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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자신을 책임지려는 사람들: 〈미친식당〉이 만드는 매드문화
[양근애의 문화톡톡] 자신을 책임지려는 사람들: 〈미친식당〉이 만드는 매드문화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4.01.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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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미친회사가 설립되고 <미친식당>을 ‘가오픈’했다. 설립자는 미친사람,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국가공인 미친사람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미래에 있을 오픈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동업자를 모집했다. 가오픈이므로 아직 손님은 없다. 미완의 상태라서 가오픈이 아니라 언제든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는 유동성과 가능성을 가져서 가오픈이다. 나흘 동안 하루에 여섯 명씩 4시간에 걸쳐 함께 ‘노동’을 했다. 물론 음식도 먹었다. 내 경우 마지막 날에 방문한 덕에 남은 재료를 몽땅 넣고 만든 맛있는 피자와 칵테일을 모두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노동만큼 달콤한 식사였다.

<미친식당>은 정신장애인들의 ‘노동’에 대한 고민으로 문을 열었다. 이들이 마련한 노동은 요리하기, 대화 나누기, 미술로 표현하기다. 여섯 명의 동업자는 두 명씩 세 팀에 배정되어 함께 일을 한다. 그런데 주어진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여기서는 대화도 노동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자는 것도 노동이고, 딴짓을 하는 것도,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노동이라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자본과 결부된 노동은 쉽게 허락되지 않거나 자본과 무관하게 너무 쉽게 착취된다. 그러나 미친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일반적인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한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노동, 누군가를 일으키는 노동, 누군가를 인정하는 노동이다. 이 노동은 자본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자본이 되는 노동의 기반이 된다. <미친식당>에는 우리가 돌봄노동이라고 말하는 일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요리, 설거지, 정리 정돈, 청소, 살펴보기, 안부 묻기, 들어주기, 걱정하기, 보살피기 등이 시시각각 이루어지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네 시간이 차곡차곡 흘러갔다.

 

사진: [미친식당] ‘호연’이 만든 수세미는 그릇도 잘 닦이고 어여쁘기까지 하다.
사진: [미친식당] ‘호연’이 만든 수세미는 그릇도 잘 닦이고 어여쁘기까지 하다.

미술팀에 들어가게 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흘간 미술팀에서는 분류된 장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그날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배치했다. 그렇게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어지고 안전 손잡이가 만들어졌다. 마지막 날엔 ‘내부장애인’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만들기로 했다. 장루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인과 같은 신체 내부기관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다. 일회용 보조기구를 배치하고 ‘긴급’ 버튼을 만들고 ‘주의할 음식’이라는 표지판을 만드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전문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그 인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렇게 쓰니 꽤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 일을 자거나 기대거나 수다를 떨면서 ‘자발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음’을 하는 일이 노동이 된다는 믿음이 번지자, 노동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자기 자신이 사회에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려고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동을 했다.

 

사진: [미친식당] ‘주의할 음식’의 자리는 냉장고가 딱이다.
사진: [미친식당] ‘주의할 음식’의 자리는 냉장고가 딱이다.

<미친식당>에서 만난 노동의 의미를 다르게도 말하고 싶다. 이 노동은 정신장애인의 삶을 ‘매드 정체성’과 ‘매드 프라이드’로 이동시킨다. ‘매드운동’은 ‘미쳤다’고, ‘비정상’이라고 ‘정신적으로 아프다’고 간주되는 자들이 ‘매드’(Mad, 광기)라는 언어를 되찾아 기존의 부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미쳤다는 것을 문화와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운동이다.(주1) 미친회사가 차린 미친식당은 매드 정체성을 매개로 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매드문화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매드 역사를 다루고, 때로 광기에 대한 의미를 표출하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 활동을 하며, 당사자들만의 특별한 농담과 유머를 지니고, 국가적・국제적으로 법률에 따른 권리를 지닌 사람들이 매드 프라이드를 보여주는 일을 통해 구성된다. 또한 매드문화는 광인들의 내부 세계를 타당한 삶의 방식으로서 수치심 없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외부로 표출하는 행위를 뜻한다.(288~289)

그날 내가 경험한 것은 매드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들의 영향력이 확장”(주2)된, 매드문화였다. 정체성은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좀 더 넓게는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결정할 때 방향을 제시하는 신념과 가치로 표현되는 자기이해이다.(241) 그러나 어떤 사람의 정체성은 올바른 방식에 따라 사회적으로 가시화될 수도 있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르게 가시화될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혀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138-139) <미친식당>은 이와 같은 오인과 비가시화에 저항하기 위해 “본질적 타자성으로부터 귀환”(157)하여 자신을 드러내기를 택했다.

<미친식당>의 노동이 문화가 되는 과정에 매드 정체성을 구성하는 ‘고백’이 있었다. 왈왈이 먼저 자신의 증상을 고백하고 자신이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순간, 나 역시 오늘의 나를 고백할 마음의 자리가 생겼다. 나를 고백하고 너의 고백을 듣는 일은 사회적이다. 나의 취약함이 너의 취약함과 만나기 때문이다. 고백은 나를 주체적으로 만들면서 내가 주체인 이유가 다른 주체들 때문임을 깨닫게 한다. 사회적 규범에 종속된 상태에서 느꼈던 수치심이 자기 존재 방식의 고유성을 고백하는 순간 자긍심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열린다. 고백의 방식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친식당>에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프린트해서 붙일 수 있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빼곡한 글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고백의 말이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사회를 향한 외침이다. 서로의 고백이 만드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장면을 함께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미친식당>을 함께 만들어 갔다.

 

사진: [미친식당]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프린트해서 붙일 수 있다.
사진: [미친식당]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프린트해서 붙일 수 있다.

미친존재감의 손성연은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는 이유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함께 있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함께 있기가 가장 중요하다.”(주2)라고 했다. <미친식당>이 정체성과 가시화에 그치지 않고 연대 가능성을 모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새롭게 구성된다. 함께 함으로써 자신을 재배치하는 노동은 미친사람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한 방식이다.

<미친식당>을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기일이 “연극은 세상에 없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는 대목을 적어둔다. 미친존재감의 작년 연극이었던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2022)도 그랬다. 사라질 것이 분명한 장면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장면들이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먹는 시간만큼은 이 마주침들이 세계를 조금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굳게 믿었다.

 

주1)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 광기와 인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 송승연, 유기훈 옮김, 오월의봄, 2023, 20~21쪽. 이하 이 책을 인용할 때 괄호 안에 쪽수만 표시함.

주2) 손성연, 「미친존재감은 삶의 방식을 바꾼다」, 『연극in』, 2023. 8. 24.

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3208

 

 

글·양근애
명지대 문창과 교수. 『‘이후’의 연극, 달라진 세계』(연극과인간, 2020)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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