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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선과 몸짓의 예술이 된 스포츠 영화 -<만분의 일초>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선과 몸짓의 예술이 된 스포츠 영화 -<만분의 일초>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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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화가 가진 스펙타클의 힘은 주로 마지막 경기 장면에서 표출된다. 여러 선수들이 함께 힘을 합쳐 어렵게 이뤄낸 승리, 그 승리에 환호하는 관중의 환호성으로 채워진 결말은 스크린 밖 관객에게 짜릿한 승리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김성환 감독의 <만분의 일초>에선 이런 종류의 스펙타클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는 심지어 결말에서 대련을 지켜보던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지운다. 그리고 오직 두 인물의 대련 모습만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니, 정확히는 김재우(주종혁)의 시선과 몸짓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절제된 감동을 선사한다. 스포츠 영화가 가진 스펙타클의 정의를 새로 쓰며.

 

영화는 재우가 세계 선수권 검도 대회에 나갈 국가대표 선수 선발 경연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선수들은 함께 합숙을 하며 대련 등을 거치게 되고, 이를 통해 최종 선발을 하는 식이다. 이곳에서 재우는 자신의 형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황태수(문진승)과 마주하게 된다. 재우는 태수와의 대련에서 그를 이기고 말겠다는 복수심을 앞세우다 오히려 패하고 만다.

영화의 배경은 다른 스포츠 영화보다 훨씬 어둡다. 그리고 주인공인 재우의 표정 자체도 시종일관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재우의 눈은 항상 태수를 향해 있다. 카메라는 같은 합숙소에서 모두가 잠든 시간, 멀리서 잠든 태수를 바라보는 재우의 날카로운 눈을 클로즈업 하며 그 시선을 담아낸다. 오직 태수만을 바라보는 재우의 시선은 오히려 그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진짜 이겨야 할 상대가 누군지를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너도 검도인이면 네 진짜 상대가 누군지 알잖아라는 대사로 그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재우의 시선이 타자가 아닌 자신을 향하게 되면서, 몸짓 역시 달라진다. 카메라는 죽도를 든 손, 그리고 두 발의 움직임에 집중해 그 변화를 담아낸다. 특히 오른손은 재우의 감정을 표상하며, 그의 마음 가득 차오른 과거의 무게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만분의 일초>는 다른 스포츠 영화에 비해 대사량도 현저히 적다. 하지만 재우의 시선과 몸짓만으로 충분히 많은 말을 전한다. 죽도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 선수들의 기합 소리, 호면 속 숨 가쁜 호흡 소리는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며 한편의 무협소설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가벼워지지 않으면 질 것등의 짧지만 강렬한 대사가 더해져 그 정점을 찍는다. 이 대사처럼 <만분의 일초>는 가벼워짐으로써 이겼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희경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학회 이사, 은평문화재단 이사,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예술경영 석사, 영상학 박사.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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