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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실용적 진보의 대학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실용적 진보의 대학으로”
  • 김기석 l 성공회대 총장
  • 승인 2021.01.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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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의 대학을 말한다(2)

■ 김기석 총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5년 동안 주물공장 시다(조수)로 일했으며,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1980년 항공대에 입학했다. 대학 선배를 따라 우연히 성공회 성당에 갔다가 ‘은혜’를 느껴, 군복무를 마치고 1984년 천신 신학대(성공회대 전신)에 들어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1990년 대한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2004년 성공회대 교수에 임용됐다. 신학과장, 신학대학원장, 교목실장, 연구대외협력처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2018년 8월 성공회대 제8대 총장에 취임했다.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

“대학 평가에서 특혜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큰 대학 시스템에서나 가능한 기준을 저희 대학에 적용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재학생 2,800명, 교수진 90명의 소규모 대학이지만, 성공회 대학이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각별하다. 총장에 취임한지 2년 6개월. ‘실용적 진보’와 ‘생태적 감수성’의 핵심 키워드를 제시했던 김기석 신부(62)는 재임 중에 얼마나 성과를 이뤘냐는 질문에 “모두가 가치 지향적인 목표여서 통계나 데이터로 쉽게 나올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대학 순위를 매기는 교육부나 대형 언론사가 작위적으로 정한 경쟁력 항목은 우리처럼 작으면서도 공동체 지향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대학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1914년 성미가엘신학원으로 출발해 1994년 성공회대로 교명을 변경했고, 길지 않은 종합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아카데미아로 자리잡았다. 고(故) 신영복 석좌교수를 비롯해 한홍구, 정해구, 이재정, 조희연, 김동춘 모두 이 대학에 몸을 담고 있거나, 담았던 인사들이다. 따지고 보면 비판적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중시하는 대학 분위기가 자연스레 이 대학을 진보진영의 학문적 메카로 만든 셈이다. 이 대학의 학생들도 인문학을 중시하는 커리큘럼에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COVID 19의 비대면 시대에 대학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학령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로 인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많은 대학들이 생존의 문턱에서 신음하고 있다. 대학마다 자기만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학생들을 대량으로 뽑고, 대량으로 방출하다보니 유감스럽게도 영혼 없는 마네킹을 찍어대다가, 시장에서 밀려난 금형 주물공장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김 총장을 만난 지난 1월 14일은 공교롭게도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무려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쓴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널리 알려진 신영복 전 교수의 5주기의 날로, 20여 명의 진보 인사들이 마스크를 낀 채 조용한 추도식을 가졌다. 김 총장의 안내를 받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보니, 모두가 쟁쟁한 진보 인물들이었다. 이 대학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신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던 김 총장에게 비대면 시대의 대학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대학의 유명세 치고는 학교 규모가 아담하네요.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서울 사립대 규모의 1/10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성공회대는 진보학자들의 메카로 알려져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는 비대면 사회 및 AI 시대에 고민이 많으실 듯 싶습니다. 

 “성공회대가 그간 추구해온 인권, 평화, 생태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전문화되고 세분화하면서 지식인들의 기능과 역할도 좀더 현실적이고 특성화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총장 재임기간동안, 교육의 지향점을 실용적 진보에 두어왔습니다.”  

 

- 여권 일각에서 실용적 진보를 정책 어젠더로 채택했다던데, 원래 주창자가 총장님이셨군요.

“과거 20~30여 년 전, 우리 사회의 구도가 민주 대 독재, 진보 대 보수,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 식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진보적이며 민주적인 어젠더들이 중요했고, 저희 대학이 일정부분 그 역할과 소임을 담당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가치들이 중요하게 된 거죠.  특히 인간을 대신할 인공지능(AI)의 등장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인간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물으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기후 변화, 환경 파괴, 생태계 위기를 느끼고 해결책을 찾는 생태 감수성, 즉 실용적 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총장님이 말씀하신 실용적 진보는 결국 생태 감수성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정책노선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정치권의 실용적 진보와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생태감수성을 키우는 교과목이 있을까요?

“전교생에게 ‘기후변화’ 관련 과목을 교양필수로 채택한 것을 비롯해, ‘에콜로지와 과학기술’, ‘인권과 평화’ 등의 교양과목을 두고 있고, 또한 학교 인근의 자투리땅을 텃밭으로 조성해 ‘소통·치유· 배움· 나눔’ 열린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학생과 주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그린 카페’. 주민과 학생, 교수가 함께 가꾸는 ‘텃밭 체험장’ 등을 운영중이고, 전국 최초로 ‘협치’ 교양과목을 개설해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고 지역 사회의 ‘돌봄’사업의 현장 학습에 참여하고 있고, 특히 설립 20주년을 맞은 NGO대학원에서는 인권, 젠더, 생태의 실천적 정책전문가들을 배출하는 성과를 꾸준히 내고 있습니다.”          

 

-대학이 신학교로 출발했고, 종교 명칭을 그대로 학교명에 사용한 만큼 종교적 색채가 강해보입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사실, 종교는 심성에 관한 영역입니다. 지금과 같은 극단의 시대에선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게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대학 정규교수 90여명중 사제는 5명 정도이지만, 주로 교양과목을 맡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담당하는 비아메디아 채플은 우리 삶에서 중도· 중용의 가치를 고양하고, 학생들의 심성과 자아발견을 다지는 시간입니다. 또 불교의 스님과 이슬람의 이맘들도 초대해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성공회가 영국에서 출발한 까닭에 보수성이 강할 것 같은데, 오히려 한국의 성공회와 성공회대는 진보의 ‘성채’처럼 여겨집니다. 

“성공회의 신앙적 특징중 하나는 극단적인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 사이에 중도(viamedia)를 걷는 것입니다. 성공회대가 진보의 성채로 인식된 것은 어쩌면 교수진이 그동안 너무 오른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지적 사상과 철학에 ‘중심’을 바로 잡으려 노력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캔터베리 대주교 관할에 있는 각국의 대다수 성공회는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자적으로 운영됩니다.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성공회는 164개 국가에 1억 명의 신자가 있으며, 언어, 문화, 정치적 상황 등 다양한 지역적인 성격을 지닌 각국의 성공- 신부 출신의 대학 총장이, IT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게 조금 놀랍습니다.  

회는 영국 성공회의 선교정책에서 탈피해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자치교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의 경우 교단은 교수 채용에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교수들은 학문적 양심에 의거해, 자유로이 사회과학과 인문학 등 각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학생들은 교수들과의 긴밀한 사제의 관계 속에 학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의 미덕은 무엇입니까? 학교 교지의 제목처럼, ‘성공시대’입니까?  

“우리 대학에 들어오면, 누구든 성공시대를 맞게 됩니다. 성공회대는 인문학적 교양교육에 가장 중심을 두고, 대학(University)의 본질인 보편주의(Universalism)적 가치를 지향합니다. 그것은 인권, 평화, 생태감수성, 젠더, 동물권, 과학기술, 나아가 인간과 우주와 종교의 관계성을 종합적으로 공부함으로써 진정한 성공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는 인문사회 교육을 강화하는 대학으로 유명합니다. 성공회대와 유사한 대학의 모델을 찾는다면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잣대로 삼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인문학적 소양교육을 구현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 의약대와 로스쿨이 없는 대학으로서, 어떻게하면 대학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논문이 많이 나오고, 취업률이 높은 의약대와 로스쿨이 없다보니,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저희가 아무리 인문학적 교양과목에 집중한다고 한들, 그게 대학평가항목에 어떤 영향을 줄리 만무합니다. 사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가장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돼, 대학에서 추구하는 융·복합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학부로 입학 후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했고, 소규모로 분립된 학과를 4개의 융합학부로 통합했습니다. 학생들이 융합학부 안에서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전공 개념으로 트랙을 제시했습니다. 주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등으로 전공과목을 나눠 트랙별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주도 전공설계 방식으로 구성한 거죠. 여기에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정보기술(IT)을 익히게 했습니다.”

 

- 신부 출신의 대학 총장이, IT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게 조금 놀랍습니다.  

“원래 과학과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전, 1980년 항공대 기계과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유학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순수과학과 종교는 통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과학과 종교사이의 관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최근에 낸 『신학자의 과학산책』이란 책에서 신학과 과학의 경계를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정신과 과학정신은 영역은 다르지만, 상호보완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공회대는 규모는 ‘작지만, 지구촌의 원대한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학입니다. 나를 찾고, 이웃에 대한 배려, 나아가 공동체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기후변화, 생태환경, 남북관계 등 우리 사회의 쟁점에 대해 깊은 지식과 성찰의 기회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 대학의 교수진이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입니다.  

 

‘소통, 치유, 배움, 나눔의 열림 정원’에서 (가운데 김 총장)

 

 

글·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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