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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용서는 없다.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용서는 없다.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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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옥만세>를 보고 느낀 것

<지옥만세>의 개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내용’보다 ‘주제’쪽을 따져보는 게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 영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주제로써 공통된 몇 가지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 ‘저항’, ‘일탈’, ’연애’ 그리고 ‘동성애’.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소년 시기는 어떤 패턴으로 읽히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보다는 공통점을 엿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것들이 많은 청소년들의 이상적 자아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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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라면 사실 청소년과 성인과의 차이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주제 들을 잠식하면서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학폭’이다. 학폭은 이상적 자아를 불러내기보다 이상적 자아가 자리 잡기도 전에 그 자리를 없애거나 아니면 자책감 혹은 자기파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다. 

학폭이 위에서 언급한 주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잔인한 가해학생의 악행이 초래하는 무서운 파괴력은 피해학생 스스로를 자기파괴라는 결과에 빠트리는 것에서 온다. 자기파괴는 학폭의 또 다른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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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에서 송나미(오우리)와 방효린(황선우)이, 그 중에서도 특히 나미가 목을 매려 하는 장면은 이에 대한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기파괴 직전에 갑자기 복수라는 주제가 그 둘을 엄습한다. 학폭 피해자가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그 순간, 복수의 결단이 돌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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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흐름은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인 그 둘은 가해자와의 관계 설정에서 다른 인물이 배치되는 것을 거부한다. 모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현실에서 매우 드물다. (학폭이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일은 제3의 인물을 개입시키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매우 드문 그 순간을 거쳐 그들은 가해자 박채린을 찾아 떠난다. 나는 복수라는 주제가 들어서서 그들이 박채린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 영화는 전형적인 '드라마'장르에서 변칙적인 ‘모험’ 장르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실제로 이 영화는 어드벤쳐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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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들이 가해자 박채린을 만나게 되는 장면은 짠하다. 갖은 고생 끝에 보물을 찾아낸 주인공을 보는 순간 같다고 해야할까. 차이가 있다면 전형적인 모험영화에는 정교한 수수께끼 등을 통해서 목표하는 대상을 끝끝내 찾아냈다는 성취감이 있지만, <지옥만세>에는 무모하게 시작된 여행을 통해서 어떤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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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험 장르로서의 성격은 여기까지다. 이들은 가해자 박채린이 종교시설에서 자신들을 반기는 행동을 의심한다. 관객 역시 그녀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설정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박채린이 정말 새사람이 되었다는 여러 정황을 거의 영화 끝까지 밀고 나아가면서 영화 보는 내내 근거없이, 오로지 가해자란 사실만으로, 박채린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 이때 모험장르는 심리스릴러물이 된다. 

그러면 임오정 감독은 왜 심리스릴러처럼 학폭 가해자의 실체를 숨기려 한 것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가해자 박채린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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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으로 보면 타락한 용서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타인에게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받으려는 용서(법원에 제출하는 범죄 피의자의 반성문 등), 둘째 타인의 허락 없이 나의 안위를 위해 자신에게 이미 내려버린 용서(영화 <밀양>에서 납치범이 자행했던 그 용서), 셋째 당사자와 상관없이 제3의 존재가 대행하는 용서가 그것이다.(세번째 용서는 '부산돌려차기' 피해자가 국감장에서 호소한 부분과 일치한다.) 임오정 감독은 이런 용서를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조금 더 구체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루려면 다른 이유가 뒤따라야 한다.  

정화 가능성이 없는 폐해들은 우리 사회를 좀먹는다. 자기 스스로 정화기능을 상실한 대상은 환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환멸은 애초부터 자기를 바꾸려 하지 않는 대상에게서 발생하거나 혹은 그런 대상을 경험할 때 나타난다. 사이비 종교단체. 그 폐단에 대해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아무 의미없다. 다만 학폭 가해자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빗대어 사이비 종교단체 역시 변할리 없음을 말하려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환멸의 의미다. 만약 그렇다면 정화 가능성이 없는 환멸의 대상에게 용서는 없다. 그것을 이 영화는 강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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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청소년기에 거듭되는 학폭과 사이비 종교단체와의 관계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대상이 지닌 환멸의 부분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과 그러면 용서 또한 없다는 것. 그렇다면 영화 <지옥만세>는 어설픈 용서로는 어떤 성장도 도모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해자 스스로가 자기를 용서 해버린 그 상황 (이른바, 종교적 회개로써 천국에 임할 것이라는 박채린의 믿음) 속에서 피해자들마저 그녀를 용서한다면, 모르긴 해도, '복수'를 마음 먹었던 순간은 모험의 결말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파괴를 시도했던 바로 그 때로 되돌아가는 형국(상징적으로 나미가 목을 매기 진적의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그래.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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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정 감독은 적어도 퇴보를 강조하진 않았다. 나미와 선우가 다시는 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는 뜬금없이 채린에게 "잘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잘 살아.”라는 선우가 채린에게 던진 이 말은 어쩌면 아름다운 결말을 동반한 용서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앞에서 말한, 용서란 없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 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정녕 그 말은 관습적인 용서를 통해 억지로 결말을 봉합하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로 '어정쩡한 뒷걸음질'을 친 것일 뿐일까? 그게 아니라면 "잘 살아"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한 한가지 실마리는 영화의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왜 제목이 '지옥만세'겠는가? 사실 잘 살라는 말에는, 암묵적으로, 특정한 장소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성격 즉 '장소성'이 들어있다. 그런데 마침 채린은 지옥에 떨어진터다. 계획했던 천국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잘살아" 라는 말은 지옥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나타나는 지옥의 특별한 성격 속에서도 잘 살길 바라는 최적의 저주였다고 말이다. 그러면 지옥만세는 그 때 마음껏 외칠 수 있는 구호가 된다. 그런 식으로 이 영화는 '용서는 없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나는 앞에서 학폭의 또 다른 주제가 자기파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기파괴의 순간이 복수의 순간으로 돌변한 영화였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파괴 직전에 엄습했던 복수의 자리에는 환멸만 남고 용서의 자리는 사라졌다고. 이 영화가 다루고자는 학폭관련 숨겨진 메시지는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부언: 나는 이 영화에서 자기 스스로 정화기능을 상실한 대상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를 읽었을 때 한국정치의 환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성찰하지 않는 성정 앞에서 용서는 퇴보일 뿐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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