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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삶을 지켜준 이와 공간에 대한 찬란한 헌사 - <홈그라운드>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삶을 지켜준 이와 공간에 대한 찬란한 헌사 - <홈그라운드>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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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리적인 공간이 내 것, 혹은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곳에서의 시간, 경험, 그리고 그것을 통해 쌓아올린 익숙함일 것이다. 이것으로 공간은 너와 나의 면면이 새겨진 장소가 되며 나의 한 부분으로서의 성정을 가진다. 그래서 어떤 곳을 드나드는 나는 그곳의 정체성으로 규정되며 그 역도 성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너와 나, 그리고 그 시간과 경험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누군가의 보살핌이다. 그곳을 발견하고, 또 그곳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터를 세우고, 그곳을 내가 가도 되는 곳이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나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안정감. 그것은 누군가가 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공간이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나와 우리를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는 믿음은 누군가를 살게 한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것은 정말 목숨이 달린 일이다.

이태원의 ‘레스보스’, 그리고 명우형. 명우형으로 가능했던 공간, ‘레스보스’이기에 명우형이 지켜야 했던 공간은 실제로 많은 이들의 삶을 자신의 것이라,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을 수 있도록 바꿔 주었다. 명우형과 ‘레스보스’를 중심으로 다큐 <홈그라운드>가 어딘가에 존재해왔지만 무수한 오해 속에 조명 받지 못했던 레즈비언의 공간에 의미를 다시 쓰려던 것은 바로 이 공에 대한 답변이 아닐까. 도대체 어디에서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또 나와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아니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기라도 할지를 고민하던 이들이 드나들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곳, ‘레스보스’는 많은 이들에게 내가 분명히 여기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표지였기 때문이다.

 

<홈그라운드>는 퀴어의 공간 중에서도 변방이었던 레즈비언의 공간에 주목하면서 그것의 역사성을 부여한다. 1970년대의 샤넬다방,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를 꽉 채워 운영됐던 공덕과 신촌의 레스보스, 그리고 2000년대 10대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구성했던 신촌공원과 201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댄스 공간 루땐, 이제 이태원에 다시 꾸린 레스보스에 이르기까지 이 역사적인 공간은 훑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유대를 바라는 이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활기를 뿌려놓은 것은 이 작품이 과거와 현재의 이르는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홈그라운드>는 위의 공간들을 연민하거나 혹은 퇴폐라는 레테르에 갇혔던 과거에 침잠하기보다 바로 그 공간이 장소가 되어가는 과정을 신선하게 그려낸다. 이 공간들을 검색했을 때 따라붙는 바로 그 단어들로는 이곳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홈그라운드>는 당시 그들의 활기를 재현함으로써 표현해 낸다.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연출된 장면들은 조금은 과장된 듯 알록달록하게 그리고 싱그럽게 구성된다. 고개 숙이고 도망치던 퇴폐 다방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맘을 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샤넬다방과 신촌공원, 그리고 레스보스의 오픈식은 그렇게 <홈그라운드>에 자리 잡았다.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멋대로 낙인찍어버린 그때의 오명은 레트로한 재연 속에 지워지며, 이젠 나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었고 아웃팅의 위험조차 무릅쓸 만큼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행복한,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의 커뮤니티를 구성하며 분명하게 무엇인가를 해냈던 곳으로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 과거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 손을 뻗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것으로 아무렇게나 짐작케 했던 사진들에서 이 공간들의 의미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하게 다시 정의됐어야 했던 이 공간들은 <홈그라운드>에서 새로 서게 되었다.

 

단언컨대 이 과정은 고달픈 것이었다. 명우형의 뒷모습에서, 그리고 멍하니 담배를 피워 물던 그 모습에서 이는 쉽게 읽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있던 공간조차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된 현실은 더욱 짐을 얹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의 가치를 아는 이들은 어떻게든 우리의 장소로서 이를 지키고 이어가려 한다. 명우형의 시간은 바로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단지 그가 ‘레스보스’를 지켜서가 아니라 지킬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자신의 시간을 이곳과 함께 보내는 것의 가치를 자부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너와 나를 살리는 길이자 특별할 것 없는 퀴어의 나이듦에 대한 인정의 방식이기도 하다. 너무도 당연히 흐르는 시간이 퀴어들에게 더욱 가혹할 것이라 쉽게 재단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함께 할 장소를 구성해 온 이에게 이는 더욱 주제 넘는 일일지 모른다. <홈그라운드>가 노년의 퀴어를 보여주는 것, 또 노인이 되어서까지 함께 춤출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을 꿈꾸는 이들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연대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명우형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이들과 또 과거 이런 일이 있었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꾸려간다. 자신 역시 겪었기에 명절에 갈 곳 없을지 모를 이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더 이상의 운영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하자는 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다. 이곳에서 일반이 쉽게 생각하는 끈끈한 관계에 대한 정의는 무너지고 다른 질서가 새로 선다. <홈그라운드>는 바로 이들의 질서를 촘촘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보여주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공간들에서 결코 빠지지 않았던 깊은 유대의 연결을 훑어간다.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이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쓰이겠지만 더 이상 그들의 역사가 좌절을 바탕으로 서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삶을 지탱해 주는 공간의 경험들, 그것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으로 이후를 채울 수 있는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홈그라운드>(2023.12.6.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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