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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40년 된 랑법(Loi Lang)의 투쟁사
제정 40년 된 랑법(Loi Lang)의 투쟁사
  • 파트리시아 소렐 | 파리 낭테르 대학 교수
  • 승인 2021.06.30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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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상품이 아니다”

책은 ‘다른 제품과 다르다’는 신념과 책에 관한 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타의 모범이 됐다. 랑법 덕분에 독립 서점, ‘소규모’ 출판사, 대중성 낮은 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캐서린과 콜린>, 2011 – 리차드 핀켈스타인

충격적인 일이었다. 1960~1970년대, 새로 생긴 대형 쇼핑몰, 무인 판매점에서도 책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책의 ‘신성 박탈’과 ‘상품화’를 한탄했다. 이런 한탄은 포켓판 문고의 성장과 함께 더욱 커졌다(포켓판 컬렉션인 ‘Le Livre de poche’는 1953년에 첫 출간됐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점이 대형 판매점의 경쟁에서 밀렸던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 때문이었다. 저가를 내세운 대형 판매점에 밀린 것이다. 당시는 ‘권장가격’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권장가격’이란 출판사에 의해 말 그대로 권장된 가격으로, 소매점이 고객에게 판매할 때는 책의 가격을 마음대로 할인해 줄 수가 있었다.

가전제품, 카메라 설비, 영화 촬영장비 등의 판매에 주력하던 프낙(Fnac)이 1974년 파리 렌 가에 서점을 열기로 결정했을 때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 서점은 최초의 대형 문화공간으로서 ‘권장가격’이 주는 자유를 만끽했으며, 덕분에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 서점을 살릴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막강한 힘을 가진 프랑스서점노조협회(FFSL)의 수장 장밥티스트 델망은 자유가격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가제를 주장하는 레제디시옹 드미뉘(Les Éditions de Minuit) 출판사의 대표 제롬 랭동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았다. 델망에 의하면, 자유가격제는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가격만 정하는 제도로, 서점은 판매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는 반면, 정가제는 서점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였다. 랭동은 자유가격제가 시행되면 할인 경쟁을 버틸 수 없는 수많은 독립 서점이 문을 닫게 될 것이며 나아가 독립 출판물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정가제에 반대하는 서점도 있었고, 또 모든 출판사가 한목소리로 정가제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가제가 시행되면 대규모 판매점과 프낙의 책 주문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형 출판사가 오히려 정가제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이에 랭동은 출판사와 서점들 중 정가제 찬성자들을 모아 정가제협회(1977)를 설립하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78년 3월 총선에서 좌파가 패배하고 레이몽 바르가 승리하면서 정치적 상황이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몽 바르는 자유주의 사상을 신봉했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인물이었다.

 

책의 특수성은 불변의 가치

1979년 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프랑스 내 모든 제품가격의 완전자유화가 결정되고 나서 몇 시간 뒤,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던 르네 모노리는 책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유가격제는 책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델망은 ‘만족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모노리법(法)은 곧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언론은 전통적인 서점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연달아 발표했다. FFSL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급기야는 협회가 둘로 쪼개졌다. 새로운 노조인 프랑스서점연합(ULF)이 1980년 탄생했고, 랭동은 정보 캠페인을 진행하는 한편 대선 후보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였다.

1981년 5월에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 다음 달에 치러진 총선에서 사회당과 좌파 정당들이 승리하면서 정가제 도입에 희망의 빛이 다시 비추기 시작했다. 미테랑의 대선 공약이었던 ‘프랑스를 위한 110개의 제안’에도 책에 대한 자유가격제의 폐지가 포함돼 있었다. 이와 함께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자크 랑의 강력한 의지로 1981년 7월 31일 도서정가제가 상원과 하원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를 얻어 채택됐다. 책은 상업적인 제품이 아니라는 신념에 기반한 이 법은 랑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법이었던 만큼 ‘랑법(法)’으로 불리게 됐다. 

이제 책의 가격은 출판사가 책정하게 됐으며, 소매점은 5% 이상의 할인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서적에 한해서만 할인이 가능해졌다(중개, 회원가입, 우편으로 서적을 판매하는 북클럽의 경우 9개월). 단 공공기관, 지자체, 도서관은 구매가격을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었다(그러나 2003년 6월 18일 법에 따라 단체에 대한 도서 할인율은 정가의 9% 이내로 제한됐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 경쟁은 가격이 아닌 서비스 품질을 두고 벌어졌다. 

FFSL은 마지못해 이 움직임에 동참했다. “출판사들은 1982년 1월 1일에 출판업에 대한 절대 권력을 재탈환할 것이다.” FFSL의 대표 자크 플렌은 <출판 공보(L’Officiel de la librairie)>에 이렇게 썼다. 프낙의 공동창업자인 앙드레 에셀은 낭시에 프낙의 16번째 서점을 오픈하는 자리에서 “도서정가제는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랑은 “어떤 법이 가결되면 모든 것은 새롭게 시작한다”고 말했다.(1) 프낙과 르클레르크는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고, 이 법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기반한 유럽경제공동체(EEC)를 탄생시킨 로마조약(1957)에 위반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에두아르 르클레르크는 똑같은 책을 정가인 ‘미테랑 가격’과 할인된 가격인 ‘르클레르크 가격’으로 다르게 판매하면서, 랑법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프낙은 1983년 5월에 ‘유럽 가격’ 작전을 시작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프랑스에서 출판돼 벨기에로 수출된 책을 재수입해 판매하면서 5% 이상의 할인율을 적용한 것이다. 그렇게 프낙 매장에서 초록색 띠를 두른 작품들은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됐다.

대부분의 서점과 출판사들은 랑법의 적용을 위해 대동단결했지만, 서로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출판사가 랑법을 지키지 않는 서점에 책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다른 서점이 압박하는 식이었다. 법적 측면에서는, 유럽공동체 법원(CJEU)의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랑은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유럽의 판사들을 포섭했다. 그리고 1985년 1월 10일 법을 통해 CJEU는 랑법의 주요 조항을 승인했다.

1986년 3월, 프랑스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했다. 여당이 교체되자 프낙은 랑법의 개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프랑수아 레오타르가 도서정가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르클레르크를 위시한 대형 서점들은 1년에 몇 번씩 특정 기간 동안 5% 이상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1989년 2월에 FFSL은 르클레르크가 1988년 2월 이후 3,000회 이상 랑법을 위반했다면서 르클레르크를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 빈도만 줄었을 뿐, 르클레르크는 계속 랑법을 위반했다.

1990년대 말부터 온라인 판매 사이트가 활성화되고 특히 2000년 9월 아마존프랑스(Amazon.fr)의 등장으로, 랑법의 적용조건이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기원 상사부는 2008년 5월 6일 법에 의거해 아마존과 알라파주(Alapage, 이후 폐업)가 책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구매가격에 상당하는 상품권을 제공한 것을 위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러나 배송비 무료는 위법이 아닌 것으로 2009년 항소 법원에서 확정됐다. 2014년 6월에 의회는 일명 ‘반(反)아마존’ 법을 채택해 인터넷으로 판매되는 서적에 대해 5%의 할인과 무료 배송 혜택을 동시에 제공할 수 없게 했다. 이에 아마존과 프낙은 항의의 뜻에서 배송료를 0.01유로로 책정했다. 2011년 11월 11일 발표된 전자책 가격에 관한 법은 랑법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 전자책의 가격 책정 권한을 주었고, 단 프랑스 국내외의 모든 소매점에 똑같은 판매가격을 제시하도록 했다. 

 

제정 40주년을 맞은 랑법, 개정이 시급해 

올해로 제정 40주년을 맞은 랑법은 도서 관계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랑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기미가 보이면 즉각 항의에 나선다. 2008년 5월에 경제현대화법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의원 1명과 신 중도파(Nouveau Centre) 소속 1명이 5% 이상 도서할인이 가능기간 2년을 줄이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문필가협회(SGDL), 국립출판노조(SNE), 프랑스서점노조(SLF)는 공동성명을 발표해, 1995년 정가제를 폐지한 영국을 예로 들면서 시장 규제 완화가 초래한 결과들, “서적 공급의 감소, 평균 가격의 상승, 시내 서점의 소멸” 등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결국 이 수정안은 철회됐다. 2008년 6월 20일에는 SLF가 ‘책을 위해(Pour le livre)’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제출함으로써, 1981년 법을 “주축”으로 하는 “프랑스의 문화적 모델”에 대한 서점들의 “무한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그동안 도서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특히 디지털 세상이 도래했음에도, 랑법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준으로서 여전히 건재하다. 1981년에 도서정가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있었지만(스페인은 1975년 국왕령으로 도서정가제 시행) 업종 간 협정(Accord interprofessionnel; 전 업종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내용의 협정)에 기반한 경우가 전부였다(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영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포르투갈(1996), 그리스(1997), 오스트리아(2000), 독일(2002), 이탈리아, 네덜란드(2005)는 랑법에서 영감을 얻어 도서정가제를 도입했다. 

2021년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가 SNE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만이 랑법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책은 다른 제품과 다르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랑법이야말로 그동안 프랑스 제1의 서적 판매창구인 독립서점(시장점유율 40%)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랑법은 또한 ‘소규모’ 출판사를 지키고, 비대중적인 작가의 작품도 세상에 나오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음반이 이런 지위를 누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날 음반 판매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디지털 음원이 확대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SNE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불행히도 오늘날의 도서정가제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마존에 맞서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는 일은 하루하루가 투쟁이었습니다.” 아마존은 여전히 랑법을 준수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는 경제 및 문화적 측면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고 프랑스 정계도 한목소리로 랑법을 지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시장에서 활동 중인 아주 강력한 주체가 우리의 원칙을 조금씩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모든 서적의 출판 및 유통 방식에 있어서 도서정가제를 교묘히 피해 갑니다.” 2019년, SLF의 대표 자비에 모니는 이렇게 말했다. 

교묘한 편법이 늘어나는 요즘, 랑법의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 

 

 

글·파트리시아 소렐 Patricia Sorel
파리 낭테르 대학 역사학과 교수. 저서로 『Petite histoire de la librairie francaise 프랑스 서점의 역사』(La Française, 2021)가 있다.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Daniel Garcia, ‘La véritable histoire de la naissance de la loi Lang(랑법의 탄생을 둘러싼 진짜 이야기)’, <Livres Hebdo>, n. 433, Paris, 2001년 7월 6일.

 

 

축제가 끝난 후

 

“황금기.”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랑의 시대’를 문화계는 그렇게 부른다. 문화관련 예산을 늘리고 예술인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랑의 시대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뇌리 속에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들은 자크 랑이 문화부 장관직을 내려놓으면서 사라져버렸다. 문화가 정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던 시절이 그립다. 올해는 1981년 5월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교수 3명이 함께 1981~1993년 자크 랑의 업적, 쟁점, 성과를 상세하게 정리해, 2021년 5월 책을 펴냈다.() 그들은 예술인도 아니며, 대학에서 예술분야가 아닌 정치과학, 정치사회학 및 역사학을 강의하고 있다.

공저자들은 “객관적인 판단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한 인간의 고뇌와 장관으로서의 활동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활기 넘치던 사회의 모습, 정치적 긴장감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프랑스 사회의 활기”보다는 자크 랑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장르, 정체성, 도시 문화와 같은 주제가 당시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되짚어 보고, “프랑스가 뒤처져 있던 부분”, 예를 들어 예술계에 여성의 비중이 작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문화’라 일컫는 것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활동범위를 정의했던 몇몇 중요한 선택에 대해 자세히 기술했다. 랑의 시대는, “자코뱅주의에 짓눌려 있던” 소수 문화의 정체성을 변두리에서 중심부로 옮기고, 청소년 문화와 그들의 명분에만 집중하지 않고 축제의 전반적인 가치를 살리고, 경제적 주체만을 직업으로 인정하던 인식에서 벗어나 대중의 창의성 및 예술관련 직업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이 시대를, 단순히 “문화정책을 시행”한 시기라거나 힙합, 파트리스 셰로(프랑스 영화감독-역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5번 채널이 등장한 시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문화적으로 대단히 풍요롭고 호사스러운 시기였다. 특히 고객층을 세분화해 수익성을 제고하고, 지역적 특수성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기준이 정립된 시기였다. 수많은 경쟁자를 양산했던 보편주의는 종말을 맞았다. 새로운 기준을 원하는 ‘전문가들’을 만족시키고자 작품의 ‘마케팅 포지셔닝’과 ‘표준화’가 시행됐다.

반면, ‘좌파의 축’들 중 하나였던 ‘문화를 통한 해방’에는 무관심한 시기였다. 덕분에 자크 랑의 뒤를 이어 문화부 장관이 된 우파 출신의 자크 투봉도 전임자인 랑이 추구했던 방향을 그대로 따를 수 있었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번역·김소연


(1) Vincent Martigny, Laurent Martin & Emmanuel Wallon (지도), 『Les Années Lang. Une histoire des politiques culturelles 랑의 시대. 문화정책의 역사』, 1981-1993,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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