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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불균질한 감정의 원형 <로스트 도터>(2022)
[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불균질한 감정의 원형 <로스트 도터>(2022)
  • 이하늘(영화평론가)
  • 승인 2023.08.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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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영화특별시 SMC

<로스트 도터>는 중년 여성 레다(올리비아 콜맨)의 부식되었던 기억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영화다. 그래서일까.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찜찜하고 불편한 기분을 감추기 힘들고, 마치 어디선가 악취가 진동하는 착각까지 든다. 영화는 그리스로 휴가를 온 대학교수 레다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어린 딸 엘레나와 해변에서 노는 젊은 엄마 니나(다코다 존슨)를 포착하고 카메라는 레다의 눈이 되기를 자처하며 지속적으로 그들을 쫓는다. 과거, 두 딸을 키우던 젊은 레다(제시 버클리)에 대한 기억들은 니나로 하여금 과거의 지반을 뚫고 현재의 시간으로 침입을 시작한다. 

영화의 강렬함은 이러한 기억들이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며 시작된다. 레다의 부유하는 감정들은 적대, 경계를 주요한 테두리가 되고, 변주되고 마모되는 모래사장의 특징처럼 해변가는 그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분절된 욕망

영화의 오프닝은 밤의 해변가를 걸어가는 레다의 측면 얼굴이다. 하지만 어둠 탓에 가려진 얼굴은 쉬이 감정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는 <로스트 도터>가 양면적 욕망을 말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이어지는 숙소에 도착한 레다의 모습은 욕망을 시각적으로 점철한다. 방 안, 테이블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고, 과일의 매끄러운 단면을 본 레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감춰진, 썩은 뒷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 또한 니나와의 묘한 감정이 오간 낮의 해변가에서 숙소로 돌아온 밤은 오롯이 레다의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 이때, 레다는 테이블에 놓인 과일의 뒷면을 본다. 아름다웠던 겉면과 달리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벌레가 우글거리는 뒷면을 보고 레다는 인상을 찌푸린다. 이처럼 젊은 니나가 지닌 육체적 관능의 아름다움은 레다가 니나에게 지속적으로 시선이 가는 이유이자 욕망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썩어버린 과일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중년의 레다를 상징하며, 그는 실체를 마주하고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영화는 왜 중년 여성의 시점에서 젊은 여성을 보는 방식을 택한 것일까. 레다에게 있어 니나의 모녀 관계는 되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과거다. 커리어를 위해 남편과 두 딸 비앙카와 마사를 배반하고 떠났던 3년의 시간 동안 레다는 ‘엄마’의 명칭을 버렸다(어쩌면 스스로 잃어버리기를 자처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작 소설인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사랑」과 달리 영화는 <잃어버린 딸>이라는 제목을 내세우는데, 니나와 엘레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레다에게 그들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싶은 욕망으로 자리 잡는다. 

니나는 해변가에서 독립적으로 있는 레다를 부러워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라진 엘레나를 레다가 찾아준 것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지만, 니나의 시누이 캘리는 레다를 경계한다. 이유는 레다와 비슷한 40대이지만, 임신한 캘리는 레다를 보며 묘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이처럼 <로스트 도터> 속 여성들은 연대가 아닌 서로 경계하는 대상이다. “자식들이란 끔찍한 부담이에요.”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 레다와 “어디서 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선조의 뿌리를 묻는 캘리의 발언은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기에 충분하다. 캘리는 중년 여성이자 엄마가 되기 이전의 상태로 응집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고, 그런 상황에서 레다의 등장은 자신이 지닌 있던 열정과 열망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에 반해 니나는 레다의 자유로움을 원한다. 

 

'로스트 도터' 스틸컷. /사진제공=㈜영화특별시 SMC

유사 돌봄 행위를 표상하는 인형 

두 사람의 관계가 비극에 도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엘레나가 갖고 놀던 인형이다. 인형이 사라지고, 엘레나가 인형에게 행하던 폭력적인 행동(물어뜯고 때리는)은 니나에게 전이된다. 페어베언(W.fairbain)의 유아적 의존 단계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유아는 최초의 주된 양육자인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합일화가 된다고 말한다. ‘일차적 동일시’는 자신과 어머니를 분리시키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엘레나가 인형을 통해 유사 돌봄 행위를 하며 독립된 상태를 유지했다면, 인형이 사라지면서 어머니인 니나에게 다시 의존하게 된다. 젊은 레다 역시 딸인 비앙카에게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인형을 전달하지만, 인형의 형태가 훼손되고 버려지면서 비앙카의 폭력행위는 레다에게 고스란히 행해진다. 

인형이 사라진 직후, 분리 불안을 느끼는 엘레나를 본 가족들은 인형을 찾기 위해 해변 주변에 전단지를 붙인다. 레다는 그 상황을 목격했음에도 인형을 씻기고 품에 안는 등 인형에게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시도한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엘레나의 인형은 이제 레다의 품에 안기고, 인형은 레다의 가슴 언저리에 표식을 남긴다. 이 표식은 인형의 입을 막고 있던 불순물로 절묘하게도 레다의 젖가슴 부위에 떨어진다. 

앞선 페어베언의 자기 발달단계로 돌아가보자. 이 이론에서 젖가슴은 유아적 의존단계에서 의존대상인 어머니와 합일화되는 유일하고 주된 통로다. 그러한 신체 부위가 있는 위치에 불순물이 떨어지며 옷이 오염된 것은 인형을 훔친 행위가 레다의 불완전한 욕망임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레다는 핀셋으로 인형의 입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꺼내려 한다. 이때 입에서 기어 나오는 것은 벌레다. 레다는 온몸으로 적대감을 표출하며 인형을 집어던진다. 구강구조 중 하나인 입에서 무언가 빠져나오는 것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심리 성적 발달단계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심리 성적 발달단계 중 구강기는 입, 입술, 혀와 같은 어머니의 신체 일부를 빨려는 단계를 말한다. 그러한 구강기가 이물질에 의해 막혀 있던 것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것이다. 이어 인형의 원래 주인인 엘레나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엘레나에게 인형은 놀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로스트 도터' 스틸컷.

침입을 일삼는 몽타주

레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인형은 감정의 브레이크 제지하며 질주하기에 이른다. 어느정도 일정한 패턴을 지니던 몽타주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 중년 레다의 자리를 위협한다. 영화의 주요한 형식인 평행편집은 젊은 레다가 지닌 죄책감과 불안을 품에 안고 다수의 침입자가 되어 디제시스적 시간과 비디제시스적 시간 사이를 오간다. 침입의 첫 번째 순간은 독립적인 공간(레다의 숙소) 맞은편에 위치한 등대다. 등대 불빛의 무자비한 침투는 레다의 공간을 가차 없이 노출시킨다. 그 이후로 레다의 집은 초대하지 않은 다른 존재들이 들어오는 것이 용이해진다. 잠든 레다는 기시감에 눈을 뜨고 머리맡에 있는 또 다른 침입자 매미를 발견한다. 레다가 불쾌한 감정을 눈앞에서 치우는 것으로 그것은 마무리되는 듯 보이지만 점점 비선형적 시간과 생략된 사건은 절제를 모르며 뒤엉킨다. 

우리의 기억은 퍼즐과도 같다. ‘전체’의 그림을 보고 맞춘다면, 원형으로 돌아가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분의 조각들로부터 시작된 그림을 맞추는 것은 궤적을 잃어버리기 쉽다. 감독 매기 질렌할이 레다의 기억을 제시하는 방식은 후자에 가까운데, 이미지의 인과관계는 희미하고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오가며 관객들은 ‘감정’보다 ‘행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어 공간 범람은 이제 인간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레다에게 친절을 베풀던 호텔 종업원 윌(폴 메스칼)은 니나와 함께 자연스럽게 침범을 요구한다. 남들의 눈에 들키지 않고 외도를 할 공간으로 레다의 집을 택한 것이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집을 사용할 수 있냐고 묻는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니나 역시 정상적인 범주에 있는 캐릭터는 아닌 듯 보인다. 엘레나의 인형이 사라진 후, 니나는 이상적인 엄마의 자리를 잃는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아이에게서 분리되고자 하는 시도는 젊은 레다의 기억과 맞물린다. 중년 레다 역시 자신이 아이들과 남편을 떠나 불륜을 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마침내 니나에게 열쇠를 건네주려 한다. 

바로 그 순간에 영화의 형식에는 금이 간다. 여태껏 인형을 돌려주지 않던 레다는 니나에게 인형을 넘겨주며 사실을 고한다. 그간 니나가 엘레나에게 받았던 폭력적인 행위는 이제 레다에게 전이되는 것. 니나는 레다의 배에 선물 받았던 핀을 찌르고, 공간을 벗어난다. 침입자들이 모조리 나간 순간, 불균질하게 튀어 오르던 레다의 기억들은 통제된다(레다 또한 공간을 나가면서 침범을 가할 대상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밤의 해변, 오프닝에서 보였던 레다의 측면 얼굴은 프레임에 재등장하는데 밀려오는 파도 앞에 쓰러진 레다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뜬다. 주저하다 비앙카에게 전화를 걸고 카메라는 주인공에게서 점점 멀어지며 놓아주기에 이른다. 때문에 레다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감이 더욱 부각된다. 죄책감의 원형이었던 아이들과 전화를 하며 비로소 그녀는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불쾌한 감정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쓸려가고, 와이드한 앵글 안에 침범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공간의 침입자가 사라진 순간 레다는 부식된 기억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현실의 감정을 바라보게 된다. 

 

'로스트 도터' 스틸컷. /사진제공=㈜영화특별시 SMC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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