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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하마스 전쟁과 한국의 위태로운 안보 현실
우크라이나, 하마스 전쟁과 한국의 위태로운 안보 현실
  • 한설 | 예비역 육군 준장
  • 승인 2023.10.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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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정치 군사적 변동은 기존의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가 수립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기존 국제질서의 붕괴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의 약화 및 붕괴를 의미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예측하는 근거는 중국, 러시아 등 대항세력의 성장이 아니라 미국의 급격한 약화다. 미국은 1990년 냉전 종식 후 국제정치 질서의 정점에 올랐으나, 30년 만에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반제국주의적 군사쿠데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미국 주도식 국제질서의 한계를 증명하는 사건들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같은 국가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윤석열 정권은 세계적인 국제질서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정권은 역대 정권에 비해 지나치게 편중된 미국 중심의 대외정책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정권의 잘못된 대외정책을 견제하는 언론과 지식인의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식인과 언론에 선구자적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시대와 역사가 바뀌고 있음에도, 여전히 기존의 낡은 인식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윤석열 정권의 상황을 보면, 정부 차원의 대외정책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대한민국의 인민들이 보다 폭넓은 안목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력을 갖춘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 글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확인하고, 언론과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언론과 지식인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확한 상황판단이 올바른 정책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편중된 대외정책이 국익을 얼마나 손상시키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언론과 지식인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인민의 올바른 정세판단 능력이다.

패권 국가가 힘을 잃고 붕괴되는 주된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 때문이라고 한다. 내부의 모순이 누적돼 대외적인 무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패권 약화의 원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정치적 분열은 내부 모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겠다. 미국의 내부 모순이 대외정책의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세련되지 못했던 미국의 대외정책은, 냉전 종식 이후 더욱 기이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미국의 전략적 자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계속 잘못된 선택을 했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을 필두로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 이란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친구보다는 적을, 이익보다는 손해를 부르는 선택들을 해왔다.

이런 미국의 ‘선택’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실패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미국은 성공할 경우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미국이 터널현상에 빠졌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터널 현상에 빠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나친 확신, 또 하나는 극도의 두려움이다. 미국의 경우는 어느 쪽일까? 처음에는 전자에 가까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후자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어 및 수정 기능의 상실이다.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을 제어하고 수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미국의 언론이고 지식인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의 자신감 때문인지 미국은 자신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기능을 모두 축소하거나 제거해버렸다.

 

하버마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판적·반성적 성찰

정부는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언론환경이나 여론조성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에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그 결과 최근 미국의 언론이나 주류 지식인 중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소위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힘을 합친다는 식으로 비판과 반대의 여지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최근 미국의 언론과 주류 지식인들에게서 반성적 성찰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이유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은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소위 어용의 범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난다.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담론을 주도할 때가 유럽의 전성기였다. 비판적 인식을 통한 반성적 성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하버마스같이 시대를 풍미한 대철학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가 소장학자들에게 봉변 수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반성적 성찰과 비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방송과 언론은 정권에 장악됐다. 언론이 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교과서 속 이야기가 돼버렸다. 정권이 언론과 지식인 사회를 장악하면 비판의 기능을 상실한다. 레거시 언론에서 윤석열 정권의 지나치게 편중된 미국 일변도의 대외정책, 굴종적인 대일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찾기 어렵다. 대표적인 진보언론까지 미국에 편중된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도했다. 언론과 지식인의 비판적 기능 상실은, 육사의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이나 철 지난 이념논쟁이 제기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다.

미국과 서방에서 비판적 지식인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권위주의 국가라고 하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비판적 기능이 더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국제정치적 사건에 대해 거의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미국 및 서방과 달리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더 많이 개진되는 듯하다. 권위주의 국가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지적하기 전에, 미국과 서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나 중동사태에 대해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른 언론의 주장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카다피를 버린 미국과 데미스토클레스의 망명을 수용한 페르시아

미국과 서방은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일지 모르나 내용적으로는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보다 사실상 더 강력한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 대한 반론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통제하는 것과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사회적 통제와 검열을 통해 억압하는 것 사 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정부의 직접적인 검열보다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한 검열과 통제가 훨씬 더 광범위하고 위협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의 통제는 그 기준만 넘어가지 않으면 되지만, 사회적 통제는 그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심각한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상당수의 대한민국 인민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맹신한다. 그러나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이 상당히 폭압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실패를자초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리비아의 카다피 사건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리비아 내전으로 카다피를 실각시켰고 길거리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카다피가 살해되자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는 “목표를 달성했다”라며 이로써 북한의 비핵화는 요원해졌다.

카다피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압도적인 국제정치적 영향력에 굴복해 보유하던 핵무기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선택했다. 북한은 카다피의 최후를 보면서, 자신들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에 굴복하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특수부대를 보내서라도 카다피를 구출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은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 영웅이자 자신들의 숙적이었던 데미스토클레스의 망명을 수용했던 2500년 전의 페르시아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과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비록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치뤄졌지만 탐욕스런 석유 약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이야 미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기 때문에 석유 약탈이라는 사실이 감춰져 있지만, 그 균형이 조금만 무너지면 그 실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석유를 약탈하지 않아도 충분히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오히려 약탈적 대외정책으로 스스로 곤경에 처하게 됐고 패권국가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훼손시킨 것이다. 패권이 영향력을 의미한다면 도덕적 우위는 영향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일 것인데 미국은 조그만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것 을 스스로 훼손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미국의 이런 잘못된 대외정책에 대해 침묵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적어도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판단중지 상황에 빠져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패권을 상실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향후 역사 진행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앞으로의 역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이후의 상황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과 지식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비난했다. 정계에서는 여야의 구분도 없었고 언론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없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자해적 대외정책이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경우도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철 지난 이념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봤고 이런 현상은 ‘집단 최면’이라고 하는 것 외에 설명할 길을 찾기 어렵다.

 

사진/PLZ페스티발 팀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은 이길 수 없다

다른 국가의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전쟁에서 이기는 편을 지지하는 것이다. 전쟁이란 결투를 통해서 정의가 어느 편에 있는가를 결정하는 일종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승리하기 어려운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다. 대한민국 인민들의 상당수는 미국이 절대로 패배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군사전략이나 작전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절대로 미국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를 굴복시키기 위한 미국의 전략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 냉전에서 승리한 방법대로 러시아에 군사비를 많이 지출하게 해서 국력을 소모시키고 경제제재를 해서 굴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경제제재를 감행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방안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은 전쟁의 승리를 운에 맡긴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정의가 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은 러시아에 맞서 탄약과 장비를 지원했다. 이는 명백하게 자해적인 행위다.

잘못된 정책은 반드시 후과를 남기는 법이다. 미국이 밝힌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와 북한은 수십만 톤 규모의 군사 장비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하마스 사태로 인해 중동정세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장비를 주고받은 것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하겠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양개전선을 감당하기는 어려우니 대한민국에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장비를 지원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장비를 지원함으로써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장비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핑곗거리를 제공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S-300이나 S-400 같은 대공 무기를 제공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남한이 그나마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항공전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인 스텔스 전투기 F-35가 러시아군의 레이다에 포착된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안보는 그 이전보다 훨씬 악화되고 불안해질 것이다.

하마스 사태가 발생하자 윤석열은 즉각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하마스를 규탄했다. 문제는 정작 미국이 하마스 사태 이후 마치 공황장애에 빠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미국은 상황을 주도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상황에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틈을 타고 중국과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하마스 사태를 이스라엘에 대한 단순한 테러 사건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생한 중동지역의 국제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연관돼 있다.

하마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생존이 위태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테러라는 강경한 수단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원했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란은 미국과 결전도 감수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기회에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하마스와 이란, 전략적 1차 목표 달성

하마스 사태 이후 중동과 이슬람은 대동단결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중단했고 아랍과 중동 그리고 전 이슬람 세계가 반이스라엘 전선을 형성했다. 미국이 최초에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원을 선언했다가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도 이슬람 세계의 격앙된 분위기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없는 일이 됐고, 이로 인해 하마스와 이란은 전략적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이스라엘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가자지역을 공격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만일 공격하면 전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여야 한다. 만일 이번에 중동전쟁이 발발하면 이스라엘도 과거처럼 쉽게 승리하기 어렵다.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처음에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했다가 상황 관리로 입장을 바꾸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철군을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릴 윤석열의 외교정책

윤석열의 즉각적인 하마스 비난과 달리 일본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중동지역의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과 일본의 정치인들 수준 차이는 극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카타르는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전쟁이 발발하면 원유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전면적인 수출통제가 어려우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에 대한 보복성 원유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에너지 공급이 완전하게 차단될 수도 있다. 윤석열의 경솔한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 경제와 인민의 삶을 결정적으로 위협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자해적 대외정책은 이미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다. 문제는 윤석열의 자해적 대외정책을 견제해야 하는 언론과 지식인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그랬듯이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평민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대외정책에도 의병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글·한설
고려대 서양현대사 박사. 육군사관학교 40기로서 연합사 지구사 작전처장, 수도방위사령 부 참모장, 육 군 군사 연구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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