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구매하기
좀비 친구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좀비 친구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 데모스
  • 승인 2012.08.13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 디플로의 친구들

'좀비'. 이 단어가 바로 내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와 인연을 맺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르 디플로>의 2010년 7월호 '좀비에게 조롱받는 국가'라는 제목을 접한 나는 청량음료를 마신 듯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나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자료를 접했고, 특히 시사잡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읽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늘 보는 잡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루한 보도를 일삼았고, 창의성과 새로움에 목말라 있던 나는 이에 끝도 없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르 디플로>를 알게 되었고, 좀비영화가 미국 사회의 폭력과 야만을 박살내고 아랍 섹시 뮤직비디오가 꽉 막힌 아랍 사회의 균열을 만들어낸다는 기사를 접한 것이다. 무언가 키치적이고 적당히 나대는(?) 이 기사의 내용이 나를 끌어당김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르 디플로>를 자원해서 찾아 읽은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닳고 닳은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읽고 싶었다. 좀더 다르게 생각하고 싶고 세상을 그렇게 보고 싶은데 꽉꽉 들어찬 주변의 글들은 박지원이 그렇게 까대던 조선 후기 양반처럼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이러니 <르 디플로>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2012년 3월호에 실린 '탈핵 시대의 도래'는 특별했다. 원전에 막연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나는 원전이 북한의 침공보다 더 위험한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색다른 시각에 도달했다. 가정부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있음을 알린 2011년 9월호 '당신의 귀한 시간 지키는 우리의 값싼 시간'은 복종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고, 칭찬하는 말(예를 들어 필리핀 가정부들이 고용주에 대해 조건 없이 칭찬하는 것)조차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둘째, 생각을 좁게 만드는 우리나라 언론에 자꾸 반항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쌍용자동차 사태 같은 기사는 아예 다루지 않았고, 자칭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곳에서는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열창하며 극단적인 기사를 일삼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무지 균형을 맞출 수 없는 기사들을 보면서 참 지겹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양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2012년 1월호는 노스페이스라는 유명 브랜드가 강북권 학생들에게 로망이 되었음을 꼬집었다. 2012년 4월호 기사 '생태기본소득으로 핵발전소 폐기하자'는 생태세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생태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세금 많이 내라' 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으나 폭탄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나을 듯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7월호 '남로당, 불온한 이름'은 김일성 우상화와 독재를 위해 희생된 남로당, 연안파, 갑산파 숙청을 역사적·사회적 맥락으로 분석한 기사였다. 북한 체제가 견고해지는 과정과 김일성식 정치에 대해 또 한 번 새롭게 인지하게 되었다. 이렇듯 <르 디플로>의 다양한 화두 건들기가 좋았다.

셋째,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짧고 근거 없는 기사들 말고 최소 10분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심층적이고 깊이 있는 기사를 지루할 때까지 읽고 싶었다. <르 디플로>는 2011년 2월호 '튀니지 혁명의 나비효과'를 시작으로 3월호에 실린 '재스민 혁명, 연출과 캐스팅', 4월호 '르네상스 길목에 선 아랍'까지 중동 혁명을 3개월에 걸쳐 스페셜 기사로 다뤘다. 4월호에도 중동과 연결된 기사가 나오니, 너무 우려먹는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중동 관련 정보를 원없이 접할 수 있었다. 이는 <르 디플로> 독자 모임인 '르 디플로의 친구들'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다. 부족연합체로 이뤄진 리비아의 역사적·문화적 상황은 물론, 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섰던 우리나라의 혁명운동도 함께 토론했다. 물론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2012년 6월호 'NL-PD에서 진보당 내홍까지'는 진보정치의 정파적 기원을 다뤘다. 자칭 진보통합당이 분열되고 반목하는 상황을 현시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가 다툼을 반복해온 오래된 역사 때문이라며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진보통합당이 왜 그렇게 막 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르 디플로>를 읽은 지 2년이 넘었고, 정기구독한 지 한 돌이 되었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르 디플로> 정기구독을 결심했다. '그동안 절실했던 내 안의 갈증들이 해소됐느냐'고 물으면 난 주저 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재구독 의사가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여기서 잠시 주저해야겠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가끔 이 잡지는 도무지 못 읽어먹겠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잡지의 문체 때문이다. 물론 이 잡지의 태생이 프랑스인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글을 번역하는 것이 아직 취약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러면 가독성이 떨어져도 되는가. 가끔 <르 디플로> 문체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해본다. 기사에서 주로 쓰는 간결체, 아니면 형식이 조금 자유로운 논문. <르 디플로>의 문체, 넌 누구냐? 최근호 2012년 7월호 노르웨이의 '어두운 꿈' 기사를 보면 "각 종족이 본래 모습으로 자신의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하는 오래된 지혜"와 같이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인식할 수 없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잡지의 필자들은 대부분 교수나 연구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쓰는 글이 대부분 논문 형식이어서 그런 특징이 생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잡지는 읽기 어려우면 순식간에 멀어지는 존재가 아닌가.

둘째, 취재 기사가 적다는 점이다. 도대체 발로 뛴 기사가 거의 없다. '지성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책상에 앉아서 써야만 기사로 쳐주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르 디플로>에서 르포 같은 종류의 기사가 적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다. 르포작가가 쓴 2011년 4월호 '죽음, 노동자가 내미는 마지막 손'을 읽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대우자동차판매 등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하는 투쟁을 그들의 육성을 살려 써낸 이 기사를 보면서 난 참 세상 편하게 사는 것만 같아 죄스러웠다. 아울러 포토에세이 '그 섬, 4대강의 삼류 연극 무대'를 보면서 대통령은 왜 4대강 사업을 벌여서 우리를 진정 자연파괴범으로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친근한 단어를 섞어 쓰고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곁들여 보는 내내 즐거웠다. 발로 직접 뛰고, 사진으로 그 현장을 포착하고, 스스로 체득한 사건을 기자가 풀어놓는 것, 이는 기사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르 디플로> 매월호에서 르포 같은 취재 기사를 보고 싶다.

셋째, 자극적인 제목에 굴욕을 당하는 기분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제목은 혹할 정도로 뇌쇄적인데 내용은 그저 그런 기사가 참 많다. 2011년 12월호에 게재된 좌파정치에 대한 담론의 제목은 '좌파여, 상상력의 감옥서 탈주하라'였다. 현시점에 좌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나열하는 데 그친 이 기사가 왜 상상력의 감옥에서 탈주해야 하는지 두세 번 읽어봐도 찾아낼 수 없었다. 2012년 4월호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공부에 관한 담론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특히 '공부는 사랑의 정치다'라는 제목과 사람들이 제도화된 공부에 파묻혀 공부에 반감을 갖는다는 내용이 어떻게 짝을 이뤘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선물은 1만 원짜리 가방인데 포장만 루이뷔통으로 한다고 그것이 루이뷔통 가방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르 디플로> 재구독 여부를 고민하면서, 처음 이 잡지를 읽으며 가슴을 설레게 했던 '좀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아는 좀비는 '生'은 있으나, 진정한 '心'은 없는 존재. 한때 내 심장을 뛰게 했던 <르 디플로>가 '生'은 있으나 '心'은 없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매월 좀비 친구를 만나는 것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으니깐.

*

데모스(ID) 학원강사.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