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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알려주는 우리의 현실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알려주는 우리의 현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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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포스터

지난 2월 28일 개봉한 김다민 감독의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언뜻 보면 어린이가 주인공인 밝은 동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잔혹 동화다. 사교육 문제를 비롯해 여러 문제를 강하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 막걸리, 모스부호, 페르시아어, 그리고 불통 현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서 막걸리가 알려주는 건 로또 4등 당첨번호, 당첨금으로 구매할 것들, 만들 것들, 그리고 갈 곳 등이다. 그런데 동춘(박나은)이 맨 처음 로또 4등 당첨번호를 알아낼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일단 막걸리가 톡톡 소리를 내는 게 모스부호라는 걸 알아차려야 하고, 그 부호를 해독하는 언어가 페르시아어라는 걸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막걸이가 알려줄거야>에서 막걸리와 소통 중인 동춘(박나은)

사실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경청하며 소통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거꾸로 누군가에게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상대가 내 존재조차 인식을 못 하기도 한다. 사적인 차원부터 공적인 차원까지 주변에서 불통 현실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발언 기회가 제공되지 않거나, 요식 행위 정도로 제공되기도 한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서 동춘의 엄마 혜진(박효주)과 아빠 구포(김동춘)는 딸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인다. 동춘에게 선택할 기회와 변명할 기회도 주고, 병원에 가기도 한다. 다만 동춘은 부모가 원하는 답을 짤막하게 할 뿐,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고성이 오가고 물리적 폭력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일방적 소통만 반복된다. 당연히 동춘의 부모는 동춘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동춘의 엄마 혜진(박효주)

논의와 협의가 생략되면서, 갈등과 오해, 불통의 현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서 동춘이 막걸리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펼친 노력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열정과 끈기도 필요하고, 응원과 연대도 필요하다. 우연히 만난 어른 영진(김희원)은 위기의 순간마다 동춘을 도와준다.

 

동춘과 영진(김희원)

 

- 11살 동춘, 엄마, 아빠, 그리고 의문 현실

이 영화에서 막걸리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건 성인 전문가가 아니다. 학교에서 좀 특이한 아이로 평가되는 11살 동춘이다. 친구도 없고, 학업에 의욕도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데, 수업 시간에 질문 한번 했더니, 선생님이 놀랄 정도다.

막걸리가 뽀글거리는 소리를 모스부호로 적어내고, 한국어, 영어, 일어, 러시아어 등으로는 해독에 실패하다가, 결국 페르시아어로 성공한다. 하필이면, 수학, 영어, 논술, KMO, 미술, 창의 과학, 한국사, 코딩 학원에 더해 페르시아어 학원까지 다니게 된 상황은 기가 막히지만, 덕분에 막걸리의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다.

동춘이가 막걸리 메시지 해독에 매달린 건, “왜 이렇게 살아야해요?”란 질문에 답을 해준 건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아닌, 막걸리뿐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아홉 군데나 다녀야 하고, 성장 클리닉도 다녀야 하는 동춘에게 막걸리는 로또 4등 당첨 번호부터, 구매할 물건들,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준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포스터

막걸리의 메시지를 순서대로 따르다 보면, 마지막에 세상의 비밀을 만나게 된다. 다만 그 비밀이 너무나 파격적이라서 믿어야 할지 말지 의문이다. 동춘이의 환상인지 현실인지도 잘 구분이 안 된다. 그만큼이나 11살 동춘이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질문과 의문에 답을 못 찾고 있는 건, 동춘만이 아니다. 동춘의 엄마, 아빠도, 알고 보면 가족인 희원도 다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고, 각자의 고통도 겪고 있다. 불통 현실까지 겹치면서, 이 세상은 온통 의문투성이인 것 같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이런 의문 가득 현실도 담아내고 있다.

늘 정답을 얻을 수는 없고, 예상 불가일 수도 있으나,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막걸리가 있기를 바란다. 그게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책이나 SNS 같은 미디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비록 사적, 공적 일방 소통을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통을 극복하며, 의문도 줄여가는 현실이 다가오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판씨네마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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