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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전쟁영화의 환상성과 헤테로토피아-<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전쟁영화의 환상성과 헤테로토피아-<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3.05.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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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참혹하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으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수단 내전과 관련된 뉴스가 우리에게 그 실상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전쟁영화도 이와 비슷하다. 영화에서 전쟁만큼 매력적인 소재도 드물다.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피와 살이 허공에 흩어지고, 팔다리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맥없이 부러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잇장만큼이나 얇은 전장의 아비규환을 영화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 물론 영화가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서부전선>과 같은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관객들이 마치 눈앞에서 현장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도 같은 맥락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과 기예르모 텔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오필리아의 세 개의 열쇠>(2004)는 결이 약간 다른 영화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사실성보다 환상성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영화는 전쟁이라는 현실과 환상 공간이라는 헤테로토피아의 대립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의 대비는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1년 시차를 두고 개봉한 두 작품이 환상성을 매개로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는 점은 흥미롭다. <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는 시간의 현실성과 공간의 환상성이 결합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웰컴 투 동막골>은 6.25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1953년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9월이 시간적 배경이며, 강원도 태백산맥 함백산 골짜기에 있는 동막골이 공간적 배경이다. 국군, 인민군, 미군이 등장하고 그들은 총과 비행기, 폭탄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군인이 총으로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고, 영화의 결말에서는 미군 폭격기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한다. <판의 미로>는 1944년 스페인,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군과 그 시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배치된 정부군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오필리아가 만삭의 엄마와 함께 정부군의 최고 지휘관이자 새아버지인 비달 대위가 있는 숲속 기지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공간의 환상성이 공존하는 영화이다. 그중에서 동막골은 현대 문명의 철제 무기와 대비되는 농경문화의 자연 친화적인 가치관이 두드러진 공간이다. 이러한 설정이 작위적이라거나 퇴행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이 643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것을 보면, 이 영화의 설정과 메시지가 당시 관객들의 무의식 혹은 이데올로기와 공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5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천만 영화’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웰컴 투 동막골>의 흥행은 꽤 주목할 만한 사회 현상이기도 하다.

<웰컴 투 동막골>은 6.25 전쟁이라는 현실 안에 동막골이라는 비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새다. 동막골은 전쟁과 무관한 곳이고, 그 주민들은 마을 밖에서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서사는 어긋남에서 시작된다. 탈영한 국군과 낙오된 인민군이라는 설정부터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대립 구도와 어긋난다. 군인(국군+인민군+미군)과 주민들의 관계도 상식을 벗어난다. 주민들이 군인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멧돼지를 퇴치한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공간이 실재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매체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에 동막골이라는 가상공간을 만들어 놓고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러한 ‘전복의 미학’은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 못지않게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휴머니즘의 요소를 강조하는 효과를 거둔다.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은 미셸 푸코가 제시한 헤테로토피아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헤테로토피하는 지도 위에 위치를 설정할 수 있는 유토피아이다. 이 헤테로토피아는 실재하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현실 세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反 공간이다. 국군, 인민군, 미군이 연합군 폭격에 결연하게 맞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주민들을 보호하는 행동은 분단 현실과 명백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 중인 1953년의 한반도 현실에 대한 이의제기인 동시에 여전히 분단상황인 2005년 현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영화일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진태의 행적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의 참혹함과 대비되는 환상 공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이의를 제기한 셈이다. <판의 미로>는 두 영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제시하면서 여섯 가지 원리를 제시했다.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은 그 가운데 보정의 헤테로토피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푸코는 17세기에 영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세운 청교도 사회,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예수회의 식민지를 그 사례로 제시한다. 이 식민지들은 서구의 나라들이 무질서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보일 만큼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공간이다. 푸코는 이 공간들을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라고 불렀는데, 그의 설명은 전적으로 서구중심주의적인 사고의 산물일 것이다. 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 파라과이 원주민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를 反 공간 혹은 ‘대안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은 전쟁 혹은 분단이라는 현실에 이의를 제기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의 방과 지하왕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는 보정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공간의 환상성을 통해 리얼리티를 확보한 역설적인 작품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웰컴 투 동막골>과 <판의 미로>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함께 영화가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하는 방식을 비교, 검토해보는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의 신화적인 상상력과 여일, <판의 미로>의 동화적인 세계와 오필리아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사진 출처: 다음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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