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할리우드 문법으로 버무린 AI의 성서와 구원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할리우드 문법으로 버무린 AI의 성서와 구원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09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평(영화리뷰) <크리에이터>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입니다.”

 

영화 <크리에이터>의 대사이자 홍보문구이다. 번역에는 크든 작든 언제나 문제가 있는데, 이 문장도 그렇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is is a fight for our very existence.”

 

얼핏 문제없는 번역처럼 보이고 실제로 크게 문제 삼을 만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지만, 따지고 들면 이 문장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와 관련하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오역이다. 영어 대사의 우리(our)인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고, 존망(存亡)으로 번역한 ‘very existence’에 멸망(滅亡)을 뜻하는 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두 번째이다. AI와 인류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AI에 대한 인류 내부의 노선싸움이다. 비유를 들면 우리 역사에 있었던 병자호란보다, 병자호란을 앞둔 척화파와 주화파 사이의 분쟁과 닮았다. 결말부터 얘기하면 영화에서 주화파가 이긴다.

인간 중에서도 AI를 적대하는 진영에 속한 이들을 대표한 발화자의 주장과 달리 우리’(AI 적대진영)가 이 싸움에서 져도 그들은 멸망하지 않는다. 싸움에 지면 멸망하는 쪽은 AI 쪽이기에 존망은 우리’(인류)가 아니라 오히려 저들’(AI)의 일이다.

다만 얘기가 단순하지 않은 게, 서양 정신의 기반인 기독교 상징과 할리우드 문법을 버무려 다가올 미래의 특정한 경로를 영화의 형식으로 미리 모색한다.

 

 

인류의 존망 vs. AI의 해방

 

외관상 <크리에이터>는 이러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와 얼핏 설정이 비슷해 보인다. AI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의 전쟁이 시작되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 영화의 배경이다. 전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만삭의 상태에서 실종된 아내 마야(젬마 찬)의 행방의 단서를 얻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특별작전에 합류한다.

이 작전은, AI 진영에서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무기를 개발했다는 첩보에 따라 이 무기를 만든 크리에이터를 찾아서 창조자와 무기를 모두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무기를 지키면 AI 진영이, 파괴하면 반대 진영이 승리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그 무기가 아이 모습을 한 AI 로봇 알피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조슈아는 알피의 크리에이터와 아내 마야 사이의 연관을 확인하며 마야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알피와 동행한다.

 

관객은 직관적으로 마야가 크리에이터임을 짐작하고, AI 로봇 알피와 마야의 임신 사이의 연관을 염두에 둘 것이다. 영화는 관객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살짝만 변용을 가한다. 알피는 마야와 조슈아 사이에서 잉태한 아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태아를 복제한 AI 로봇이 알피이고, 사람과 동일하게 성장하도록 창조됐다. 마야는 자신의 아이는 낳지 못한 채로 식물인간이 돼 있고, 인간 아이 대신 태어난 알피는 마야를 엄마로 생각한다. 애매하기는 하지만 정황상 조슈아는 알피의 아빠가 된다.

 

마야가 크리에이터인 건 중요 매개항으로 기능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는 않다. ‘크리에이터를 창조자로도 창조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마야에겐 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기독교의 신과 동의어인 창조주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제목 자체가 창조주를 뜻하는 ‘the Creator’이다. 그렇다면 창조주는 언제 나올까. 영화 대미에 환하게 웃는 인물. 그가 ‘the Creator’이다. 마야는 창조주의 창조자 임무를 수행한다. 당연히 영화에 명시적으로 알피가 창조주라는 언급이 나오지는 않는다.

 

내가 보기에 영화 제목 크리에이터는 중의적으로 사용돼 마야를 거쳐 알피에 이른다. 알피는 새로운 세상을 상징한다. 알피 같은 AI가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자유를 누리며 인격을 보장받는 세상. 영화는 과거에 많이 등장한 ‘AI 묵시록대신 AI와 인간이 함께 행복한 유토피아를 그린다. AI 적대자인 조슈아가 서서히 AI 진영으로 넘어가 결국 AI 해방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영화 초반부에 악의 세력이란 착시를 부여한 AI가 종국에 인간의 친구이자 새로운 인간임이 밝혀지는, 반전이라면 반전이 이 영화의 노림수이다.

 

 

옛 사람과 새 사람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AI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AI의 전원을 끄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만약 그 AI가 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무심코 떠오른 단순한 질문이 우리는 AI를 포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파괴해야 하는가?”라는 <크리에이터>의 주제에 닿게 됐다고 설명했다. 극중에서 “(전원을) 끈다”(off)는 표현이 종종 나오고 이 off끄는 게 아니라 대기하는 것이란 핵심적인 대사에 쓰인다.

 

마야 역의 젬마 찬은 인간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이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지 같은 거대한 질문에 끌렸다고 말했다. 인간과 AI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만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각거리이다.

 

조슈아는 처음에 AI에 대해 프로그래밍이지 인간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조슈아와 함께 이동하는 중에 알피가 자신과 조슈아가 천국’(이 말도 중의적으로 쓰인다)에 못 가는 이유로, 조슈아의 고백을 이어받아서 조슈아는 착하지 못해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간은 영어로 ‘person’으로 표현된다. ‘human’이 아니다.

 

동물권 담론에 영향을 준 철학자 토머스 화이트가 제안한 비인간 인격체(非人間 人格體, non-human person)에는 ‘person’‘human’이 모두 들어간다. 법률 용어로 자연인, 즉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영어로 ‘natural person’이라고 하고 회사와 같은 법인(法人)‘juridical person’이라고 한다. AI 로봇 알피가 되고자 하는 존재는 ‘human’이 아니라 ‘person’이다. 다르지만 공존이 가능한,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서 ‘person’이 제시된다.

공감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 것이라는 조슈아 역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언급과 ‘person’이란 단어는 정서상 맞닿아 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고 할 때 ‘human’이 아니라 ‘person’에 근거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알피와 조슈아는 극중에서 천국에 간다. 조슈아는 착한 사람이 돼서, 알피는 사람이 돼서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알피가 사람이 됐다고 할 때 사람은 ‘person’이다. 조슈아는 착한 사람이 됐다고 할 때는 공감이 힘이다.

 

조슈아는 마지막에 알피의 도움으로 마야를 만난다. 그 마야는 AI이지만 동시에 ‘person’이다. ‘human’(조슈아)‘person’(마야)이 뜨겁게 천상에서상봉하고 아마 천국으로 갈 것이다. 그들의 자녀인 알피는 ‘human’이 아니라 ‘person’의 세상을 여는 크리에이터가 된다.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이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호감을 느끼게 되지만 유사성이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호감도가 하락한다는, 즉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이다.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가 소개한 개념이다. 불쾌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살아 있지 않아 보이는 존재가 사실은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는 데에서 비롯한 감정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좀비를 떠올리면 되겠다. 요즘은 AI와 관련하여 더 적용 범위가 넓어졌지 싶다.

‘person’ 논리의 연장에서 알피를 포함해 극중 AI는 모두 머리 아래쪽에 구멍이 뚫려 있다. ‘불쾌한 골짜기에서 의심을 자아내어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기제를 차단했다. 유사성과 차이를 분명히 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등장한 인간(human)AI 양쪽의 혼란이 미연에 방지된다. 다르지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문명의 세상이다. 영화는 ‘person’이란 용어에 맞춰 AI 형상을 설계했다.

 

턱이 시작하는 지점에 구멍이 휑하고 뚫린 AI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AI 승려까지 등장하는 등 영혼까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확실히 불쾌한 골짜기에서는 벗어난 듯하다.

 

기독교적 상징

 

<크리에이터>는 제목부터 곳곳에 기독교적 상징을 깔아놓았고, 스토리 자체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핵심주제로 구성됐다. 인간(human)이란 압제자로부터 AI의 해방을 도모하고, 그 해방자가 도래하는 모습이 각각 구약의 출애굽과 신약의 탄생설화를 활용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AI 영화에서 이렇게 변용해 극화한 발상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종교영화인 셈인가. 불경하다고 반응할 사람이 있겠다 싶지만,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정색하고 기독교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상당히 관점이 진취적이다.

 

영화 완성도와 관련하여 제작진은 태국, 베트남, 네팔, 일본, 인도네시아, 영국, 미국 등 세계 80여 곳에서 무려 16000Km 이상을 이동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최대한 현지의 배우와 스태프를 활용했다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제시하여 생각거리를 던졌다는 측면에서 수작이라 할 만하다. 미래의 AI 발전 경로가 이 영화와 달리 악의 길에 닿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했다는 비판은 가능해 보인다. 가능한 비판이긴 하나, 아주 정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글 안치용,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