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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어둠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그날, 우리는 어둠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 최서은
  • 승인 2016.12.02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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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디플로> 전주 읽기 모임 소개
▲ 2016년 11월 30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 ‘미국 메시니아즘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왼쪽 맨 위 ‘영민’을 기준 시계방향으로 ‘효영’, ‘혜숙’, ‘효진’, ‘태범’, ‘남기’,‘서은’, ‘효정’.

“결국, 노선의 급진주의냐 수정주의냐의 문제겠죠.” 이에 여자가 질문을 한다.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급진주의,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남자가 답한다. “‘성공’ 후에는 그들만의 ‘권력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까요.”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저녁 7시. 8명의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대화는 ‘르-디플로’(<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애칭이라는 점을 다 아시죠?)의 11월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기사에 관한 것이다. ‘흑인인권’과 ‘운동의 급진성’.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주제인 것 같다. 사유의 흐름은 이러했다. 미국 내 ‘마이너리티(Minorities)’인 흑인, 그들의 운동(Black Lives Matter), 한국 내 ‘마이너리티’의 움직임, 노동자 운동, 일부의 급진·과격성, 주류와의 타협가능성, 운동의 최종적 결과…. 일련의 흐름을 나열해 보자니, 생각의 확장이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연결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식견’ 있는 혹자는 ‘어설픈’ 혹은 ‘억지’ 대입이라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르-디플로’를 읽는 독자의 해석이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회원마다 사고의 공간과 깊이 또한 각기 다르다. 따라서 서로의 사유와 말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취사선택’ 된다. ‘흑인인권’을 이야기하며 ‘운동의 급진성’이 나온 이유다. ‘말’과 ‘말’이 만나는 연결지점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빚어낸 대화는 사유의 파도를 타고 스멀스멀 시공간을 함께 여행한다. 한국과 세계,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씨줄과 날줄이 수십 개 차원의 공간에서 서로를 옭아맨다. 모임은 그 촘촘한 연결망 속 우리 스스로 어디쯤 서있는지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우뚝 서있는 곳 발끝 아래, 갈등하는 지점 또한 헤아려본다. 

답이 없는, 우주
 
 헤아려보자니, ‘불친절하다’. ‘르-디플로’ 독자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한 수식어라 생각한다. 몇몇 기사는 거대담론과 함께 학문적 기원이나 사상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낸다. 주석을 꼼꼼히 챙겨보자니 수고스럽고, 그냥 읽자니 도통 검은 글자에 흰 백지와 씨름하는 것 같다. 8명이 모인 모임이 장고 끝에 내린 결론 또한 ‘물음표’다. ‘애초에 답은 없다’라고 생각하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임을 진행해오며 관찰한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르-디플로’를 이해하기 위해 과월호 ‘르-디플로’를 찾아 읽게 된다는 것이다! ‘르-디플로’가 ‘르-디플로’로 해결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실제 모임 또한 당월호 기사와 과월호 기사를 혼합하여 발제한다. <신자유주의 속 미국>, <유럽국가의 우경화>, <이슬람교>, <영해와 국제법>. 각 기사가 그려낸 현상은 ‘점’으로 위치했지만, ‘르-디플로’와 ‘르-디플로’를 연결지어 읽다 보니 ‘선’, 거대한 공간을 둘러싼 ‘차원’으로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꼭 ‘르-디플로’가 아니어도 좋다. ‘불친절’한 우주의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은 ‘별’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다. 회원들은 본인이 즐기던 영화나 책을 회상하여 기사를 내재화한다. 필자의 경우 ‘페미니즘 담론’ 토론 중 대학시절 강사님과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아버지, 남편, 아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장 하나가, 한국사회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 구조와 젠더권력, 여성해방 운동의 현 주소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혜숙’ 회원은 ‘사드배치’ 자유토론 때 당신이 평소에 외우고 있던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나라’의 전문을 읊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했다. ‘효영’ 회원은 전언한 ‘운동의 급진성’에 대해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란 책을 추천하며 운동에 ‘방향성’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회원 각자가 가진 빛이 타인을 비춰주니, 혼자일 때보다 훨씬 든든하다. 

 혹 경험이 부족하다 느낀다면, 함께 만들어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우리는 3주 전 영화 <페르소나>를 단체 관람했다. 회원들은 한데 모여 대중과 예술가의 ‘소통’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미지를 통한 사유를 시도함으로써 이해의 지평을 한 층 넓혔다. ‘르-디플로’에 예술, 대중문화, 영화에 관한 기사가 나왔을 때 우리는 분명 이 경험을 떠올리며, 본인만의 호흡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강연, 학회와 같이 다양한 경험의 형태에 앞으로도 함께 할 예정이다.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도 해답은 이미 본인에게 있다. 자신의 경험과 깊은 고민들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인연, 책, 드라마. 모든 자료들을 총동원해 나만의 문장으로 구성하고 ‘뱉어보는’ 경험. 이 경험이 곧 ‘르-디플로’를 ‘읽어내는’ 방법이라 믿는다.
  
우주를 헤는, 별

 ‘읽어내는’ 데 있어 모임은 같이, 또 ‘따로’ 움직인다. 역설적이게도 토론은 각자가 더욱 ‘독립적’일수록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수억 개의 별들이 오롯이 자기의 자리에서 빛날 때 우주가 밝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의 ‘장’이 빠르게 진행될 때면 회원들도 모르는 사이 그들만의 ‘고유함’이 언변에 묻어난다. 그 안에 본인의 개성, 장점, 개인의 정보 또한 드러난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영민’, 경험에 비춰 생각하는 ‘태범’, 다양한 지식을 가진 ‘효영’, 대중문화를 전공한 ‘효진’, 교육 전문가 ‘혜숙’, ‘대입’의 방법을 사용하는 ‘남기’, 진솔한 느낌을 표현하는 ‘효정’, ‘마무리 펀치 라인’을 잘한다고 하는 필자, ‘서은’. 8명은 평소 들었을 법한 ‘타인의’ 논리적 흐름이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느낀 생생한 경험을 공유한다. 모임 덕분에 우린 평소 할 수 없던 생각과 관점을 간접경험 할 수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이야기를 상기시켜 보기도 한다. 죽어가는 말의 가치, 사변의 통찰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시작은 4명이었다. 한 명 한 명 식구가 늘어나더니, 최근 합류한 회원 ‘남기’까지. 9번 모임 만에 어느새 총 8명이 되었다. 나이, 출신지역, 가치관, 경험이 다양하다보니 오가는 대화의 주제가 풍요로운 편이다. 이미 ‘인연’이 닿았던 회원들도 있다. ‘효영’ 회원은 ‘태범’ 회원의 고등학생 시절을 취재한 적 있다. 11월 8일 <권력, 광기의 역사> 기사 발제 도중 둘의 ‘특별한’ 인연은 밝혀졌다. 인생에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 둘. 이 둘이 다시 만난 이유가 ‘르-디플로’라니, ‘삶에 단순한 우연은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이게 된 8명의 ‘별’들이 소통하는 방식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모임은 격주로 발제와 자유토론을 진행한다. 발제를 하는 주에는 발표와 토론이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었다. 이 때 우리가 정한 ‘원 페이퍼’ 형식은 모임의 효율성을 더한다. 발제자는 ‘요약, 상식, 인상 깊은 부분, 생각해 볼 과제’라는 이름표에 맞게 기사에 드러난 생각을 재배치한다. 곳곳에 흩어져있던 개념과 아이디어들이 나름의 정형성을 갖춘 채 시너지로 작용한다. 자유토론은 투표를 통해 기사를 미리 선정하는 방식이다. 과월호와 당월호를 ‘연결지어’ 읽는 묘안 또한 취하고 있다. 가끔 토론이 시작되면 열띤 참여 덕에 대화의 리듬이 흐트러질 때도 있다.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한 발언자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첨언할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같이, 탐험하라
  
시를 한 편 본 적 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공기가 한적한 곳에 서면 유난히 눈에 띈다.’ 제목이 ‘별’이다. 시간에 쫓겨서, 사람에 치여서, 내가 누군지 살펴볼 여유가 없다. ‘일상성’은 늘 우리 안에 있다. 그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홀로 오롯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의 ‘사유, 시간, 말’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라면 이 고민에 답을 내려줄 수도 있겠다. 본인이 탐구하고, 궁금해 하는 만큼 보상은 철저히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 탐험에 함께할 누군가가 있다면 외롭진 않을 것이다.  

시간이 느린 곳에서 같은 곳을 보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다면 동기는 충분하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만 한다면 당신의 우주는 전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다. 전주읽기모임은 순항 중이고, 다음 주 화요일 7시에 모인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주 읽기 모임>의 순항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메일로 문의주세요: 4jody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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