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최양국의 문화톡톡] 3저-가을의 노래 그리고 마법
[최양국의 문화톡톡] 3저-가을의 노래 그리고 마법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10.04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현실 세계에도 마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현실이기에 더 마법적이고, 우리가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에 더 마법적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슴 뛰는 마법이다.”

-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2016년), 리처드 도킨스/김명남 옮김 -

3저(저출산~저전환~저성장)의 시대에도 바람은 분다. 날개 젖은 마파람이 가을의 냄새, 빛깔, 소리의 무게에 눌려 내려앉는다. 파란 하늬바람 속에서 포도, 달, 잎사귀가 숨을 쉬며 하루를 여닫는다. 흑백의 눈속임 같은 아침은 엄마의 품속처럼 정겨운 포도 냄새로 익어간다. 두런거리는 햇살의 낮이 버드나무에 걸린 하얀 달로 빛난다. 아침과 낮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밤은 잎사귀 사이사이 소리를 품으며 흐른다. 갈바람의 뜰에서 냄새, 빛깔, 소리와 어우러지며 공연하는 3저. 단조가 장조로 바뀌며, 현실은 가슴 뛰는 마법이 된다.

 

가을의 / 아침 ‘냄새’ / ‘저출산’ / 구조화며

3저는 유기체적 성격을 갖는다. 아침~낮~밤의 시간 흐름에 따라 그 상대적 생명력을 노래한다. 출산(Birth)은 하루의 시간 주기 중 아침(탄생)의 노래에 해당한다. 세대와 세대가 이어진다는 것은 생태계 속 생명체로서 흔적 남김과 확산의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가을의 냄새와 같다.

통계청 발표(2023년 8월 30일)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명, 올해 2분기는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유일한 0점대 수준에서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인다고 한다. 우리의 ’인구절벽‘이 현실화하며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인구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는 산업 관련한 자본구조나 노동 생산성 및 경쟁력과 역의 상관성을 가지며 심각한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 가을의 아침-냄새와 초조, Pixabay
* 가을의 아침-냄새와 초조, Pixabay

가을의 아침은 후각이 지배한다. 문득 하루가 퍼져 나가는 시간에 가을의 냄새는, 포도가 익어가는 시간과 속도에 따라 규모의 경제로 열려온다. 계몽주의 시대의 지독한 악취가 남프랑스의 산속에서 흘러나온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가 향수를 뿌린다.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드나 생 쥐스트, 푸셰나 보나파르트 등의 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 커녕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하고 증오받는 것에서. ~(후략)~.”

-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1985년), 파트리크 쥐스킨트/강명순 옮김 -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천재적인 절대 후각의 소유자이다. 그의 코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으로써,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냄새로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무취‘의 세계이다. 태어날 때부터 무취라는 이유로 섬찟한 대상으로서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란다. ’악취‘의 세계이다. 성장하면서 조향사 밑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자신의 천부적 후각 재능을 살려 조향사 대신 모든 향수를 만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의 냄새를 맡게 된 그르누이는 그 황홀한 향기에 취해 그 향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의 향기에 대한 잘못된 집착은 25명의 소녀를 죽이고 그들의 체취를 채취하여 비로소 원하던 완벽한 향수를 만들게 한다. ‘향수’의 세계이다. 연쇄살인으로 경찰에 붙잡힌 그르누이는 마지막 사형 장소로 향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데, 그가 뿌린 완벽한 향수의 향기로 인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압도한 그르누이는 사형을 받지 않은 채 어디론가 향한다. 이후 어떤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스스로 뿌린 향수에 도취한 노동자들의, 향수에 대한 근원적 소유욕에 의해 결국은 죽게 된다.

『향수』에 나오는 세 가지 냄새의 세계는 무취~악취~향수의 세계이다. 무취의 세계에서 바라본 악취는 증오이며, 향수는 사랑이다. 인구론적 측면에서 무취의 세계가 인구 증가와 감소에 대한 중립적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면, 악취의 세계는 참을 수 없는 실존의 상실을 추구하며 점차 허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영역은 아닌지. 향수의 세계를 좇으며 서로의 사랑을 나누는 참을 수 없는 실존의 갈구를 절대 가치화하는 것은 어떨까? 가을의 냄새가 어스름 속에서 하얀 달로 퍼져가며 ‘저출산의 구조화’에 초조해지는 가을 아침이다.

 

‘저전환’ / 낮의 노래 / 가을 ‘빛깔’ / 환상(幻想)이네

3저는 아침을 지나 낮으로 향한다. 전환(Transformation)은 하얀 달과 파란 바다가 부르는 낮(적응)의 노래다. 이는 시공간에 따른 사회문화적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한 적응이라는 점에서 가을의 빛깔로 대변된다.

최근 새롭고 강력한 패러다임의 도래(디지털 경제, 탄소 중립, 탈세계화 등)는 개인과 국가의 대응 역량에 따라 ‘원주민’(주도적⋅창조적 적응)과 ‘이주민’(종속적⋅모방적 적응)으로 이원화한다. 우리의 현황은 어떨까? 2050 탄소중립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참여한 시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21년), 80%의 시민은 기후변화를 알고 있으나 ‘탄소중립’을 처음 듣거나 생소한 사람의 비중이 53.5%로 과반을 넘는다. 디지털전환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자료(2021년)에 의하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5단계(준비~도입~정착~확산~고도화) 중 가전과 유통 외 대부분의 대표 산업이 준비~도입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설문조사(2021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0.6%는 탄소중립이 필요 없다고 답하였고,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준비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이 56.1%에 달한다. 글로벌 지속 가능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환에 대해, 개인과 국가의 인식 및 대응이 다가오는 회색코뿔소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는 듯하다.

 

* 하얀 달-색깔과 날갯짓, Pixabay
* 하얀 달-색깔과 날갯짓, Pixabay

가을의 낮은 시각이 지배한다. 하루 중 햇살이 가장 깊고 넓게 비치는 때이다. 가을의 빛깔은 하얀 달을 파랗게 물들이며 베르가모(Bergamo, 이탈리아 북부 도시)를 음표화 한다. <달빛>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년~1918년)의 초기 피아노곡집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 네 곡(전주곡~미뉴에트~달빛~파스피에) 중 세 번째 곡이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로서, 어렸을 때부터 형식을 거부한 반항아로 알려져 있다. 25살이 되던 해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당시 프랑스 예술계에 널리 회자하고 있던 인상주의에 공감하게 된다. 이후 그의 음악은 정해진 규칙을 좇지 않고 감각으로 표현하며, 음악을 통해 무언가 말하는 것보다는 느끼게 하는 것에 치중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음이나 화성에 대해, 그림의 색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대상에 대한 감각적 공감을 나타내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달빛>은 발단에서 전개를 거쳐 절정으로 향하는 정형화된 구조를 거부한다. 오롯이 출렁이는 달빛의 색채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그만의 불명확하고 몽환적인 환상의 채색으로 채워 간다.

가을은 찬란한 햇살과 더불어 끝없는 빛의 향연을 펼치며 가을만의 색깔로 타오른다. 우리는 주요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위한 갈림길에서, 어떤 날갯짓을 하며 날아야 할까? 정형화된 틀이나 구조를 좇는 고정된 수동적 서사의 요구보다는, ‘원주민’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나 가치 생태계 완성에 치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방향이 정해진 연속적 직선형보다는, 여백을 허용하는 점선의 원형에 ‘원주민’과 ‘이주민’의 다양한 채색을 같이 채워 나가는 것은 어떨까? 가을의 빛깔이 ‘저전환의 머뭇거림’에 나비 날갯짓처럼 흔들려 가는 가을 낮이다.

 

‘저성장’ / 가을 '소리' / 성재수간(聲在樹間) / 답을 주니

아침과 낮의 노래를 부른 3저는 밤으로 향한다. 출산이 아침(탄생)이라면, 전환은 낮(적응)이니 성장(Growth)은 밤(지속)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성장은 냄새와 빛깔을 매개체로 하여, 양과 질적인 면에서 점차 커진다는 점에서 소리를 상징한다.

우리의 건강한 커짐을 위한 지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가고 있다. OECD의 세계 경제전망(‘23년 9월 19일)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1.5%(정부 전망치 1.4%), 일본의 성장률 1.8%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1998년 외환 위기 후 25년 만에 일본의 성장률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메이저 해외 투자은행(IB)이 예측한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 평균치도 1.9%에 그쳐, 한국의 1%대 저성장 고착화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을의 밤은 청각이 지배한다. 하루가 열리며 침묵에서 시작된 가을의 소리. 잎사귀의 도란거림을 떠나 별들의 들숨과 날숨을 강하고 낮게 토해낸다.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1007년~1072년)의 ‘추성부(秋聲賦)’는 가을의 소리를 노래한다. 밤은 깊어져 가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며 책을 읽고 있는 선비. 그때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섬찟함과 궁금증이 어우러지며 청각을 더욱 크게 열게 하고, 시각과 촉각까지 청각화 시킨다. 바람 소리인 듯 빗소리 같고, 비바람 소리인 듯 파도 소리 같더니, 이내 전장에서 말 달리며 쇠붙이가 부딪치는 쇳소리로까지 확대된다. 옆에서 졸고 있는 동자를 깨워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라 이른다. 눈을 비비고 나간 동자는 돌아와 “하늘에 달과 별이 빛나고, 은하수가 걸려 있고, 어디에도 사람 소리가 나지 않고, 나뭇가지에 소리가 걸려 있다(성월교결 명하재천 사무인성 성재수간 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라고 답한다. 이러한 ‘추성부’를 소재로 삼은 그림 중에 김홍도(1745년~1806년?)의 <추성부도 秋聲賦圖, 1805년)’가 있다.

 

*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년), 김홍도
*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년), 김홍도

장진성(www.kyobostory.co.kr, 2020년 7월)은 “~(전략)~.김홍도는 <추성부도>의 끝에 구양수의 「추성부」 전문(全文)을 직접 써넣었다. 이 그림에서 김홍도는 마른 붓질인 갈필(渴筆)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가을날의 쓸쓸함,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 처연한 달빛, 거칠고 황량한 나무 등 스산한 분위기의 가을밤 풍경을 그려냈다. ~(중략)~. 「추성부」를 통해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인생의 허망함과 쓸쓸함이라는 메시지를 김홍도는 <추성부도>를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추성부도>는 구양수의 문학작품인 「추성부」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추성부도>는 실은 죽음에 직면한 김홍도가 자신의 심정을 그림으로 전한 것이다.”라고 한다.

 

* 가을 밤-소리와 시름, Pixabay
* 가을 밤-소리와 시름, Pixabay

가을은 가을만의 소리를 갖지만, 누구나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다. 한 선비는 소리의 출처가 궁금하여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침내 동자의 말을 듣고 영원한 있음(빛나는 달과 별, 걸려 있는 은하수와 나뭇가지 소리)의 대척점에 있는, 없음의 무상함(사람 소리)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동자는 소리의 출처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잠을 잘 뿐이다. 우리는 저성장의 고착화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 계절의 강하고 낮은 소리를 선비로서 듣고 있는지, 아니면 동자로서 잠을 자고 있을 뿐인지. 가을의 소리가 커지는 만큼 ‘저성장의 기조’에 시름이 깊어져 가는 가을 저녁이다.

 

‘3저’를 / 향한 마법은 / 파란 장미 / '가을'의 길

 가을은 사계 중의 하나로써 그만의 냄새~빛깔~소리를 갖는다. 이를 장만영(1914년~1975년)은 <달, 포도, 잎사귀>를 통해 관조한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 <달, 포도, 잎사귀>(1936년), 장만영 -

이는 토속적이며 친근한 한국적 정서를 나타내는 ‘순이’라는 청자~생성과 출산의 공간인 ‘뜰’과 ‘포도’~‘달빛’을 통한 음양의 전환적 생명력 대비~가을과 밤 그리고 ‘잎새’를 매개로 자연의 순환을 통한 성장의 시간을 나타낸다. 우리의 3저는 포도, 달, 잎사귀로 가득 찬 뜰을 찾는다. 스며든 달빛을 머금고 익은 포도의 다산성, 과일보다 향그러운 달의 공감성, 넝쿨을 닮아가는 잎새들의 나선형 성장. 냄새~색깔~소리로 어우러지는 농무(農舞)와 함께, 푸른 가을이 마법 같은 파란 장미를 하늘에 그리며 익어간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