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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의 인문학 서재] 우리 모두는 이방인입니다!
[한성안의 인문학 서재] 우리 모두는 이방인입니다!
  • 한성안 | 경제학자
  • 승인 2023.11.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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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인류애와 연대의식의 뿌리를 독일의 철학에서 찾아 보자

공부하느라 7,8년을 외국에서 보냈다. 공부할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꽤 긴 시간이었다. 그것도 제일 재미나게 보내야 할 세월을 부모 형제도 친구도 없이 먼 나라의 도서관 벽만 쳐다보고 지냈으니, 알고는 두 번 못할 짓이다. 그땐 풍족하지 못해 중간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어려웠다. 5년 지나 중간에 딱 한 번 집에 왔었다. 독일 대학은 모조리 국립인 데다 학비가 무료라 당시 유학생 중 가난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나라였다. 운이 좋으면 저렴하고도 깨끗한 기숙사에서도 살 수 있어 우리한텐 안성맞춤이었다. 유학간다고 모두 부자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한텐 도움과 친구가 필요하다. 다만 독일이라는 나라가 모든 이들에게 튼튼한 사회보장제도와 공공시설로 도와주니 '개인'의 특별한 도움은 필요 없다. 교육비, 공공의료, 공공보육, 공공교통, 공공도서관, 공원, 더욱이 건강한 자연환경 등 지금 생각해 봐도 그렇게 잘 돼 있을 수가 없다. 그곳엔 내국인, 외국인 차별이 없다. 만민이 함께 누려야 할 복지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인류애가 넘친다. 언젠가 아들이 크게 아파 보름 동안 입원한 적이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병동에서 친절한 최고의 의료진으로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깨끗이 나아 퇴원했는데, 병원비를 한 푼도 안 냈다. 아무리 공공병원이라지만, 이럴 수가! 가난한 대학생이라고 모든 게 면제된 모양이다. 사회적 연대의식이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린 독일인이 품었던 인류애와 연대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1989년 당시 독일 1인당 GDP가 2만 달러 정도였지만,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은 대략 28% 정도 되었다. 하지만 2022년 우리의 현재 1인당 GDP는 3만 2천 달러인데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겨우 10% 정도를 오갈 뿐이다. 이러니 나라는 부자인데 다수의 국민은 불행해진다. 아마 내가 독일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에 살았더라면, 경제학박사가 못 되었으리라!

윤석열과 우리나라 보수진영이 그토록 존경하는 일본과 달리 나치학살에 끝없이 참회하는 모습도 본 받을만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독일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자기 국민이 아닌데도 차별하지 않고, 복지혜택을 줘 가난한 외국인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니 좋은 나라 아닌가? 김구 선생이 염원했던 ‘문화강국’은 이래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고, 우리의 부력은 배불리 먹을 만하면 족하다. 다만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김 구, <백범일지>) BTS가 있고, 해외콩쿨에서 상 받는다고 문화강국이 되는 게 아니다. 독일처럼 사회적 연대와 인류애가 문화로 정착된 나라야말로 진정한 문화강국이다.

​내가 독일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독일은 가난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 외로운 이방인의 친구도 되어 주었다. 우리는 좋은 독일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 도착했을 때, 들어간 월세집 주인은 우리를 끔찍이 도와주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한 후 아내가 임신했을 때 슈미텐크노프 부인은 다시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갖가지 도움을 주셨다. 심지어 산후조리까지 해 주셨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모든 가족이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

대학에서 독일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다. 말이 어눌한 외국인 친구를 피하는 건 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영어를 연습할 미국인이나 영국인도 아니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 불리한 조건을 개의치 않는 독일 대학생들이 있었다. 키가 장대 만하고 잘생긴 미샤엘은 유난히 우리와 얘기하고 싶어 했다. 알고 보니 단호한 무신론자이면서 좌파 대학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브레멘대학교는 본래 진보적 대학이라 좌파가 많다. 68운동의 영향으로 진보적 가치를 담아 설립된 대학으로 독일에서 저명한 진보학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경제학과 철학은 특히 그랬다. 내가 브레멘대학교를 유학 장소로 택한 이유다. 브레멘시의 정치적 환경도 비슷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40년 동안 진보정당인 브레멘 사회민주당(SPD)이 권력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었다. 좌파들은 모두 외국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외국인에 친화적인 독일사회복지제도는 이 좌파들의 작품이다.

 

독일 브레멘(Bremen) 대학교
독일 브레멘(Bremen) 대학교

미샤엘은 나와 만나기만 하면, 정치토론을 시작한다. 그는 좌파 중에서도 좀 더 왼쪽에 선 '마오주의자'(모택동주의자)였다. 나는 당시 소련에서 제공하는 '정통파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니, 매번 충돌하게 된다. 나는 짜증을 내면서 그를 '관념주의자'로 매도하며, 토론을 싸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미샤엘은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나를 '교조주의자'로 조롱하지 않았다. 항상 차분하고 순진한 웃음으로 위기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 항상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함께 걸어가면 키가 너무 차이가 나, 항상 머리를 숙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 지적이고 스마트한 친구였다.

어쩌다 마트에서 또 다시 키가 장대만큼 큰 남자를 만났다.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독일 사람들은 아무나 만나면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당장 미친놈이라며 눈을 흘기며 지나쳤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그게 일상이었다. 볼품없는 동양인에게까진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엘리베이터에서나 거리에서나 항상 웃어준다. 덕분에 우리도 인사성이 매우 밝아졌다. 한성안, 그 나라에서 인간 됐다!

그런데 키가 장대 만한 남자 옆에 또 다른 장대 만한 여자가 함께 서 있는 게 아닌가? 여자가 무척 반가워하는 표정이다.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의 이 부부는 한국 여자아이를 딸로 입양해 키우고 있었다. 자기들은 아이를 충분히 낳을 수 있지만, 버려진 아이를 내 아이로 삼아 키우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입양을 결정했단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선 '촌뜨기'로 놀림 받을지도 모르는 여아(죄송!!)인데도 사랑스러워 죽겠단다. 딸의 이름은 릴리였다. 예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오, 예수님은 이곳에 계시구나. 한국 여자애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 머슴애도 너무 좋아한다. 우리 아들은 그 집에서 제일 반가운 손님이다. 자주 서로 오가며, 집안 파티에 꼭 우리를 초대했다. 귀국하고 나서 릴리가 우리 집에 며칠 묵었다. 마음이 무척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크리스토퍼 부부는 둘 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의 교사다. 특히 남편은 윤리 교사인데, 그 또한 진보적 교사였고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자다. 그런데 그의 부친은 놀랍게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독일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신학자였던 것이다. 그가 쓴 저술이 10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어 있었다. 거기서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창조론을 적극 옹호하고 있었다.

학위를 끝내고 귀국하는 날, 크리스토퍼가 작은 찻잔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중 하나란다. 족히 2백 년은 훨씬 넘었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가족사를 무척 중시하던데, 이거 받아도 되나? 꼭 가져가라고 하기에 애써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았다.

커피값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할 겸 7년 전 커피머신을 샀었다. 그동안 내부 청소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청소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엊그제 유튜브에서 그걸 우연히 알게 되어 커피를 다시 맛있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수리한 김에 기념으로 크리스토퍼의 가보를 꺼냈다. 독일사람들의 인류애와 우애가 잔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독일과 독일친구 덕분에 이국땅에서 가난하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나는 거기서 거의 '내국인'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사회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크리스토퍼부부가 선물한 가보
크리스토퍼부부가 선물한 가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차 독일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 선거철이었던 것 같다. 담벼락에 선거 벽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Wir sind alle Ausländer!" 영어로 "We are all foreigner"이니 우리말로는 "우리 모두는 이방인(외국인)입니다!"로 번역될 것이다. 당시 네오나치들의 외국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좌파인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벽보였는데,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독일에서 살아봤으니 더 이상 소원은 없다만, 저토록 악독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을 이웃으로 둔 우리는 불행하다.

그동안 적잖게 세월이 흘렀다. 비교되는 것들이 많다. 국민소득은 높아만 가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 화가 나 있을까? 학교에서 즐거워야 할 어린이들은 왜 이토록 불행하며, 중고생들은 저 살인적 입시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당시 독일보다 우리는 지금 훨씬 잘살고 있는데, 사회복지는 왜 이토록 형편없고, 조세저항은 이리 심한가? 30여 년 전 지금의 우리보다 못살 때도 그들은 왜 그토록 서로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은 자신들에게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생면부지의 아시아인에게 왜 그토록 관대했으며 인류애를 유감없이 발휘했을까? 나를 아는 모든 독일인은 내가 자신들의 복지시스템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박탈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치학살의 역사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끝없이 반성하는 그들의 역사의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일본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독일 사회철학 강의: 사유와 비판』(정재각, 2015, 인간사랑)
『독일 사회철학 강의: 사유와 비판』(정재각, 2015, 인간사랑)

그들의 세계관과 철학을 알고 싶었다. 궁금증을 풀고자 책 한 권을 골랐다. 『독일 사회철학 강의: 사유와 비판』(정재각, 2015, 인간사랑)은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 주었다.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베버, 하이데거, 하버마스, 모두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름들이다. 모두 독일을 빛내는 세계적 지성들이다. 철학을 공부 안 한 사람들한테도 익숙한 이름이다. 여기에 쿠자누스, 피히테, 포이에르바하, 비트겐슈타인, 후설, 야스퍼스, 슈미트, 아렌트, 벤야민, 아드르노, 마르쿠제, 루만 역시 약간 생소해 보여도, 세계를 이끈 독일의 철학자들이다. 이 책은 이 21명 독일 철학자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책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면 할수록 진리에 다가간다”(p.28)는 15세기 독일 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박학(博學)한 무지(docta ignorantia)'! 책을 닫으면서, 끝없는 배움과 성찰, 바로 이것이 바로 인류애와 연대로 꽃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 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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