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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의 문화톡톡] ‘소피아’와 ‘35%’가 쓴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한성안의 문화톡톡] ‘소피아’와 ‘35%’가 쓴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 한성안 | 경제학자
  • 승인 2023.04.0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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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를 내려받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가지 얘기를 상기해 보자. 첫 번째 이야기는 유명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15분, 미국 뉴욕 퀀스 지역 주택가에서 노상강도가 지나가던 한 여성 키티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30여 분이 넘도록 여자는 격렬히 저항하며 도움을 청하며 절규했다. “살려 주세요. 이 사람이 칼로 찔렀습니다.” 주변의 집에 불이 켜졌지만 그뿐이었다. 목격자들도 모두 문을 닫고 불을 꺼버렸다. 직접 목격했지만,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총 38명 ‘방관자’의 차가운 외면 속에 키티는 쓸쓸히 죽었다. 1964년 3월 14일자 미국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미국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둘째는 호기심 많은 한 교수의 얄궂은 심리실험이다. 1961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인간의 자율성과 도덕적 사고에 관심을 가졌던 듯하다. 그의 실험은 두 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은 교사 역할을, 다른 한 명은 학생의 역할을 맡도록 설계되었다.

학생은 끈으로 의자에 묶인 채로 단어를 외우도록 하고, 교사는 학생이 틀리게 답하면 약한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됐다. 학생의 성적이 나쁠수록 전압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고통이 가해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학생 본인은 실제는 아무런 전기 충격도 없는 상태로 비명만 지르도록 교육된 실험관계자였다. 곧, 학생은 사실 밀그램 교수의 실험에 참여하는 동료인 것이다. 피실험자인 교사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가 가한 전기 충격이 실제로 전달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실험 직전 밀그램 교수는 피실험자인 교사들에게 단언했다. ‘이 실험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 것이며, 교사들은 내 지시만 따르면 됩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개의치 말고, 지시하는 것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러 쌍을 동원해 실험을 반복하였다. 피실험자인 교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밀그램은 깜짝 놀랐다. 실험 전에 그는 단 0.1%만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 실험결과는 무려 65%의 참가자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던 것이다. 이들은 450볼트로 학생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비명도 들었으나 모든 책임은 연구자가 지겠다는 말에 복종했다. 상대가 죽든 말든 ‘법’과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 규칙에 대한 준수 앞에서 공감과 연민 등 도덕적 판단은 자취를 감추었다. 실험결과로부터 밀그램은 인간을 명령과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생물이라고 단정지었다. 세상 사람 중 일부는 열광하고 다른 일부는 낙담했다.

 

주류경제학의 인문학

키티 제노비스 사건과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 열광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설마 그럴까 의아해할지 모르나,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적지 않다. 특히 경제학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은데, 이른바 주류경제학으로 불리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과 이들의 경제학모델과 경제정책에 열광하는 ‘보수진영’이 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경제학 모델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문학으로부터 출발한다. 곧, 이기주의적 본성론과 개인주의적 존재론이 그것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개인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런 유형의 인간에게 정의와 선과 같은 도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밀그램의 실험과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그들의 인문학을 입증해 주는 강력한 ‘데이터’였으니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일베’가 이 인문학에 열광하는 건 대한민국이 다 아는 사실이다.

주류경제학과 보수는 이처럼 환호했지만, 비주류경제학과 진보는 침묵했다. 진보진영에게 세상은 어두웠고, 희망은 없어 보였다. 비주류경제학은 다른 인문학, 곧 이기심은 물론 이타심도 포용하는 ‘다중본성론’과 ‘사회적 존재’를 철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밀그램실험과 키티제노비스사건의 진실

하지만, 보수가 환호하고 진보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오보였고, 대중을 자극할 목적으로 뉴욕타임즈 기자가 의도적으로 왜곡한 ‘소설’(!)로 밝혀진 것이다. 38명의 ‘목격자’ 대부분은 실제로 목격자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뭔지 모른 소리를 잠결에 들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자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잠이 깬 한 명의 여자 소피아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키티를 돕기 위해 계단을 타고 돌진했다. 그날 키티는 ‘방관’되거나 ‘방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이웃의 따뜻한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밀그램의 실험에 65%가 복종한 이유도 밝혀졌다. 그들은 가운을 입은 실험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 실험의 결과가 선하고 유익한 일에 쓰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실험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 이들은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선을 이루기 위해 실험자와 함께 ‘협력’하고 ‘봉사’했던 것이다. 한 남성은 의료계가 언젠가 치료법을 개발하기를 희망하면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섯 살짜리 딸을 위해 끝까지 참아냈다고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어떤 권위와 이유에도 복종하지 않았던 35%의 존재다. 그들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웃의 고통을 방관하지도 않았다.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고통에 공감하며 이웃과 연대하고자 결단했다. 많은 시민들이 깨어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팩트’는 잘 확산되지 않는다! 주류경제학의 인문학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주류경제학들은 다시 용기를 얻었고, 인간에 대한 희망도 되살렸다.
 

‘소피아’와 ‘35%’가 쓴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1948년 11월 제주도 중산강마을 애월면 광령리 주민 고치돈은 서북청년단의 잔혹한 행위를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외도지서 특공대 생활을 할 때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 이윤도(李允道)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271)
 

제주4.3사건에서 제주주민들이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승만이 파견한 토벌대에 의해 모두 무참히 학살당했다
제주4.3사건에서 제주주민들이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승만이 파견한 토벌대에 의해 모두 무참히 학살당했다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 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p.419)제주경찰학교 10기생으로 당시 삼양지서에서 잠시 근무했던 김제진의 증언이다.

고봉수는 1949년 2월 24일 악명 높은 정용철 주임이 벌인 처참한 학살극을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대한청년단 분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했습니다.”(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419).

 

필자가 곤을동 4.3 유적지를 방문해 찍은 사진이다. 이런 '잃어버린 마을'이 제주에 무려 130여 군데가 있다.
필자가 곤을동 4.3 유적지를 방문해 찍은 사진이다. 이런 '잃어버린 마을'이 제주에 무려 130여 군데가 있다.

 

국방경비대 제2연대 1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했다. 이들은  주민들을 한데 모이게 한 다음  젊은 사람 10명을 바닷가로 끌고가 학살한 다음 39채의 집을 깡그리 불태웠다. 다음날 화북초등학교에 가둬두었던 일부 주민도 학살하고 28가구 모두를 전소시켰다.  그후 곤을동 마을은 인적이 끊겼다. 지금까지  빈터만 남아 있다.  .
국방경비대 제2연대 1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했다. 이들은 주민들을 한데 모이게 한 다음 젊은 사람 10명을 바닷가로 끌고가 학살한 다음 39채의 집을 깡그리 불태웠다. 다음날 화북초등학교에 가둬두었던 일부 주민도 학살하고 28가구 모두를 전소시켰다. 그후 곤을동 마을은 인적이 끊겼다. 지금까지 빈터만 남아 있다. .

인간이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제주 4.3사건’의 군경과 서북청년단의 만행은 이기주의와 권위에 대한 복종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구원될 수 없는 존재고 인간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인간에게 희망은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가? 한반도 전역은 탄식에 빠졌다.

하지만 ‘소피아’는 뉴욕에만 있지 않았다. 밀그램실험의 ‘35% 불복종자’는 대한민국에도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엄혹한 탄압과 외면 아래서도 70년 넘도록 그들은 고통받는 이웃을 품에 안았고, 불의한 명령에 불복하면서 고통받는 이웃과 연대하고자 했다. 모든 인간이 주류경제학의 인문학에 열광하지는 않았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2003)는 부당한 권위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고통받은 이웃에 대한 연대를 놓지 않았던 깨어있는 시민들이 이룬 성과다.

 

노무현정부시절 마련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서문
노무현정부시절 마련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서문

더 많은 시민들이 이 보고서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아무나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소피아’가 더 많아지고, 35%가 65%로 뒤바뀌면 세상은 더 좋아지리라. 그땐 밀그램의 실험과 키티 제노비스사건의 ‘진실된 모습’도 더 널리 확산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환호기엔 아직 이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표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표지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바로가기: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1_01.do

 

 

 

글 · 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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