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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냐 죽음이냐
포기냐 죽음이냐
  • 에릭 뒤세르
  • 승인 2016.09.01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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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도시들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방랑자들을 빨아들이는 속성을 곳곳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마가사키(1)에서 그 비밀스러움은 맨살을 드러낸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벼랑에 몰려 이곳을 찾아왔다.”
최근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일본 작가 쿠루마타니 쵸키츠(1945~2015)의 처녀작, <아카메 48 폭포 동반자살 미수>는 순간 반짝하는, 첨단기술이 발달한 반듯한 일본을 그리지 않는다. 요도가와 강이 흐르는 오사카 만에 위치한 아마가사키는 우후죽순 제철소가 들어서있어 삭막한 도시로, 과거 한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고 많이 살았던 곳이다. 이 도시는 창녀, 포주, 가난뱅이, 불량배 등 사회소외계층, 그리고 화자인 이쿠시마 요이치처럼 방황하는 샐러리맨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을 흡수한다. 
실연의 상처 이후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 30대의 이쿠시마 요이치는 하류 인생으로 빠져 든다. 히메지에서 여인숙 프론트에서 일했던 그는 교토에선 식당 보조로, 모토마치에서는 고베의 깡패들이 모이는 싸구려 식당 지배인으로 일한다. 그리고 노름꾼들이 모이는 선술집 지배인 등을 전전한 끝에,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히닌(非人)’(2)으로 전락한다.
“나는 오사카-고베 라인의 데야시키 역 근처에 있는 구역에서 근근이 살고 있었다. 빗물받이들이 다 녹슬어 있는 이곳에서, 동물 창자나 닭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꼬치집에 공급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도쿄에서 실업자로 살았던 2년을 포함해 낙오자로 산 지 6년 째였다.”
이쿠시마 요이치는 자신만의 생각과 말, 상상 속에 갇혀있는 남자다. 그는 등에 불이 붙은 채 뛰어다니는 악몽을 꾸거나, 아름다운 창녀 아야짱을 훔쳐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쿠시마 요이치는 아야짱의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모습 전체를 훑는다.” 
눈이 충혈된 문신 시술사, 아야짱의 ‘남자친구’가 - 불교의 신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불을 뿜으며 적들을 무찌르는 - 부명동왕을 닮지 않았다면, 그가 “어둠의 세력을 주름잡고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이들”의 대장만 아니었다면 모든 게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이치와 아야짱에게는 아카메 48 폭포에서 동반자살하는 것 외에 탈출구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일본 전통연극 가부키에서 흔한 고전적인 비극이 전개된다. 아카메(3) 48 폭포는 중세시대 닌자들, 또는 ‘히닌’들이 훈련을 받던 곳이다. 
소외된 자의 시선으로 내면을 표현한 쿠루마타니의 이 작품은, 1인칭으로 기술된 다른 일본 소설들, 그만그만한 작품들 속에서 두드러지며 눈부신 감동을 발산한다. 코바야시 타키지의 <게잡이 공선>(1929)과 마찬가지로, <아카메 48 폭포 자살미수>도 현대인의 자아상실을 날카롭게 그려낸 훌륭한 소설이다. 자아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삶이 주는 신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 대목이 잘 말해준다. “죽는다고 크게 잃을 게 없을 것이다”  


글·에릭 뒤세르 Eric Dussert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등이 있다. 


(1) 일본 효고현 남동부에 있는 공업 도시
(2) 사람이 아니다(非人)라는 뜻.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일본의 에도시대 최하층민으로 주로 도살이나 시체 처리를 하던 사람들을 칭하던 말. 우리의 백정에 해당된다.
(3) 일본어 ‘아카’는 붉은색(赤), ‘메’는 눈(目)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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