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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 톡톡] <수프와 이데올로기> ―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 기억의 고통과 망각의 상실
[서곡숙의 문화 톡톡] <수프와 이데올로기> ―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 기억의 고통과 망각의 상실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8.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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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프와 이데올로기>: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과 제주 4.3 사건
 

<수프와 이데올로기>(양영희, 2022)는 한국인 부모와 일본인 사위, 제주 4.3 사건, 북송된 세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부문 흰기러기상, 10회 들꽃영화상 대상, 1회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재일조선인 2세 출신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양영희는 <디어 평양>(2006) <선아, 또 하나의 나>(2006), <굿바이, 평양>(2011), <가족의 나라>(2013),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를 감독하여,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 제64회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상, 제15회 시나리오작가협회 기쿠시마류조상, 제67회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특히 <가족의 나라>는 세계 18개 영화제에 초청됐고 2012년 일본 최고의 영화 선정과 일본영화기자협회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전반부는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사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후반부는 어머니의 제주 4.3 사건에 대한 기억을 들려준다. 이 영화는 한국인/일본인, 남한/북한, 국가폭력/양민학살이라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 한국인/일본인: 닭백숙, 식구(食口) 되기와 소통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한국인/일본인의 대립은 일본의 민족 차별에 대해 닭백숙과 식구(食口) 되기로 소통을 보여준다. 우선, 한국인/일본인의 대립에서 닭백숙의 단계별 변화는 포용, 소통, 화합을 거쳐 식구(食口)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인 아버지는 한국에서의 일제시대 억압과 일본에서의 한국인 차별로 인해서 일본인과의 연애, 결혼을 반대한다. 영화 전체에서 닭백숙은 세 가지 에피소드로 제시된다. 처음으로 인사를 오는 장래 일본인 사위를 위해 한국인 어머니가 닭백숙을 대접함으로써 포용을 보여주고, 나중에는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사위가 함께 장을 보고 닭백숙을 만듦으로써 소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일본인 사위가 한국인 어머니를 위해 혼자 닭백숙을 만들어 대접함으로써 화합을 보여준다. 일본인 사위는 아버지 영정에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를 바친다. 다음으로, 한국인/일본인의 대립에서 한복 웨딩 촬영은 딸 부부와 웨딩 사진 촬영에 함께 하는 부모를 통해 동화를 보여준다. 한국인 어머니는 한복이 잘 어울리는 일본인 사위의 모습에 기뻐하고 아버지의 영정 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복 웨딩 촬영을 통해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남편의 동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일본인의 대립에서 일본인 남편은 어머니에게 온 장례 체험 초대장에 분노하여 강하게 항의함으로써 가족의 친밀성을 보여준다.

 

한국인/일본인의 대립은 미디엄숏과 바스트숏, 롱숏과 뒷모습을 통해 심리의 묘사, 기쁨과 회한의 대비를 표현한다. 장래 일본인 사위를 처음 한국인 어머니에게 소개하는 장면과 닭백숙을 먹는 장면은 롱숏, 미디엄숏, 바스트숏으로 점점 다가가는 카메라를 통해 어색한 상황에서 친밀한 상황으로의 변화, 딸과 미래 사위에 대한 애정의 심리 묘사를 표현한다. 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장을 보는 장면, 자전거를 끄는 어머니와 봉지를 들고 가는 사위의 모습은 롱숏과 뒷모습을 통해 소통과 동화를 표현한다. 한복 웨딩 촬영 장면은 풀숏, 미디엄숏, 바스트숏으로 점점 카메라가 다가가면서 딸과 사위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기쁨, 함께 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3. 남한/북한: 북송된 세 아들, 45년의 북송사업과 회한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남한/북한의 대립은 북송된 세 아들, 45년의 북송사업과 회한을 보여준다. 우선, 이름은 아버지의 북한식 이름과 딸의 남한식 이름을 통해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량공선’이라는 북한식 표기로 북한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고, 딸은 ‘양영희’라는 남한식 표기로 중립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조총련 활동가 부모는 북한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조총련 활동가로 일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내조하고, 나중에 세 아들의 북송 이후 어머니도 조총련 활동가로 일함으로써 1960년대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에 대한 기대를 보여준다. 그리고 세 아들의 북송은 북에서 수여 받은 훈장들과 큰아들의 죽음을 대비시킨다. 세 아들은 김일성 환갑 축하자리에 강제로 북송되고, 아버지가 받은 훈장은 세 아들의 보험이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큰아들 건오가 북한에서 음악을 포기하는 삶에 비관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고통과 회한을 겪게 된다. 또한, 북송사업은 세 아들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궁핍에 직면하게 만든다. 북송사업은 어머니는 북송으로 인한 세 아들 가족의 경제적 궁핍에 직면하여 몇 개의 집값을 북한에 보내는 45년간의 북송사업으로 일가의 가장 노릇을 하며, 연금을 받는 와중에도 빚을 내어 생필품을 보냄으로써 경제적 곤궁에 처해진다. 마지막으로, 치매는 북송사업의 망각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치매 후 북송사업 자체를 잊게 되고, 딸은 조카의 편지를 앞에 두고 부치지 못하는 답장을 쓰며 고뇌한다.

 

남한/북한의 대립은 사진·내레이션·표정의 결합, 미디엄숏을 통해 사실·사건·심리의 결합, 염원/막막함의 대비를 표현한다. 세 아들이 강제로 북에 가게 된 사연, 큰아들이 음악을 못하게 되면서 고통을 겪고 죽은 사연은 세 아들에 대한 사진자료들의 편집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고, 딸 영희의 내레이션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고, 사진을 보는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통해 회한의 심리를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딸이 지켜보는 장면은 치매 상황에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어머니, 북한의 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은 어머니의 염원, 북한 입국이 금지된 딸의 막막함을 대비적으로 그려낸다.

 

4. 국가폭력/양민학살: 제주 4.3 사건, 죽음과 공포의 외상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국가폭력과 양민학살의 대비는 제주 4.3 사건을 통해 죽음과 공포의 외상을 보여준다. 우선, 계엄령과 양민학살은 국가폭력의 잔인성을 드러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분되고, 제주는 단독 선거를 주장하며 관덕정 시위를 벌인다. 국가의 계엄령 선포로 군경은 관덕정 시위 참가자를 총살하고 산의 무장대를 점거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총살하여 1만 4532명의 양민을 학살함으로써 국가폭력의 무자비한 잔인성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무장대 지원 활동은 용기와 두려움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받은 가솔린을 물통으로 몰래 나르는 활동을 통해 무장대를 지원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또한, 어머니의 친지와 약혼자의 죽음은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와 슬픔의 외상을 드러낸다. 큰 외삼촌은 세 아들의 시신을 보고 분노하다가 군경 총의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맞아 두 눈알이 튀어나오고 사망한다. 의사 약혼자는 죽음을 각오한 상황에서 약혼반지를 돌려주고, 무장대를 지원하기 위해 산으로 가고 결국 사망한다. 가까운 친지와 약혼자의 죽음, 피로 물든 개천, 길가에 쌓인 시체는 죽음의 공포와 슬픔으로 외상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밀항은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18세의 나이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30킬로의 길을 걸어 산책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일본으로 밀항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국가폭력과 양민학살의 대비는 뒷모습과 롱숏, 트래킹숏과 익스트림롱숏, 미디엄숏과 롱숏을 통해 기억과 망각, 고통과 상실, 슬픔과 망각을 표현한다. 어머니가 기념관에서 수많은 죽음을 직면한 후 제주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어머니의 혼자 앉아 있는 뒷모습 롱숏을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상실을 표현한다. 제주 바닷가에서 4.3 사건으로 인해 불탄 집터 옆을 지나가는 장면은 70년 전 밀항을 위해 걷던 어머니의 강인함, 현재 불탄 집터를 보는 어머니의 망각을 통해 기억/망각, 강인함/상처를 대비시킨다. 4.3 제주지역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를 걷는 장면은 약혼자 묘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익스트림롱숏으로 표현함으로써 과거의 슬픔에 대한 기억과 망각을 통한 상실을 대비시켜 표현한다.

 

 

5.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과 소통, 회한, 외상의 기억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을 통해 소통, 회한, 외상의 기억을 소환한다. 부모는 일제시대, 분단 상황, 단독선거 주장과 양민학살을 겪고, 제주 4.3 사건에 대한 충격과 끔찍한 기억으로 남한 정부를 비판하고 북한 정부를 지지하게 되며, 일본의 한국인 차별 상황에서 조총련 활동가로 일하고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내게 된다. 그래서 한국인/일본인, 남한/북한, 국가폭력/양민학살이라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 대립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제주 4.3 사건이다. 어머니는 제주 4.3 연구소의 인터뷰 날부터 치매가 진행되며, 과거의 사건과 죽은 약혼자가 꿈에 나오게 되면서, 잊고 싶은 기억, 끔찍한 충격을 망각하고자 한다. 어머니는 죽은 외삼촌, 죽은 큰아들, 죽은 남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딸은 계속해서 마치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대답함으로써 가상현실의 매트릭스를 경험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다큐멘터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해 죽음과 공포, 기억/망각의 대비를 표현한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역사적 사실을 애니메이션으로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어두운 색채와 까마귀의 상징을 통해 죽음과 공포를 표현한다. 또한 치매가 진행된 어머니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깜빡이는 불빛을 통해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키면서 기억과 망각의 대비를 표현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기억의 고통에 직면하여 망각의 상실을 선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과거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국가폭력의 잔혹성과 양민학살의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수프와 이데올로기 >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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