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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의 또 다른 변곡점,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
다르덴 형제의 또 다른 변곡점,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
  • 김소영(영화평론가)
  • 승인 2023.08.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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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그들은 다시 소외된 타자를 호명했다.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2022). 제목에서처럼 그들은 토리(파블로 실스 분)라는 소년과 로키타(졸리 음분두 분)라는 소녀를 소외된 타자들로 함께 내세운다. 그리고 둘의 가슴 시린, 아니 가슴 벅찬 우정을 실제 사건을 토대로 영화적 서사를 확장한다. <토리와 로키타>는 마치 <로제타(Rosetta)>(1999)에서처럼, 로키타의 얼굴을 클로즈하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무척 설레고 반가웠다. 로제타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비극적 장치를 동원하여 관객의 강렬한 몰입을 유도한다. 과연 <토리와 로키타>를 두고, 리얼리즘의 미학을 과시해온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우선 토리와 로키타는 그들이 소환한 여러 타자들처럼, 주체적 행동을 할 수 없는 이른바 강자에 의해 이끌려가는 존재로 살아간다. 벨기에로 불법 이주해온 아프리카 난민이라는 정체성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늘 그러했듯 관객의 연민은 다르덴 형제가 보여준 여러 인물들처럼, 즉각적으로 소년과 소녀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토리와 로키타를 쫓는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를 함께 쫓으며, 점차 토리가 되고 로키타가 되어 간다.


다시 소외된 타자들, 토리와 로키타

다르덴 형제가 영화제목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부분의 인물은 다양한 층위에서 소외된 타자로 재현되어왔다. 그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로제타(Rosetta)>(1999), <아들(Le fils)>(2002), <더 차일드(L’enfant)>(2005), <자전거 탄 소년(Le gamin au vélo)>(2011),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2014)이 벨기에 자국민 중심의 소외된 타자를 다루었다면, <약속(La promesse)>(1996), <로나의 침묵(Le silence de Lorna)>(2008),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2016), <소년 아메드(Le Jeune Ahmed)>(2019)에서는 벨기에의 이민자들이 소외된 타자들로 등장한다. 후자를 이어받은 <토리와 로키타>에는 벨기에로 불법이주해온 아프리카계의 두 아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의 사회적 신분은 체류증의 소유 유무에 의해 다시 구분된다. 체류증을 받은 토리와 받지 못한 로키타. 둘은 식당 주인의 마약 밀매업을 도우며, 각자의 구원자가 되어 함께 살려는 희망을 품는다.

 

<언노운 걸>에서 죽은 흑인 소녀를 재존재화시키는 백인 여성과 <약속>에서 흑인 불법노동자를 구해주는 백인 소년의 주체적 지위는, <토리와 로키타>에 이르러 아프리카의 난민 아동을 불법으로 착취하는 백인 남성으로 수렴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벨기에의 백인과 불법이주민인 흑인의 이분법적 구분에 주목하기보다, 유럽에서 발생하는 인종주의적 사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피부색과 무관하게 토리와 로키타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존재들, 그것도 어린 아동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르덴 형제가 프레임 안으로 위치시킨, 가시화되지 않은 채로 소거되는 수많은 토리‘들’과 로키타‘들’인 것이다.

 

전지적 카메라의 아이러니한 한계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낯섦은 대마초 재배지에서 토리를 쫓는 과정과 로키타가 맞이한 죽음의 순간에서 야기된다. 세계에 내던져진 로제타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던 카메라와는 달리, 죽음의 순간을 명시적으로 포획하는 카메라는 그야말로 전지적이다. 처음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사랑한 이유. 그것은 <로제타>에서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던 로제타를 그 세계에 그대로 버려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한 로제타를 아주 오랜 기간, 심지어 지금까지도 기억하며 그녀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관조적 거리두기라는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 덕분에, 로제타는 나의 세계로 침범할 수 있었다. 여기서 거리두기란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표정하지만 억눌린 로제타의 표정은 클로즈업에 의해 관객의 시선과 가깝게 마주한다.

로키타는 어떠한가? ‘로제타’와 ‘로키타’, 유사한 이름을 가진 두 소녀. 그러나 생존의 여부를 떠나 관객에게 남긴 상흔은 분명 다르다. 여전히 그녀가 살아가고 있을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로제타와 달리, 로키타는 영화의 프레임 내부뿐 아니라 나의 현실 세계에서도 사라져버린다. 로키타가 이처럼 그녀와 나의 모든 세계에서 소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말에서 그녀의 구원자인 토리가 강인한 모습으로 남겨지기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카메라가 포착한 죽음의 쇼트 때문일 것이다. 야생의 숲에서 총살당한 그녀의 죽음은 관객에게 명확하게 총소리로 선포된다. 그리고 시신 앞에 선 토리의 울부짖음을 통해 다시 한번 죽음의 비참함이 선포된다. 로키타의 죽음을 두 번이나 목도하게 만드는 카메라. 너무도 극적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사랑한 또 다른 까닭은, 때로는 그들의 카메라가 중요한 상황마저도 프레임 밖의 세계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리와 로키타>의 카메라는 소외된 타자를 향한 다르덴 형제의 관조적인 시선이 아닌, 전지전능한 대리자였다. 과연 그것이 정답이었을까? 마약재배지에서 로키타를 찾는 토리의 과정이 조금 덜 치밀했다면, 그리고 로키타의 죽음을 <언노운 걸>의 콤바 혹은 <로나의 침묵>의 클로디처럼 프레임에서 소거했다면 어땠을까? 


죽음의 반복, 유사하지만 다르게

다르덴 형제는 여러 영화에서 ‘죽음’을 매개로,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확장을 시도해왔다. <약속>에서 아미두의 죽음을 추측하게 만들었다면, <언노운 걸>과 <로나의 침묵>에서는 콤바와 클로디의 죽음을 프레임 바깥으로 내던졌다. 이처럼 여러 작품들에서 죽음의 사건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 외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며 서사를 뒤흔드는 기제로 작동했다. 그리고 개별체의 죽음은 공동체의 공생을 지향하는 감독의 주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반영해왔다. 

그러나 <토리와 로키타>는 영화적 현실에서 제거되는 로키타의 죽음을 총소리와 함께 시청각적으로 전시화한다. 또한 그 죽음은 사건의 종결로서 위치한다. 기실 <토리와 로키타>가 현실참여적 리얼리즘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토리와 로키타>는 <소년 아메드>의 결말에서 보여준 갑작스런 추락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써 죽음을 동원한다. 이로 인해 가공된 서사를 다루는 영화만큼이나 극적인 긴장감을 야기한다. 두 영화의 말미에 각각 추락과 죽음이 위치한 양상도 유사하다. 주인공의 추락이나 죽음이 리얼리즘적 사건이 아닌, 극적 몰입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의된 리얼리즘과 변주된 스릴러의 교차점에서 

다시 서두로 돌아가자. <토리와 로키타>에 나타난 다르덴 형제의 영화미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도 그들은 벨기에의 불법이주자들을 토리와 로키타로 치환하여 영화적 액티비즘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앞서 기술한 카메라의 작동 방식과 극적 서사의 작법을 리얼리즘의 새로운 시도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충격적 사건을 동원한 스릴러의 변주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어쨌거나 <토리와 로키타>의 복합적 양상은 그들이 필모그래피를 통해 이룩해온 성취를 총체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이 영화를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보다는, 리얼리즘과 스릴러의 교차점에 위치시키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려 한다.

이 모든 사유를 차치하고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소리는, 마약재배지에서 로키타를 찾던 부르짖음과 죽은 로키타를 향한 울부짖음. 그 두 차례의 반복된 토리의 외침이다. “로키타! 로키타! ...... 로키타!”

 

 

글·김소영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이자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 한국브레히트학회 공연이사,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이사, 한국미디어문화학회 연구상임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교양대학에서 <영화의이해>를 강의 중이며, 주된 연구분야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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