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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견고한 차별의 벽 앞에 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라이스보이 슬립스>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견고한 차별의 벽 앞에 선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라이스보이 슬립스>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20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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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민자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들의 삶을 조망한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라이스보이 슬립스>(2023)1990년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한국계 캐나다인 앤소니 심 감독이 만든 디아스포라 영화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만큼, 작품 속 배경도 1990년대 캐나다이다. 이곳에 엄마 소영(최승윤)과 아들 동현(어린 동현 역 황도현큰 동현 역 이든 황)이 이주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 <미나리>(2021)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미나리>가 영화적 사건들을 곳곳에 배치한 반면,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그보다 이민자들이 처하게 되는 현실의 벽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견고한 벽은 동현의 외모 변화로 표현된다. 동현은 캐나다에 오자마자 아이들과 다른 외모로 놀림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훌쩍 커버린 동현은 그 놀림이 지긋지긋한 듯,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컬러 렌즈를 낀다. 더 이상 다름의 영역에 있지 않고, 어떻게든 동일성을 갖춰보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정체성은 소영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 또한 외모의 변화로 표현된다. 동현은 목욕탕에서 컬러 렌즈를 잃어버린 김에 컬러 렌즈 대신 안경을 낀다. 염색 머리도 밀고 검은 머리도 마음껏 드러낸다.

 

소영은 방황하는 동현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는 강단있는 어머니를 표상한다. 동현이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리는 동안에도 소영은 흔들리지 않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려는 순간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동현을 위해 어떻게든 동현의 뿌리를 찾아주려 한다.

영화는 소영이 과거 자살했던 동현 아버지의 산소로 동현을 데리고 가며 끝이 난다. 높은 산에 올라간 소영은 소리를 연이어 지르는데, 영화는 한번은 그 소리를 크게, 나머지는 음소거 처리를 한다. 이를 통해 소영이 오랜 시간 겪은 슬픔과 회한의 깊이를 담아낸다.

 

모자의 모습은 16mm 필름에 담겨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캐나다를 배경으로 할 땐 줄곧 1.33:1의 화면비로 진행되다가, 이들이 한국으로 오며 1.78:1로 확 넓어진다. 마치 고국이 두팔 벌려 이들을 환영하고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아스포라 영화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와야 할 이유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학회 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예술경영 석사, 영상학 박사.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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