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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허무한 마음> (정창화,1969) : 1960년대 후반기 한국 가족 멜로 드라마의 원형과 변형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허무한 마음> (정창화,1969) : 1960년대 후반기 한국 가족 멜로 드라마의 원형과 변형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1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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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마음(1969) 포스터
<허무한 마음>(1969) 포스터

<허무한 마음>은 가수 정원이 부른 동명의 주제가가 발표됐던 1966년부터  정창화 감독이 홍콩 쇼 브라더스로 떠난 1967년 12월 사이에 완성된 영화였지만 1969년에서야 뒤늦게 개봉됐다.  그래서인지 <노다지> (1961) 보다 규모는 작지만 <노다지>에 비견될 만한 액션과 멜로드라마 혼합 장르, 탄탄한 내러티브,  당대 최고의 흥행 배우 신성일과 문희가 주연한 영화치고는 흥행성적이 매우 초라했다.  세기극장에서 1969년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꼭 일주일 개봉했고, 관객 8천6백으로 집계됐다. 정원의 <허무한 마음은> 1966년도에 최희준의 <하숙생>과 나란히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지만, 개봉이 늦어지면서 맥이 빠지고 말았다. 감독은 이미 홍콩에 가 있고, 주제가는 인기가 다소 시들해진 맥 빠진 작품을 재개봉관에서 개봉한 셈이다. 잊히고 허무해지기에는 안타까운 비운의 작품이다.

 

가족 멜로 드라마와 액션의 혼합 장르
가족 멜로 드라마와 액션의 혼합 장르

부모를 찾은 고아 청년, ‘출생의 비밀’

 

부모를 찾는 고아 서사는 <올리버 트위스트>부터 <캔디>까지, 영화에서 드라마까지 수없이 등장한다. 때로는 부모가 밝혀지기도 하고, 미스터리로 남기도 하며, 고아의 출신성분에 대한 흥미로운 의문 거리로 서사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대개 이런 고아들은 이를 악물고 입신양명하거나, 평생 복수심에 불타오른 채 악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의 타이틀 장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징하게 고아 ‘기우’에 대해 압축해서 보여준다. 검은 가죽 점퍼를 입은 <맨발의 청춘> 식 신성일이  쑥대밭처럼 엉망진창이 된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가게 주인을 도와주며,  2주 안에 그 돈을 갚아주겠다고 호기를 부린다.  자기  ‘이름’ 앞으로 달아놓으라고 한다.  ‘기우’라고 쓰고 당당하게 지장을 꾹 누른다. 성 없이 쓴 이름을 통해 그가 고아이며, 이에 따라 위축되지 않고 의롭게 살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게 주인이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고 도망간 고아 넝마주이들에 대해 “그 자들이 집이 있습니까. 호적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기우는 “왜 없습니까. 집이.”라며 정색을 한다. 이들 근접 쇼트가 말하고 싶은 ‘이름’과 ‘집’은  이 영화의 키워드에 대한 방점이다. 그에게 부모가 없지 ‘이름’이 말하고 있는 나의 정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이복남매였던 신성일과 문희
사실은 이복남매였던 신성일과 문희

나쁜 짓 하지 않고 사는 것을 신조로 삼을 만큼 의협심 강한 기우는 넝마주이들과 함께 사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가게에서 한 짓을 응징하며 자신들의 ‘헌법’을 외워보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이 ‘법’이고 ‘아버지’가 된듯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부재는 왜곡되어, ‘여자를 멀리하라’는 첫 번째 헌법 강령이 되었다. 보육원 원장 할머니가 임종 직전 알려준 백합 산장의 어머니는 정작 스스로 기우의 생모가 아니라고 해서 기우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 유명한 멜로드라마의 클리세,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그 기구한 사연인즉, 주인댁 도련님 만국(최남현)이 가정부였던 기우의 생모(정애란)를 임신시키고 백합 산장으로 쫓아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그녀를 겁탈하려고 한 산장지기를 살해하게 되고, 살인자로 20년을 복역하던 중 감옥에서 낳은 기우를 보육원으로 보낸다. 어머니는 이 모든 불행한 과거를 숨기기 위해 아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영화의 주요한 플롯은 왜 어머니는 아들을 외면하는가를 위해 배치되었다. 서브플롯은 의협심 강한 캐릭터로 출발했던 기우가 복수라는 이름으로 만국의 딸 란(문희)과 사랑하고 말겠다고 강권을 부리는 것에 대한 좌충우돌 플롯이다. 실은 이복남매인 이들의 사랑은 불가능하며, 이 비밀은 더 이상 지켜질 수 없기에, 어머니는 스스로 어머니임을 밝히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가족 멜로 드라마의 변형과 원형

 

1960년대 초, 가족 멜로드라마는 <박서방>(1960)이나 <마부>(1961)에서 볼 수 있는 선량하고 무력한 가장 혹은 ‘조국 근대화’에서 밀려난 서민으로서의 아버지였다. 그 시대에 관객은 이런 아버지에게 몰입하고 울고 웃었다. 60년대 중반에는 <맨발의 청춘>(1964)으로 대변되는 청춘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아버지 서사는 아들의 서사로 바뀌었고, 정창화는 재력가 아버지의 혼외자에 청춘물의 대표 배우, 신성일을 배치한 것이다. 비현실적이리만큼 재력가인 아버지의 공간에는 혼외자를 받아들일 여지는 전혀 없었고, 기우는 동서고금의 홍길동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1960년대는 빈부 차가 극심했던 시기였고, 재력가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하고 모던한 이층집과 철 대문 그리고 제복을 입은 경비까지 그 위력은 관객에게 동경과 위화감이라는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요즈음의 가족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빈번히 등장하는 재벌 아버지의 초창기 모습일 것이다. 반면 재력가 아버지에게 있어 혼외자는 꽤 현실적이다. 기득권 재력가 아버지에게  혼외자가 불쑥 나타났을 때 빈부, 계급 문제, 어쩔 수 없는 가족 멜로드라마 적 재현이 또렷하게 부각된다.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을 비롯하여, <허무한 마음> 같이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등장한 가족 멜로드라마에는 1960년대 초반에 재현된 무력한 아버지가 중심이 된 가족이 아니라 경제적 부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투영된 재력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혼외자 문제를 통해, 관객의 양가적 욕망을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실은 지금까지도  한국 가족 멜로 드라마는 한국 영화 초창기에 한국 사회를 꿰뚫어 본 이들 영화에 빚지고 있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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