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1940년 6월에서 1944년 8월까지 프랑스 경찰들은 나치 독일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이어서 이를 증명하는 자료들이 언급된다. 최근 재판된 이 책의 끝부분에서 라즈퓌는 1945~1947년 실행된 조치를 분석했는데,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경찰들 중 파면된 이들이 약 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라즈퓌가 경악을 금치 못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그가 이 책을 출간한 1995년 기준으로도 나치 치하의 프랑스는 무려 반세기가 흐른 과거임에도, 프랑스 경찰과 헌병들의 나치부역 관련 내용이 참고자료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리오넬 리샤르 Lionel Richard
역사학자

번역·이주영
번역위원


(1) Bernd Kasten, 『De bons Français-Les polices françaises et les autorités allemandes dans la France occupée, 1940-1944 성실한 프랑스인들-나치 점령 프랑스에서의 프랑스 경찰과 독일 당국, 1940~1944년』, L’Harmattan, Paris, 2022.
(2) 벨로드롬 디베르 대규모 검거사건(La Rafle du Vélodrome d’Hiver), 일명 ‘벨 디브(Vél d’Hiv)’ 검거사건이라고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쉬 정부의 프랑스에서 독일에 협력한 프랑스 경찰들이 행한 대규모 유대인 검거 사건. 1942년 7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1만 3,000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파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체포됐으며, 그중 약 1/3은 아동이었다. 이들은 동계 실내 경륜장에 임시 수용된 후 아우슈비츠로 이감돼 대다수는 학살됐다.(위키백과 참조)
(3) Maurice Rajsfus, 『La Police de Vichy 비시정부의 경찰』, Éditions du Détour, Bordeaux,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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