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구선경의 문화톡톡] 다시 돌아온, 단막극을 소개합니다2 – KBS 드라마스페셜 2023
[구선경의 문화톡톡] 다시 돌아온, 단막극을 소개합니다2 – KBS 드라마스페셜 2023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7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회차에 tvN의 단막극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KBS의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스페셜 2023’의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두 편 중 첫 번째는 <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이다. 어떤 드라마든 일단은 보게 만들어야 하는 게 첫 번째 숙제인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 그걸 다 하고 있다. ‘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라니. 6, 70년대 영화에 있었던 것만 같은-정말 있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냥 그랬을 거 같은, 어디서 들어보긴 분명 들어본 그런- 제목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단번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작진은 드라마 포스터도 아예 옛날 영화 포스터의 질감과 톤으로 만들어 컨셉화하는 재치를 부렸다.

 

‘대쪽 같은 성정과 드높은 경륜, 거기다 수려한 용모까지 갖춘 선비’ 정열(김주헌 분)은 서원의 원장이 되기 위해 밤낮없이 업무에 매진하여 곧 승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아내 설애(박하선 분)은 소박하고 검소하면서도 빼어난 미모까지 갖춘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둘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다만 어쩐지 둘의 잠자리는 소홀해진 지 오래다. 그러던 중 정열은 아내 설애가 마당쇠 덕쇠(한상길 분)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심지어 몰래 고기까지 구워 먹이는 걸 보고는 아내의 부덕을 의심하게 되는데....

내용은 두 남녀가 서로 오해로 마음이 엇갈려 삼각관계에 빠져 헤어질 뻔하지만 결국 그 오해를 풀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전형적이고도 단순한 로맨틱코미디이다. 대체 마님이 왜 고기를 준 건지, 제일 궁금한 그 이유의 답은 마당쇠의 몸이 아니라 머리, 구체적으로 ‘머리카락’을 원해서였다. 남편 정열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서 다른 여인들처럼 아름다운 가체로 장식하고 공식 석상에 나서고 싶었지만, 가체의 가격이 워낙 비싼 터라 살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 마당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고, 이를 잘라 가체를 만들기 위해 최상의 머리카락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마당쇠를 위했던 것!

순진하고도 귀여운 동기가 아닐 수 없다. 로맨틱코미디를 사랑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아니 겨우 그런 이유를 행동의 동기로 삼다니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로코다. 전체적으로 코미디고, 퓨전 사극이다. 현실성을 확보하려고 진지한 이유를 가져왔다면 이야기는 무거워졌을 것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가볍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야기와 분위기에 있다. 이후로도 작품은 그렇게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충실히 따라간다. 서로의 행동을 숨어서 지켜보고, 그 의도를 모른 채 오해를 하게 되고, 한마디만 더 솔직히 털어놓으면 될 일이지만 각자의 자존심과 자격지심 때문에 그걸 삼켜버린 탓에 오해는 더 커지고, 결국 이별까지 결심하게 된다. 서로를 너무 위한 나머지 헤어지게 되고 만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금은 그다지 통하지 않는 로맨스 문법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고, 직진하는 게 미덕이고, 오해가 쌓여 돌아선다고 하면 ‘고구마 전개’라고 욕을 먹는 게 전반적인 추세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오해하고 참고 이별하는 감성이 통했다. 단막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극으로 설정한 덕이 크다. 그 시대니까 그럴 만도 하지 하고 봐줄 수 있다.

사실 로맨틱코미디는 지금 그 자체로 특별한 메리트를 갖기 어려운 장르다. 이전의 로코문법들은 이미 다 간파당했고, 특별한 소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 작품은 그런 로코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가져와서, 그 시대로서는 꽤 파격적인 부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길을 끌었고 부부간의 사랑 이야기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엔 배우들의 몫도 컸다. 여주인공이 남편에게 ‘저하고 밤일하실 시간은 없으면서...’하는 파격적인 대사를 해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 건 역할을 맡은 박하선 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사랑스럽고 엉뚱한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도발적으로 시작해서 산뜻하고 유쾌하게 끝맺는 단막극이다.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극야>이다. <극야>는 <마님은 왜...>와 정반대 편에 서 있는 경향의 작품이다.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사건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제목 그대로라고 하겠다.

주류 유통회사의 영업사원인 수열(이재원 분)은 실적 최상위를 유지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도무지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맞벌이하던 아내 연희(정지우 분)는 임신중독으로 쓰러지고 주인집에선 보증금 삼천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궁지에 몰린 수열은 거래처 사장이 가게를 확장한다며 남는 가게를 맡아서 해볼 생각 없냐는 제안에 고민 끝에 회사 공금에 손을 대고 만다. 한 달만 쓰고 돌려놓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장의 제안은 사기로 밝혀지고 수열은 난감한 지경에 이르는데...

이후 수열은 부정한 짓을 덮기 위해 더 부정한 짓을 하게 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극단적 상황에 몰리고 만다. 무사하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토록 친하게 지냈던 친구 연훈(최성원 분)을 배신하고 심지어 그의 목을 조르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마지막 순간 일말의 양심으로 친구를 해치는 일은 피하게 되지만 이대로는 무사할 수 없게 된 상황. 결국 자신을 이 상황에 몰아넣은 빌런인 상사 고상무(윤세웅 분)에게 이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새로 태어난 생명을 안고 아내와 웃으며 셀카는 찍는 순간, 핸드폰 액정 위로 친구 연훈의 부고 문자가 뜬다. 거대한 비밀과 죄를 묻고 아내와 새로 태어난 생명과 살아가려는 그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아니, 살 수 있을까.

 

다소 길지만 기획 의도를 인용해 보자면 “꿈을 꾸고 소망을 이룬다는 말은 허세와 사치가 되어버리고, 우리네 부모님들이 밟아왔던 것처럼 최소한의 평범한 삶조차 쉽지 않은 요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내어주며 연명하는 것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 조금 좁힌다면 3040 가장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시종일관 무거운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톤도, 화면의 톤도 어둡기만 한데 그들의 삶은 그보다 더 어둡다.

묵직한 주제임에도 볼 수 있게 만드는 건 드라마적인 문법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상황은 끝까지 가고, 사건이 계속 일어나며, 중반 이후로는 긴장감도 놓치지 않고 흘러간다. 이전 소개 작품이었던 <그렇게 살다>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데 그 작품만큼 작가의 필력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수작이다. 이 작품 역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특히 여기엔 모든 배우가 다 현실감을 탑재하고 있달까. 일상성을 잘 연기하는 건 특별히 돋보이는 일이 아니다. 멋있거나 폼나지 않는 배역. 하지만 그 안에 ‘인간’을 담고 있는 연기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그래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주연을 맡은 이재원을 비롯해, 최성원, 김강현, 윤세웅, 모든 배우가 다 주류회사 영업사원 같고, 대리 같고, 상무 같았다.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가 보였기에 좋았던 작품이다.

 

삶은 때로 환하게 빛나서 몽글몽글 아름다운 로맨틱 코미디 같기도 하고, 때로 바닥에 처박힐 때면 이렇게 구차할 수 있나 싶게 적나라한 정극일 때도 있다. 아니, 정정하자면 삶은 사실 극이 아니다. 드라마적인 기승전결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우연이 남발되고 맥락이 없으며 권선징악이나 ‘사이다 해결’ 따위는 더더욱 없다. 별다른 논리도 없이 흘러가서 때론 허탈하고 많은 순간 막막하거나 뿌옇게만 느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완결된 기승전결 속에 위로받거나 같이 울거나, 때로는 이 이야기가 내 현실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안도하거나 하면서.

 

사진 출처-공식홈페이지

 

 

글·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