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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상한 실패 <물안에서>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상한 실패 <물안에서>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3.05.08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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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에서>(2023)가 개봉하기 전, 이 영화 전체가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전에 특별한 시각적 형식의 감각을 극단적으로 전면화하거나, 직접적인 방식의 의미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스럽게도 <물안에서>는 정말, 두 장면 정도를 제외하고는, 영화 전체가 초점이 맞지 않는 영화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초점이 맞지 않는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 감각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영화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눈이 좋지 않은 주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바라보는 시각을 영화 전체의 형식으로 은유하여 의미화한다거나 또는 실험 영화들처럼 시각 이미지가 주는 표면의 감각 자체를 전면화하고 있는 방식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다시 말해 선형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야기가 존재하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로 감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상한 경험이지만, <물안에서>는 그 특별한 경험과 형식을 직접적으로 의미화하거나 감각화하지 않는다. 그저 원래 이러한 형태의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진행된다. 실제로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약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초점이 맞지 않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약간 흐릿하게 보일 뿐 인물들과 배경, 소품등 각각의 피사체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으며 청각 정보는 어떠한 방해물이나 변조 없이 사실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별한 스타일의 선택과 상반되는 영화의 내적 보편성과 자연스러움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홍상수다운 방식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의 형식을 굳이 사용해놓고 그것을 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효과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실제로 <물안에서>는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스타일 외에는 그의 영화에서 늘 해왔던 방법을 반복하고 있다. 일상과 노동의 세계 밖을 떠돌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의도적으로 아름답지 않게 담으면서, 삶의 유혹에 빠진 관광객들이 속한 해변 위쪽의 세계와 해변에서 그 부산물들을 치우는 땅의 세계 사이에서, 반복되는 말과 행위, 이미지들이 결국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세계의 사실성을 무너뜨리며 위쪽도 아래쪽도, 의미도 무의미도 아닌 수평선 너머의 실재를 모호하게 비추며 끝이 난다.

‘컷’이라 외치지 않으면서, 현실의 것을 모방하여 허구의 이미지로 변주하는 과정이 다시 거꾸로 바다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실제 죽음인지 연기인지 모르는 어떤 순간으로 끝이 나는 <물안에서>의 구조적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상수의 이전의 영화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사실성 위에 구조적 탑을 쌓았다고 한다면, <물안에서>는 이미 초점이 나간 상태의 무너진 사실성 위에 탑을 쌓았다. 예컨대 성국(하성국)이 귀신에 대해 “그냥 한번 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해지잖아.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내 눈에 보이는 거잖아.”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보자.

홍상수 영화에서 귀신과 같이 명확하게 비현실적인 대상이 나오는 장면은 <하하하>(2010)의 이순신(김영호)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의 검은 옷 남자(박홍열)처럼 꿈이라는 특정 조건으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되어 모호하게 보이는 인물들 또한 어디까지나 반복, 대구, 중첩을 이루는 구조적 효과를 통해서만 나타났다. 근작들만 살펴봐도 <풀잎들>(2017), <도망친 여자>(2020), <탑>(2022) 속 인물들은 처음에는 현실적인 배경의 인물들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영화의 끝에 도착했을 때는 인물들과 그들이 속한 세계가 더 이상 사실적인 배경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물안에서>는 이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적인 것과 비사실적인 것 사이의 모호한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이미지의 감각은 직접적으로 비사실적인 이미지지만 앞서 언급한 데로 영화는 그것을 비현실적인 설정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이야기의 표면으로 활용하면서, 시각적으로는 비사실적이지만 이야기와 인물은 사실적이어서 사실적인 것과 비사실적인 것 사이 부조화의 세계로 영화를 구성한다. 때문에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사실적이었던 이미지와 이야기가 현실과 비현실, 사실주의와 비사실주의 사이의 모호한 세계의 결말로 전환되었을 때의 충격과 감흥이 확장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반해, <물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초점이 나간 모호한 이미지이기에 영화의 구조가 지향하는 바가 결말로 나타났을 때의 감흥이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특별한 이미지가 주는 감각을 영화가 직접적으로 의미화하지 않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이미지 자체가 주는 속성과 주인공인 성모(신석호)가 지닌 고민이 조응하여,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긍정적이거나 생명력 있는 정서와는 반대편에 있기에, 불투명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간접적이지만 지속해서 느끼게 하는 부분이 그나마 영화의 결말에 나타난 죽음과 생, 현실과 허구 사이의 세계로 접속하는 순간의 정서를 강화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결국, <물안에서>는 홍상수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과감한 형식적 시도와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을 묘사하려는 시도가 이전까지 반복적으로 해왔던 방법들과 완벽히 조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조화에는 마치 29번째 장편을 만든 노감독의 영화에서 첫 영화를 만들며 “창조성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이상함이 있다. 영화와 영화 외적 정보와는 별개의 것이니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덧붙이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서 본 것을 따라 하는 것은 싫다면서 현실을 모방하는 성모를 비웃는 듯하면서도 진지하게 바라보는 영화의 복합적인 시선과 같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안에서>는 과감한 시도 자체는 실패했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로 감상한다는 것이, 황당하고 치기 어린 선택 같기도 하면서 그 과감성에 당혹스러움과 기묘함을 느끼게 하는 선택이기에 계속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상한 실패작이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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