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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사람을 위한 식탁>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3.08.14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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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이 나온다. 채영은 심야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고 10년 전부터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 영화는 그녀의 상담에서부터 시작해 그녀의 요리하는 모습과 거식증 일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 박상옥이 등장한다. 학교에 출근하는 그녀는 딸의 증상으로 처음 대면한 거식증에 대해 세상의 오해와 자신의 편견과 딸의 병을 마주한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만 보면, 질병을 겪어내는 엄마와 딸의 영화 같지만, 사실 영화는 이 속에서 담긴 인생서사와 여성 신체서사를 담은 관계의 영화이자 대화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역할을 부여받고 이루어낸다. 역할들의 수행 과정이 아마도 인생이 아닐까. 이 중에는 내가 이룬 역할도 있고, 날 때부터 주어진 역할도 있다. 후자의 역할 중 하나가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다. 태어나서 보니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이들의 그늘 아래 살아 내야만 했다. 인생의 베이스캠프인 이 정답 없는 공간은 그래서 늘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그러다 나의 부모 또한 자식이었고, 나 또한 부모가 된다는 사회적 질서를 마주하게 될 즈음, 이해는 되지만 용서는 안 되고, 용서는 안 되지만 애정은 가고, 분노가 올라오지만 연민 또한 함께하는. 복잡 미묘한 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에 반응하는 나의 복잡미묘한 몸이 있다.

 

 

영화는 사람 채영과 상옥 모녀를 소개한다. 채영은 심야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자 박상옥의 딸이고, 박상옥은 학교 선생님이자 채영의 엄마이다. 채영은 식이장애를 앓고 있고 이는 채영과 상옥이 함께 풀어가는 질병이자 관계의 숙제이다. 영화는 식이장애를 주인공으로 두고 이를 설명하거나 삶을 잠식하는 질병으로 풀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이들의 삶을 담으면서 그 속에서 식이장애 질병의 존재를 마주한다. 그렇게 영화는 두 사람의 말과 태도를 “곁에서” 듣는다. 채영과 상옥의 말을 듣다보면, 채영은 채영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옥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둘은 각자 이야기는 상대를 탓하거나 평하는 말이 아닌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러다 서로를 말할 때는 서로를 향해 ‘대화’를 한다. 이들의 솔직하고도 직설적인 자기표현은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일례로, 싱크대 아래에 앉은 상옥과 냉장고에 기댄 채영의 부엌 대화는 솔직하고도 날카롭다. 여성의 일상적인 공간인 부엌에서 식사 후 자연스럽게 시작된 둘의 대화는 거식 때 채영의 마음 상태로 향한다. 이때 채영은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을 휘어잡고 있고 내 인생의 주도권은 내꺼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말을 해 상옥(뿐 아니라 관객의)의 추측을 뒤엎는다. 수많은 억측이 난무한 질병인 만큼 채영이 말한 주체성의 감각은 새로운 일깨움이었다.

 

이는 상옥의 어머니이자 채영의 외할머니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두 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가 바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옥의 엄마이자 채영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도 섭식장애를 앓고 있었음을 둘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다. 채영의 말은 오랫동안 거부한 엄마를, 엄마의 엄마를 이해하게 한 것이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한평생 살았던 그녀의 삶에서 어쩌면 자신의 몸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딸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자리에 내몰려본 것이다. 그리고 채영 또한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엄마의 엄마가 자신 속에 존재함을 깨닫는다. “고구마를 예쁘게 찐” 외할머니의 방식을 이어받은 채영은 이후 외할머니의 제사상을 차려낸다. 물론 영화는 그렇게 삼대가 화해했다는 식의 봉합이나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공존하고 굴러다니는 현재 진행형을 인정한다.

 

 

영화는 채영과 상옥이라는 매력적인 두 인물을 통해 섭식장애라는 질병에 대해 개별적인 동시에 통시적인 시선을 부여한다. 질병은 사람을 판단하는 요소가 아니라 이들의 부분이라는 점과 질병은 또한 단독체가 아니라 정신과 신체가 연결되어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족의 삶, 시대의 격변, 당대 이데올로기와 시스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출처: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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