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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장기자랑>의 장기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장기자랑>의 장기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3.05.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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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 후 은둔하던 어머니들을 세상과 연결할 방안으로 출발한 <416 가족노란리본> 극단을 다룬다. 일곱 명의 어머니로 구성된 극단은 2015년 첫 공연 이후 8년이 되었다. 영화는 그동안의 극단 활동이나 공연에 주목하기보다 참사 이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담는다. 한순간의 사건으로 삶이 순식간에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생의 진실을 품고 있는 영화는 수인 엄마, 동수 엄마, 애진 엄마, 예진 엄마, 영만 엄마, 순범 엄마, 윤민 엄마에서 김명임, 김도현, 김순덕, 박유신, 이미경, 최지영, 박혜영의 모습을 함께 발견해 간다. 영화는 이들에게 각인된 그날의 사건과 오늘의 삶을 이어내어 시간을 품고 흐르는 삶을 곁에서 지켜내면서 다르지 않고 또 다른 존재로서 “개인들”을 담는다. 

누군가가 나를 쉽게 규정하고 명명하면 불편하다. 그럼에도 나는 참 쉽게 타인을 명명하고 가둔다. 분류와 명명은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생겨났음에도 종종 게으르고 무능한 사유로 돌변해 이해를 거둘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고서 안다는 확신으로 상대를 가두고 그만큼 나도 가둔다. <장기자랑>은 “-답게”에 질문을 던진다. 유가족-답게, 피해자-답게, 어머니-답게, 어른-답게로 가두어진 너의 상과 나의 상에 유쾌한 균열을 가하면서, 다름과 차이를 그럼에도 함께하는 경험을 따뜻하게 일깨운다.

아이들의 이름표를 달고 공연자로 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아이들을 더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면서 아이들이 펼치지 못한 장기자랑을 펼친다. 아이들을 보낸 어머니로만 존재할 거 같은 어머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배역에 욕심을 내고 연극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를 내가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유가족’을 틀 안에만 갇히지 않고, ‘나’라는 개인이 품고 있는 다양한 나를 마주하고 욕망하고 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같은 사건을 겪었다고 해서, 공유하는 슬픔이 있다고 해서, 서로의 슬픔을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무조건 한 편이어야 한다거나 우리로 수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 있을 터고, 대신해 줄 수 없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을 터고 무엇보다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있을 테다. 8년의 세월을 함께하는 여정을 담는 영화는 이들을 “우리”로 봉합하거나 통합하려 하지 않는다. ‘나’와 ‘너’가 없이 ‘우리’만 남는 게 아니라 ‘나’와 ‘너’가 만나 부딪히고 깨지고 조율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담는다. 너와 내가 만나는 장소로서 연극이 있고 영화가 있다.

 

<장기자랑> 영화와 연극은 파기된 약속을 회복하여 우리를 계속 살아남게 하는 예술의 몸짓이기도 하다. <장기자랑>은 국가가 파기한 약속을 상기하는 몸짓이고, 부모가 자식에게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약속의 몸짓이고, 말 되지 못한 말이, 말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도록 곁에 머문 실천이다. 영화는 어머니들 “곁”을 지키는 김태현 연출가를 가만히 담는다. 엄기호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곁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듣는 자리이고, 말이 아니라 아직 말 되지 못한 말을 들어내는 자리이고, 이들의 말이 말로 들릴 때까지 반복하고 곱씹고 끊임없이 물으며 들어내는 자리이다. 김태현 연출가는 세월호 어머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 해” 라는 말 한마디로 달려왔지만 막상 그 말이 아닌 걸 확인하고도 곁에 머문다. 연극 연출의 자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을 마주한 구성원으로서 재난을 겪은 당사자들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김태현 연출가의 자리가 영화의 자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더 나아 “곁”의 자리가 확장되는 순간을 가만히 담는다. 어머니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연출가가 자신의 말을 하는 순간이 있다. 배역으로 인한 공연자들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공연이 어려울 지경에 이를 때, 연출가는 박유신(예진 엄마)을 만난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듣다가 마침내 말한다. “저도 서운했었거든요.” 그 한마디에 마주 앉은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리고 “곁”의 위치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선이 확장되어 자기 힘듦을 풀어놓는 시간을 건너 자기라는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관계의 확장을 일어난 것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계도 삶도 고정된 게 아니다.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인 게 삶이고 동시에 일상이다. 어쩌면 삶은 그 전환을 넘나들면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국가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대전제 하에서 말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이름표를 단 어머니이자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공연자의 생동적이고 활기 있는 동요와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어른의 모습을 담는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자랑>의 진짜 장기는 어머니들의 장기자랑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장기를 어머니가 뒤늦게 알아가는 것에서, 아이들이 못다 한 미완의 장기자랑을 어머니가 대신하는 것에서, 점차 어머니들 자신의 장기자랑을 만들어간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내고 남은 자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과거를 품고 내일로 가는 것이기에.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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