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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일의 가교될 터” 정대세의 꿈은 어디로?
“남·북·일의 가교될 터” 정대세의 꿈은 어디로?
  • 최영호 영산대 교수·외국어대학 학장
  • 승인 2009.08.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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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의 북한 축구대표 재일동포의 복합적 정체성
이상적 경계인으로 서기엔 너무 무거운 3국의 관계

지난 6월 18일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결과, 아시아 국가 가운데 A조에서는 일본과 호주가, B조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북한과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함께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아시아 동쪽 끝 3개국에서는 축구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아가고 있다. 축구 선수들 가운데 특별하게도 북한 국가대표 정대세 선수는 3개국 동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감격하고 있다. 축구 선수들 가운데 특별하게도 6월 19일 일본에 입국하면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승전은 물론 3개국 동반 진출에 대한 기쁨을 나타냈다고 한다. 일본 스포츠신문들은 일제히 그가 눈물을 머금고 “3개국 모두 월드컵에 진출하다니 꿈만 같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3개국에 걸쳐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고 한다.


정대세 선수. 1984년 3월생. 그는 아이치현 출신 재일동포 3세로 한국적을 가지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총련계 민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우리말과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아이치 조선제2초급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도쿄 조선대학교 체육학부를 졸업한 뒤 2006년 J리그 프로축구팀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들어갔다. J리그 진출은 일찍이 그의 축구 실력과 열정을 신뢰하고 그에게 여러 프로축구팀의 인턴 선수로 활약하도록 주선해준 일본인 후원자들의 숨은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축구 선수는 J리그 득점왕으로 알려진 미우라 가즈요시라고 한다.

그가 일본을 떠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은 2007년 4월 전남 드래곤즈와 경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7월에는 한국의 기독교방송과 인터뷰 도중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직접 부르는가 하면,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 그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 국적으로의 변경을 허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나의 나라’는 북한이다. 2007년 총련의 도움으로 북한 여권을 취득하면서 그는 학창 시절부터 꿈꿔온 북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북한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발 빠른 공격수로서 그의 활약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정대세 선수는 3개 나라에 걸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이상적인 경계인으로서 3개국 사이에 부단하게 발생하는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크게 부자유함을 느끼지 않고 축구선수로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축구를 보고 열광하는 3개국 사람들과 일치된 정체성을 가질 수 없는 마이너리티이기도 하다. 정 선수와 같이 관중도 축구 자체만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 더욱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뚜렷한 국가 관념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남북한과 일본에서는, 그가 국가대표로 뛰는 한 축구 경기의 정치적 역할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주변국이 안보 위협을 받는 상황은 그의 자유로움에 악조건이 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말대로 3개국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려 한다면, 그는 가능한 정치적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고 또한 팬들의 감동이 식지 않도록 부단히 축구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여유 없는’ 무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재일동포에게 부여되는 민족적 불평등

재일동포 사회는 직간접적으로 식민지 지배와 해방을 경험한 1세들이 중심을 이뤘을 때에는 한반도 ‘본국’ 지향성이 강했다. 그러나 오늘날 3세 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전반적으로 일본 사회에 밀접하게 동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실 생활에서 한반도 국가와 그다지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회에 동화돼가는 것은 언뜻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파적 성향을 가진 일부 재일동포 가운데는 일본인으로 완전히 동화해가면서 한국 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나 외국 국적을 가지고 일본의 지방참정권을 요구하는 이들을 강렬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재일동포 가운데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조금이라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본인과 다른 사회구조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외국인이 점차 늘어가는 일본 사회에서 ‘민족 공존’이니 ‘공생’이니 하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사회에 전적으로 동화된 재일동포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사회 저변에 여전히 민족적 불평등이 깊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재일동포는 겉으로 일본인과 똑같은 얼굴과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들의 내면에서는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착종된 정체성으로 인해 일본인과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하순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국제학원을 방문해 교육 현장을 견학했다. 이 학교는 일본과의 민족적 경계와 남북한의 이념적 경계를 허물고, 동북아시아와 일본을 연결하는 젊은이를 양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지난해 4월에 개교했다. 학생 수가 아주 적은 중·고등 과정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성심껏 인성교육에 매달리는 교사들의 모습과, 그들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배움에 정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교육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 학교가 놓인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설립 과정에서 나타난 주민들의 반대나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정식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본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재일동포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대세 선수가 프로 선수로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음양으로 후원한 일본인이 있었던 것처럼, 재일동포와 일본인의 민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의 시민단체는 정주 외국인에게 주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민단체 활동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에 대한 행정 차별을 철폐하도록 하는 운동을 들 수 있으며, 그 결과 급료 지급이나 공무원 임용 및 승진 등 행정적 처우에서 상당 부분의 진전이 있었다. 또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이 1975년 9월 기타큐슈시 시민단체들을 시작으로 지금도 일본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다.

재일동포의 일본 지방참정권

시민운동의 영향을 받아 1993년 9월 기시와다시 의회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중앙정부에 정주 외국인의 참정권을 부여하도록 요청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또한 1995년 2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정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는 헌법상 금지된 것은 아니며, 다만 국가의 입법 정책에 해당하는 사항”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일본 의회에서도 지방참정권 법안이 논의됐다. 공명당이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다. 공명당은 2005년 처음 법안을 제출한 뒤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연립 여당을 포섭해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5차례 모두 표결에 들어가지 못하고 회기를 넘겨 자동 부결돼왔다.

일본인 가운데는,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이 부여될 경우 재일동포가 한반도와 일본 2개국에 걸쳐 선거권을 가지는 이중 참정권 문제를 들어,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국회는 올해 1월 재일동포의 영주권자를 포함해 재외 국민 모두에게 전면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재일동포 가운데 한국 국적자는 일본 국내에서도 한국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이미 명목상으로 북한의 국정 선거의 선거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선거권 행사를 하지 않고 소수의 총련 고위 간부들만 북한의 대의원에 선출돼 피선거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방참정권 부여에 반대하는 논리 가운데는 자민당 내부의 강경 반대론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안보 문제도 있다. 그들은 일본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가운데 재일동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면서 ‘한국 국적’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다. 정대세 선수의 경우 굳이 정치적 견해를 추궁한다면 이러한 재일동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일본에 대한 적대정책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현실에 비춰, 만약 일본의 국방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일동포 선거권자 중에 북한 추종의 선거권자가 많아지면 일본이 안보상 위협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견해다. 반대론자들은 외국인이 일본에서 선거권을 행사하고 싶으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지방참정권 부여를 찬성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민단 쪽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일본 헌법이 규정하는 선거권 주체로서의 ‘국민’은 ‘주민’을 의미하며, ‘주민’은 반드시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법리상 외국의 국정 선거에 참여하면서 일본의 지방선거에도 참여하는 이중 선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방자치는 ‘주민’ 의사에 의해 지역적 정당성을 가지며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다고 해도 ‘국민’ 의사에 의한 국가적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행위가 법률에 기초해 법률 안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주민’에 외국인을 포함시킨다고 해도 국민 주권 원리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주민’의 구성원인 외국인을 선거권 주체에서 배제하는 것은 지방자치 원리를 위반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올 8월 말에 실시될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자민당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정권 교체 가능성도 높아졌다. 7월 27일 민주당은 정권 인수를 전제로 정책공약집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영주 외국인의 지방선거권 부여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창당 때 기본정책에 정주 외국인 지방참정권 등을 조기에 실현한다고 기치를 내걸었다. 이 방침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다”라고 하여, 신중하면서도 종래의 전향적인 자세를 표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같이 지방참정권 부여에 적극 찬성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나가시마 아키히사 의원처럼 적극적인 반대론자들도 적지 않다. 이번 정책공약집에서 지방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명확하고 적극적인 표현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당내 사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민주당이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글 · 최영호
영산대학교 교수(외국어대학 학장),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주요 저서로 <한일관계의 흐름>(2008),<현대한일관계사>(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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