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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예술영화관은 지속 가능한가?
한국 독립예술영화관은 지속 가능한가?
  • 서성희 |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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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전, 한국 상영시장

한국영화 상영시장은 크게 멀티플렉스와 OTT(1) 서비스로 나뉠 수 있다.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11’이 개관한 1998년 이전, 상영시장은 대한극장과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으로 대표되는 1,000석 이상의 대형 단관극장에서 개봉이 결정되면, 6대 상권 지역(2)에 배급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영세했던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서울 외 지역 영화관에서는 직접배급 방식보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지역 배급업자에게 필름을 미리 넘기는 간접배급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 한국영화는 외국영화에 비해 흥행이 무척 저조했기에, 상영관을 잡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서울 소재 극장에 영화를 개봉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서울 개봉관들은 스크린 쿼터를 채우기 위해, 영화 호황기(흥행시기)를 피해 한국영화에 상영 기회를 줬다.

 

1998년, 멀티플렉스의 등장

한국의 상영시장은 1990년대 본격화된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11’의 개관과 함께 변화했다. 10여 개의 상영관을 보유한 다관극장,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상영공간의 풍부한 제공으로, 다양한 영화를 개봉할 여건을 마련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탄생 목적이 어디까지나 이윤추구인 만큼, 개봉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도 철저히 경제적 논리를 따른다. 따라서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상영시장은 다양성이 아닌, 상업성이 높은 영화의 독점현상이 심화됐다.

 

한국 최초의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씨네마텍’ 
개관 기념작 <천국보다 낯선> 개봉 포스터 

한편,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이 생겨났다. 1988년 미국영화수출입협회(MPEAA)의 강력한 요구로 한국 영화시장이 완전 개방되면서, 1990년대 초반 코아아트홀, 뤼미에르극장, 피카소극장 등 초기 예술영화관이 운영되기 시작한다. 이후 동숭씨네마텍은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등을 성공시키며, 예술영화와 예술영화관이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1997년 2월 문화체육부는 동숭씨네마텍을 ‘예술 실험영화 전용상영관’ 지원 대상으로 인정하고 의무사항과 지원 내용을 통보했다. 의무사항은 연간 상영일 수의 60% 이상 예술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것, 지원 내용은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영화의 상영분에 한해 납부한 문예진흥기금을 환급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동숭씨네마텍의 지원 근거가 됐던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은 1995년 12월 30일 제정된 영화진흥법에 처음 명시됐다. 당시 대상 영화는 ‘한국영화, 문화영화, 단편영화, 소형영화 기타 문화체육부령이 정하는 영화’였다. 예술영화가 법적으로 전용상영관의 지원 대상이 된 것은 1999년 2월 8일 영화진흥법이 전부 개정되면서부터다. 시장에서 퇴출당한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은 당시 외국영화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던 대부분의 한국영화 지원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영화에 경쟁력이 생기고 시장성을 가진 영화들이 속출하면서,(3)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퇴출당한 한국 예술영화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관객들의 움직임까지 형성된 계기는 2001년 ‘와라나고’ 운동이다. 2001년 가을 개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미>, <고양이를 부탁해>가 영화적 성취와 달리 상영시장에서 급히 퇴출당했던 것이다. 이에, 관객들은 자발적인 관람 운동을 펼쳤다. 이런 현실적인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펼쳐, ‘한국 예술영화에 최소한의 상영기회를 보장한다’라는 목표로 제작사와 배급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7년, 독립영화전용관의 탄생

이후 영화시장의 다양성 향상을 위해 예술영화전용관과 함께 ‘독립영화전용관’이 생겨났다. 2007년 서울에서 ‘인디스페이스(Indie Space)’가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개관해 활동을 시작했고, 지역에서는 최초로 ‘오오극장’이 생기며 독립영화전용관이 하나둘씩 늘어 현재 10여 개의 독립영화전용관이 존재한다. 독립예술 전용영화관의 위기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시작됐다. 2014년 예술영화 전용관인 대구 동성아트홀 ‘독립다큐멘터리특별전’에서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됐다. 그 소식을 접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좌파성향의 영화 상영관을 영진위가 지원하고 있다”라며, ‘페널티’를 주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시작된 박근혜 정권의 영화관 블랙리스트는 <다이빙벨> 상영 이후 지원 배제의 범위를 넓혀갔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지원 배제로 문을 닫고 위기를 겪던 2014~2017년은 멀티플렉스 3사가 독립예술영화 전용 스크린 사업을 확장해가던 시기였다. 2014년 CGV는 기존의 무비꼴라주를 CGV아트하우스로 리브랜딩하면서 독립예술영화 전용 스크린을 대거 늘렸다. 이에 질세라 롯데시네마도 아르떼 클래식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또한 이 시기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미디어 시장의 재편을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 독립예술영화관 입장에서 거대 멀티플렉스와 뉴미디어의 경쟁 속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추던 시기였지만, 청와대부터 영진위까지 정부가 독립예술영화관 운영을 방해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2016년, 넷플릭스의 등장

설상가상 영화관은 자연환경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영화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바꿔 놓았다. 2016년 1월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상영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8년 넷플릭스는 40만 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데 그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관람’을 하는 이들이 늘면서 2020년 12월 유료관객만 410만 명을 기록했다.(4) 2020년 독립예술영화관은 전년 대비 50~70% 관객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관객 감소는 아직 진행형이다.

 

2021년 1분기부터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의 대표격인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급격히 쇠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지난 1분기 신규 가입자수는 398만 명에 그쳤다(시장 기대치 620만 명). 올 2분기 예상 신규가입자 수는 그보다 더 적은 100만 명 내외로, “넷플릭스의 인기도 꺾였다”는 평가도 나온다.(5) 이런 변화의 원인은 관객의 소비패턴보다는, OTT 시장의 치열한 국내외 경쟁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외국 스트리밍 서비스뿐만 아니라 웨이브, 티빙, 왓챠 등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도 활발하게 영업을 이어가면서 OTT 시장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로 영화관 중심의 관람 문화가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으로 변화했고, 독립예술영화관의 관객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독립예술영화관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따른 관람방식의 변화에 직면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 이후 가장 큰 변화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극복 전략이 절실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법과 정책이 시대에 맞게 변화해줘야 하는데, 늘 느리다. 현재 독립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은 1995년에 제정된 영화진흥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5년은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강변11이 생긴 1998년 이전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독립예술전용관 지원 사업은 2003년에 시작됐는데, 이때는 멀티플렉스의 매출 점유율이 전체 시장의 40% 정도에 머물러 있던 시절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가 영화관의 동의어가 되고, 2019년에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매출액 97.2%를 차지하는 독과점시장으로 변했다. 1995년이 케이블TV가 뉴미디어로 등장했던 시대라면, 2021년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는 뉴미디어 시대다.

 

2021년, 시대에 맞는 정책이 절실하다

‘독립예술영화관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1995년부터 시행 중인 현 정책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독립예술영화관이 처한 시장 환경과 미디어 환경, 정보기술 변화와 관객의 소비 변화에 맞는 새로운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6)

첫째, 현재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정하고 있는 영화상영관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영화비디오법 제2조(정의) 제10항에서는 영화상영관을 “영리를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 또는 시설”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모든 국내 영화관의 운영 목적은 영리 추구인 셈이다. 

하지만 영리가 주목적이 아닌 영화관들도 여럿 존재한다. 한국 영화산업이 대기업 중심의 산업으로 재편 중인 가운데, 예술영화전용관, 독립영화전용관, 작은 영화관 등은 대부분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자 등장했다. 대기업 중심의 영화사업자가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시장에서 소외시킨 영역을, 영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영화비디오법상 영화상영관의 정의는 이런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둘째, 영화상영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구성해야 한다. 영화산업의 가치사슬에서 영화관은 우선 영화를 상영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관이라는 문화시설의 전부가 아니다. 영화관은 영화 상영 외의 역할들도 가지고 있고, 꾸준히 그 역할과 기능을 해왔다. BFI(British Film Institute)와 UKFC(UK Film Council)의 의뢰로 영화 에이전시 필름 런던은 ‘지역 영화관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Local Cinema)’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영화관은 지역민들의 친교, 대안적 영화 상영, 소수민족의 문화생활 참여, 특히 지역 노동시장과 지역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과점시장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해 시장에서 배제되는 사업자(혹은 창작자)가 늘고 있고, 그 결과 소비자(관객)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는 한국영화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긴 영화시장의 실패다. 원래 시장 실패의 보완은 정부의 몫이지만. 시장에서 배제되는 영화사업자와 관객을 연결해주며 정부의 몫을 대신 해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독립예술영화관이다. 정부가 독립예술영화관을 돕는 게 아니라, 독립예술영화관이 정부를 돕고 있는 셈이다. 문체부와 영진위는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독립예술영화관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 잡고 공정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독립예술영화 유통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와 정책 마련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 출처
<천국보다 낯선> 포스터 https://blog.naver.com/yousaikou/222357200150


(1) OTT(Over The Top)는 인터넷을 통해 영화, 방송 프로그램 등의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광대역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셋톱박스(Set Top Box) 없이도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2) 서울과 변두리, 경기 강원, 충청, 호남, 영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3) 영화 흥행의 상징적인 개념은 ‘천만 영화’다. ‘천만 영화’라는 용어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함께 생긴,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대부분 다른 국가에서는 관객 수보다는 관람료 총수익과 DVD, 블루레이 등의 2차 시장에서 얻은 수익 등을 총매출액으로 집계한다. 영화의 성과를 극장 관객수에만 집중시키는 집계방식은 자극적인 용어를 원하는 언론과 극장 방문에 유리하게 짜인 홍보전략과 연관성이 깊다. 이는 영화의 다양성과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4) 이용익, ‘넷플릭스의 ‘잭팟’ 작년 한국서만 5,000억 원 벌었다’, <매일경제>, 2021년 1월 19일.
(5) 김민지, ‘한국 이용자 급감에 세금폭탄까지…넷플릭스 천하 “휘청”’, <헤럴드경제>, 2021년 6월 16일.
(6) 원승환, ‘손실보상에서 협치로; 지속 가능한 독립예술영화관을 위한 정책 제안’, <인디그라운드 연속 정책 포럼 2차 자료집>, pp.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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