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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의 문화톡톡] 춤의 대중적 공감을 위한 시론 Ⅲ
[김기화의 문화톡톡] 춤의 대중적 공감을 위한 시론 Ⅲ
  • 김기화(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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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레퍼토리 확장을 위한 인문학적 해석의 수용-

소고(小鼓)는 말 그대로 작은 북이다. 농악에서 사용하는 악기이자 무구(舞具)이다. 소고에 자루를 달아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채를 들어 농악에서 연행하는 장단의 다양한 가락을 연주하며 춤을 춘다. 전형적인 농악의 틀 걸이로 춤을 추는 소고춤 이외에도 소고에 대한 용도는 다양하다. 소고는 부담 없는 크기로 탈판, 춤판, 소리판 등 서민들의 다양한 놀이에 두루 사용되었다.

전통적인 소고놀이를 지난 4년간 다각적인 관점에서 구성하여 전국에 내놓으라 하는 놀이꾼을 모아 판을 벌인 이가 있다. ‘김영희춤연구소’의 소장 김영희이다. 그녀는 현대 사회로 이양되면서 좁혀진 범주로 정형화된 춤을 확장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통춤 이론가로 연구에 매진하면서 역사적 깊이가 오랜 ‘검무’와 ‘소고춤’을 10여 년이 넘게 집중하여 연구하고 무대에 올려왔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전통춤의 변동을 추적하면서 박제된 유물로 인식되던 춤의 역사를 사람들의 인문학적 발자취로 수용해야 함을 주장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주장하였고 <검무전(劍舞展)>과 <소고(小鼓)놀음>에 그러한 의지를 담아 공연을 기획해 왔다.

 

사진 1. 김영희의 고창소고춤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1. 김영희의 고창소고춤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1.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전통춤 레퍼토리

한동안 전통춤 공연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 종목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는 대부분의 춤판에 반드시 등장하는 레퍼토리였다. 여타의 경우에는 사람만 바뀌고 동일 레퍼토리가 공연되기도 하였다. 자연스럽게 춤은 얼마나 정제하여 군더더기 없이 절제하여 아름다운 자태로 표현하는가, 혹은 호흡의 주기와 일체 된 몸의 흐름으로 표현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춤꾼의 역량을 평가하며 명무(名舞)를 운운하기도 하였다.

점차 섬세하여 세밀해진 정제된 춤사위가 춤의 역량을 평가하는 중심이 되자 또 하나의 문제가 양산되었다. 춤의 외적 형태는 정제된 춤사위에 함께 외양이 과도한 의상과 장신구로 치장되기 시작하였다. 춤의 외관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구분하다 보니 세밀한 차이를 극복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춤의 변별력을 두기 위해 의상과 장신구 등에 변화를 주게 되었지만, 의상비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까지 치솟고, 장신구도 고가라 과도한 치장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비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이 과소비로 인한 비용을 고스란히 무용가들이 감당해야 했다.

한동안 학생들의 콩쿠르에도 이 불편한 상황이 자주 목격되었다. 학생들의 춤 역량보다는 칠등신(七等身), 혹은 팔등신(八等身)의 얼굴이 작고 늘씬한 학생들이 얼마나 자태를 인상으로 남기는지가 등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대형 무대의 3분 이내의 춤 경연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유의 미를 가진 살풀이춤의 경우를 사례로 살펴보면 그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비애미(悲哀美)를 표현의 근간으로 하는 살풀이춤이 화려(華麗)하고 품격(品格)이 있는 의상과 아름다운 장신구로 인해 춤은 정조(情調)가 달라져 가슴 찡한 감동 대신 우아하기만 하였다. 춤에 몰입하여 감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춤의 전승이 오랜 기간 외적 전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춤의 내적 전형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는 춤이 구성된 시기와 상황, 변화를 꾀한 시기의 인문학적 담론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 춤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어, 어떠한 경로로 전승되고, 이 시대에 걸맞은 표현이 무엇인지 사사(師事) 경로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만 같은 종류의 춤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표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 인문학적 접근을 적용한 춤 레퍼토리의 확장, <소고놀음 4>

이러한 무용계의 상황에서 ‘김영희춤연구소’의 공연 기획 접근법은 매우 신선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검무전(2012~2017)>과 <소고놀음(2020~2023)> 기획전은 그간 무구(舞具) 춤으로 인식하던 ‘검무’와 ‘소고춤’에 새로운 인문학적 해석을 통해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검무전>은 다섯 번의 시리즈 공연을 통해 33편의 ‘검무’를 무대에서 연행하였다. 사료(史料)가 명확한 기녀 검무를 비롯하여 무예로서의 검무, 의례에서 사용된 검무, 민속놀이로 연행하던 검무, 민속신앙의 신격(神格)으로 상징된 검무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주제를 확장하여 공연을 기획하였다. <검무전>은 성공적이었다. <검무전>은 검무의 이면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주제로 공연을 구성하기도 하고, 그림·문헌·사진으로 남아있는 이미지를 엮어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용계에 레퍼토리로 구축된 기존의 작품 외에도 다른 용례로 인식되던 작품을 올리거나, 새롭게 창작되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망라하여 무대에 올려 소개하였다.

<검무전Ⅰ>에는 ‘해주검무’, ‘김수악류 구음검무’, ‘신미경 안무, 검무낭’, ‘휘쟁이춤 영상’, ‘한순서류 장검무’가 공연되었고, <검무전Ⅱ>에서는 ‘궁중검무’, ‘호남검무’, ‘밀양검무’, ‘무예검 영상’, ‘무예춤’, ‘조선시대 무예 십팔기 중 검예’, ‘이종호 안무, 황창(黃昌)의 비(飛)’가 공연되었다. <2014 검무전>에서는 이틀간의 연행에서 첫날, <검무전 Ⅱ>의 레퍼토리와 ‘계월향’, ‘남이환상 중 장검무’, ‘무무(武舞)_-다른 공기’를 공연하였고, 이튿날, ‘정소산류 달구벌 검무’, ‘김수악류 구음검무’, ‘항장무 중에서 항백과 번쾌의 칼춤’, ‘칼 노래 칼춤 중 검결’, ‘최승희 안무, 검무-격(格)’, ‘한순서류 장검무’를 공연하였다. <검무전 III>에서는 ‘통영검무’, ‘이매방류 호남검무’, ‘장홍심 검무 영상’, ‘북청사자놀음 중 칼춤’, ‘김백봉 안무, 섬광’, ‘공막무’, ‘정대업지무’를 공연하였다. <검무전 Ⅳ>에서는 ‘최영 장군 당굿 중 검무’, ‘경기검무’, ‘한순옥 안무 검무’, ‘용인 할미성 대동굿 중 월도창검무(月刀槍劍舞)’, ‘전황 안무 쌍검무’, ‘재일교포 아리무용단의 칼춤’, ‘진주검무’를 공연하였다. 그리고 세 번의 검무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검무의 역사·문화적 발자취를 살펴 공유하였다.

 

사진 2 김영희춤연구소 주최 검무 기획전 포스터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2 김영희춤연구소 주최 검무 기획전 포스터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검무전>을 통해 그간 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공연되던 진주검무나 통영검무 등의 예도(禮度)에 기반한 교방검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교방검무의 이면에 존재하는 칼의 속성, 베어내고 잘라내는 원초성을 통해 검무의 몰입과 빠른 회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굿판에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던 칼춤 특성인 제액을 베어내고 막아내는 등 신앙적 기능으로서의 문화적 시각이 더욱 확대되어 새로운 검무의 구성 및 다양한 표현의 질이 가능하게 하였다.

<소고놀음>도 네 차례의 기획전을 통해 소고춤을 깊이 있게 들여다봄으로써 새로운 레퍼토리의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무용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주 연행되던 ‘최종실류 소고춤’이 2017년 저작권을 등록하자 소고춤의 연행이 주춤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서한우류 버꾸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소고와 유사한 형태의 버꾸[벅구, 법구]를 이용한 서한우 안무의 ‘버꾸춤’은 레퍼토리의 결핍이라는 틈새를 겨냥하여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소고놀음>은 이러한 무용계의 편중된 레퍼토리에 대한 반향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고놀음 1>에서는 ‘달구벌 입춤’, ‘고깔소고춤’, ‘문둥북춤’, ‘허튼 소고’, ‘교방굿거리춤’, ‘웃다리 농악 채상소고’, ‘고깔소고 5色’이 공연되었고, <소고놀음 2>에서는 ‘고깔소고 5色’, ‘통영오광대 문둥북춤’, ‘권명화류 소고춤’, ‘서도소리 놀량’,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교방굿거리춤’, ‘진주삼천포농악 채상소고’가 공연되었다. 그리고 <소고놀음 3>에서는 ‘달구벌 입춤’, ‘고성오광대 문둥북춤’, ‘소고 삼채(三彩)’, ‘최종실류 소고춤’, ‘남원농악 채상소고’가 공연되었다.

 

사진 3. 김영희춤연구소 주최 소고춤 기획전 포스터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3. 김영희춤연구소 주최 소고춤 기획전 포스터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소고놀음 1>이 시작된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였다. 소고춤의 확대된 레퍼토리를 통해 소고춤은 아름다운 자태를 구성하는 도구 이외에 가락을 구성하여 몸과 일체 된 흥을 발산하는 경지로 이해되었다. 호남지역 고깔 소고춤의 담백하지만, 구수한 어깨춤과 발짓, 그리고 다채로운 소고 놀림과 함께 도약하며 뿜어내는 지면 반력의 밟이춤은 반전의 매력을 주었고, 노구(老軀)임에도 불구하고 연풍대로 제비같이 돌아앉아 춤을 추던 진주삼천포농악 김선옥 보유자의 숨이 멈출듯한 채상소고춤의 신명은 소고춤 레퍼토리 구성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소고놀음 4>는 소고춤 기획전의 마지막 버전이다. 그간의 기획전을 통해 거둔 성과가 집화된 공연이었다. 공연은 오래된 영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되었다. 영상에는 조선시대 김홍도의 「사계풍속도병(四季風俗圖屛)」 중 복원된 ‘가두매점(街頭買占)’을 실어 사당패 놀음에서 소고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남사당패의 오래된 채상소고춤의 기예를 보여주면서 역사적으로 점철된 소고춤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공연 구성은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가야금 산조와 소고 세산조시’, ‘소고 삼채’, ‘아리씨구나 풍장소리’, ‘풍장 고깔소고’, ‘질굿 소고’, ‘팔소고’로 일곱 작품이었다. 출연자는 김영희에게 고창농악의 ‘고창소고춤’을 사사하고 지속하여 함께 춤을 춰온 무용가들이다.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은 최진영이 꾸밈없고 담백하게 춤추었다. ‘가야금 산조와 소고 세산조시’는 김죽파류의 가야금 산조의 세산조시 대목과 고창농악의 대목을 융합하여 선율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정조로 표현하였다. 윤명화가 안무하고 위송이가 농악 소고춤의 흐름과는 다른 묵직함과 자태로 춤추었다. ‘소고 삼채’와 ‘팔소고’는 개인 놀이를 확장하여 군무로 연행하던 판놀음의 멋을 보여주었다. ‘소고삼채’에서 황규선, 전새론, 박혜진이 즉흥적 신명을 가감하여 개인기를 보여주었다면, ‘팔(八)소고’는 강은영, 권명주, 최진영, 위송이 그리고 김영희가 가세하여 8인 소고의 다양한 구성으로 풍성함을 보여주었다. 이번 무대에서 강은영이 연행한 ‘풍장 고깔소고’와 권명주가 연행한 ‘질굿[길굿] 소고’는 눈길을 끌었다. 강은영이 김매기 후에 연행하던 소고 놀음의 해학적 소박미로 질펀하게 춤을 추었다면, 권명주는 길에서 치던 오채질굿 가락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은 삶의 여정으로 해석하여 춤추었다. 오채질굿의 혼(混) 소박(小拍)을 타며 비대칭적인 춤을 추던 정조(情操)가 인상 깊었다.

 

​사진 4. ‘고창소고춤’을 모티브로 채용한 소고춤 레퍼토리 강은영의 ‘풍장 고깔소고’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4. ‘고창소고춤’을 모티브로 채용한 소고춤 레퍼토리 강은영의 ‘풍장 고깔소고’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5. 고창소고춤을 모티브로 채용한 소고춤 레퍼토리 권명주의 ‘질굿 소고’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사진 5. 고창소고춤을 모티브로 채용한 소고춤 레퍼토리 권명주의 ‘질굿 소고’ (사진작가 옥상훈, 사진제공 김영희춤연구소)

<소고놀음 4>의 레퍼토리가 아직은 미완성의 단계라 할지라도 ‘고창소고춤’이라는 단일한 소재를 다양한 형태의 레퍼토리로 확장한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한국춤의 레퍼토리가 품귀한 상황에 김영희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검무전 Ⅰ>을 시작하면서 김영희가 전한 공연의 의도를 보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전통춤이 관객과 더욱 가깝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토리와 다양한 춤의 정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중략)~ 현재 연행되는 검무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검무를 보고, 또 일상의 다른 검무도 본다면 ‘검무’의 유산과 매력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의 춤이 양식화되기까지 문화사적으로 춤에 접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단지 하나의 기교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춤의 순서를 엮고 이를 아름다운 자태의 형상으로 귀결하는 대다수 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졌으리라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한 무대에 오른 여러 종류의 춤이 유사한 안무법이나 유사한 해석이 적용되어 무대에 오를 때 공연은 지루하다. 춤의 미(美)는 변화를 통해 심화하거나 고조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김기화(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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