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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카메라 소메티카』, 영화라는 존재를 성찰하다
[신간] 『카메라 소메티카』, 영화라는 존재를 성찰하다
  • 이준엽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강사
  • 승인 2023.04.07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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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회화와 영화
『카메라 소메티카』(박선 지음, 갈무리)
쪽수 : 304쪽
​​​​​​​가격 : 20,000원

 

『카메라 소메티카』는 '회화'라는 요소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분석한 책이다. <풍차와 십자가>(2011),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은 회화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이고, <잊혀진 꿈의 동굴>(2010)은 고대인이 남긴 동굴 벽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한편 <유메지>(1991)는 화가를 소재로, <뮤지엄 아워스>(2012), <프랑코포니아>(2015), <내셔널 갤러리>(2014)는 미술관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영화 이론과 함께 이들 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간다. "대문자 T로 시작하는 이론의 포괄적이고 수렴적인 태도를 극복하고자 했던 모색의 결과물"(19쪽)이라는 저자의 말이 시사하듯이, 궁극적으로 『카메라 소메티카』는 영화라는 존재 자체를 성찰한 책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화가 남긴 선례를 면밀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영화가 등장하면서 회화의 권위가 파괴된 것은 디지털의 도래와 함께 필름의 권위가 붕괴한 오늘날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모습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저자는 서구의 영화이론이 앙드레 바쟁 및 '미라 콤플렉스' 개념으로 대표되는 고전 영화이론과 발터 벤야민과 '아우라' 개념으로 대표되는 현대 영화이론으로 양분되어 온 점을 언급한 뒤, 그 두 가지 흐름에 대한 통합적 해석을 시도한다.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관객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능동적으로 영화를 감상하며,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은 바쟁이 언급했던 '완전 영화' 개념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스크린 상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진정한 "붓질의 주체"(6쪽)는 과연 누구인가?

 

여섯 주제로 살펴보는 영화의 '존재론'

1장에서 소개하는 <풍차와 십자가>는 피테르 브뤼헐의 그림 <갈보리 가는 길>(1564)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이다. <갈보리 가는 길>은 거대한 화폭뿐만 아니라 한 화면에 여러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인데, 감상자는 그림에 담긴 종교적·시대적 상황을 능동적으로 고찰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갈보리 가는 길>은 관람자가 수난당하는 예수의 참 의미를 플랑드르의 현실로부터 추출해내기를 유도하는 작품"(34쪽)이다. 영화 <풍차와 십자가> 역시 원작 회화와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풍차와 십자가>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활인화 기법을 통해 <갈보리 가는 길>을 스크린에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비선형적·파편적 서사를 지향하며 관객이 영화를 보다 주체적으로 재구성하며 감상하도록 만든다.

2장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13편을 영화화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다루어진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디지털 보정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에드워드 호퍼의 원작에는 특별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작품이 창작된 무렵의 시대상을 고려하여 '징후적 독해' 정도를 수행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반면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원작에 서사성을 부여하며 새로운 의미를 추가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셜리는 성애적 스펙터클, 혹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된다. 또한 저자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개념을 빌려 예술 작품이 관객의 마음에 사적이고도 내밀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역설한다.

3장에서는 베르너 헤어조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이 언급된다. 다큐멘터리가 동굴 벽화를 다루는 보편적인 방식은 아마도 "벽화를 촬영하고 전문가의 해설을 인용"(123쪽)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잊혀진 꿈의 동굴>은 벽화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피하고, 오히려 그것이 "불가해한 미스터리임을 인정"(124쪽)하는 태도를 취한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베르너 헤어조크가 동굴 벽화를 '재매개'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홀로그램을 통해 표현된 동굴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서 등장하는 구석기인의 오른손 음각화 등을 통해 관객은 과거의 인류가 벽화를 그리고 감상하며 느꼈을 숭고미를 동일하게 체험하게 된다.

4장에서는 스즈키 세이준의 <유메지>를 분석한다. <유메지>는 실존 화가의 삶과 작품을 영화화한 '화가 영화'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영화 제작사는 유명한 화가를 영화화함으로써 금전적인 흥행을 노리기 마련이다. 그 대상으로는 주로 서구의 백인 남성 화가가 채택되어 왔다. 기존의 미술사가 서구 중심, 혹은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되어 온 탓이다. 반면 아방가르드 영화로 분류되는 <유메지>의 경우는 기존의 관습적인 문법을 거부한다. 극중 유메지는 "아르누보와 같은 동시대 서양회화의 스타일을 동경하면서도 일본문화의 고유성을 재현해야 하는 이중의 과업"(165쪽)을 짊어지는데, 결국 자신이 겪고 있는 창작불능의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유메지>는 "느슨한 서사를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 현실과 몽상, 회화와 영화의 이종적 이미지를 공존시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그 의도를 끊임없이 재고하게 만든다."(167쪽) 저자는 <유메지>의 다양한 장면을 세밀하게 분석해 나가면서, 작품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를 종합적으로 서술한다.

5장에서 선택된 영화는 <뮤지엄 아워스>다. 이 작품에는 긴박한 갈등이나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사 박물관 안내원 요한과 여행객 앤의 관점을 통해 그들 주변 상황을 관조적인 태도로 보여줄 뿐이다. <뮤지엄 아워스>를 연출한 젬 코헨은 우리의 삶이 마치 어느 거리의 모습처럼 복합적인 층위로 구성된 반면, 극영화는 매우 협소한 틀로 그것을 재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에 그는 "어디를 봐야 할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는 영화"(217쪽)를 만들고자 했다고 작품의 제작 의도를 밝힌다. 즉, "코헨은 삶의 현실성이 거리의 개방성과 맞닿아 있다고 본"(218쪽) 것이다. 길거리 자체를 무정형의 시공간으로 간주하는 코헨의 관점은 지극히 근대적이라 할 만하다. 이에 카메라는 관객을 마치 '소요객'과 같은 상태에 위치시키면서, 지구화가 진행된 오늘날 도시/미술관의 풍경을 보여준다.

마지막 6장에서는 <프랑코포니아>와 <내셔널 갤러리>라는 두 영화가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미술관과 예술 담론 간의 다층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좋은 사례다. 영화는 역사적인 흐름과 단절을 포착하는 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데, <프랑코포니아>의 경우는 통시적 관점을 통해 미술관의 역사와 예술사의 결절/모순을 '중첩 서사' 기법으로 극화하는 반면 <내셔널 갤러리>는 공시적 관점을 통해 예술 제도가 수용자와의 현재적 관계 안에서 이미 다층적인 서사로 분열되어 있음을 말한다(252쪽). 알렉산드르 소쿠로프가 연출과 내레이션을 맡은 <프랑코포니아>는 예술 작품을 둘러싼 역사의 허무와 그로 인한 예술품 이미지의 공허함에 천착한다(255쪽). 한편 프레더릭 와이즈만이 연출한 <내셔널 갤러리>의 경우는 내레이션이 없는 관찰자적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항을 요약하면서 "소쿠로프의 예술이 구심적이라면 와이즈만의 예술은 원심적"(276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카메라 소메티카』는 영화라는 존재 자체를 성찰한 책이다. 오늘날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에게 유발되는 '정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나, 이는 사실상 인류가 회화와 같은 예술 작품을 통해 느껴온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론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갈수록 더욱 가속화하는 듯하다. 바로 그러한 지점으로 인해, '인지주의 영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후속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글 · 이준엽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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