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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타일링의 대가가 빚어낸 새로운 누아르-<더 킬러>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타일링의 대가가 빚어낸 새로운 누아르-<더 킬러>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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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가 나오는 누아르 영화는 일정 부분 정형화된 공식을 갖고 있다. 실수조차 하지 않는 만능의 킬러,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 빠른 속도의 전개 등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킬러>(2023)는 이 공식들을 낱낱이 해체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입혀 킬러물을 재창조한다.

영화 초반부터 핀처 감독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20여분간 영화에선 총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다. 그저 킬러(마이클 패스벤더)의 독백만이 이어진다. 킬러는 타깃이 머물 호텔의 맞은편 건물에서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킬러는 계속해서 호텔과 주변 상황을 주시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펼친다. 심지어 그는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한 행동들 가운데 독백 역시 계속 이어진다. 그는 이 독백에서 기다림이 주는 지루함의 필요성, 완벽한 살인을 위한 반복적 시뮬레이션의 필요성을 강박적으로 되새긴다.

 

20여분이 흐르고 나서야 마침내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기나긴 기다림 끝에 실행된 킬러의 살인은 작은 변수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킬러의 화려한 액션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를 시도한다.

실패한 킬러에겐 잔혹한 대가가 따르는 법. 그의 연인은 킬러를 대신해 목숨을 잃을 뻔하게 된다. 그러자 킬러는 복수에 나선다. 이때부터 영화는 속도를 내며, 몰입감을 더욱 높인다.

 

킬러의 복수 여정은 하나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펼쳐진다. 카메라는 그가 비행기, 자동차 등을 타고 여러 도시에 걸쳐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킬러는 이 과정에서 이름을 수차례 바꿔가고 눈속임을 해가며, 자신을 죽이려 한 클라이언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마주하기 전까지 그는 클라이언트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가 잇달아 살인을 한다. 여기서 핀처 감독은 영화 초반에 아껴둔 액션 장면들을 배치해 관객의 기다림을 충족시켜준다. 그 액션에서도 화려함을 강조하진 않는다. 오히려 차갑고 절제된 느낌에 가깝다.

영화의 진가는 킬러와 전문가’(틸다 스윈튼)과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속도를 한참 높여가던 영화는 이 장면에서 다시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전문가는 사냥꾼과 곰의 이야기를 킬러에게 해준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사냥꾼은 곰을 죽이려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곰은 그런 사냥꾼이 총을 쏘면 금세 사라졌다가 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사냥꾼이 세 번째 시도에도 실패하자 곰은 사냥꾼에게 다가와 너 사냥하려고 오는 거 아니지?”라고 묻는다. 킬러가 그동안 해온 수많은 살인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뚜렷한 목표도, 명분도 없다. 그저 습관적으로 하는 무의미한, 그러나 파괴적인 행위인 것이다.

 

핀처 감독은 결말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한다. 기존 누아르는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어렵게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된 킬러는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 결말은 곰을 반복해서 찾아가고, 앞으로도 찾아갈 사냥꾼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그리고 마침내 관객 역시 사냥꾼의 위치, 킬러의 위치에 서서 자문하게 된다. “너 사냥하려고 오는 거 아니지?”라는 질문을.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학회 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예술경영 석사, 영상학 박사.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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