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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랑스>의 ‘눈물’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랑스>의 ‘눈물’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2.03.24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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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뒤몽이 연출한 영화 <프랑스>(2021)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영화제목 ‘프랑스’는 국가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주인공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의 이름이다. 감독은 “프랑스라는 인물의 내면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영화가 국가 프랑스에 대한 풍자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굳이 프랑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에 어떤 의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주인공은 주로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원색 또는 삼색이 혼합 또는 조합된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기자회견장에 나온 마크롱 대통령은 많은 기자 가운데 프랑스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 자신의 질문에 마크롱이 대답을 할 때, 프랑스는 그 내용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이 주목의 대상이 된 것에 도취된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을 마크롱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라는 인물이 명성에 집착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는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는다

 

프랑스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험지역에 뛰어들어 현장 취재를 하는 열혈 여성 기자로 유명하다. 그녀가 취재하는 장면을 보면, 현장을 그럴듯하게 각색하면서 자신을 부각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다시 말해서, 그녀에게 카메라가 함께 한 현장은 위험 가득한 현실이 아니라, 자신이 주연이자 감독으로서 각본에 따라 통제하고 연출할 수 있는 연극 무대인 셈이다. 프랑스는 시사 프로그램 <세계를 향한 시선>을 단독 진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이슈를 브리핑하고 시사 관련 주요 논객과 정치인을 상대한다. 여기서도 그녀의 관심은 자신의 미모를 최대한 돋보이게 함으로써, 셀럽으로서 국민적 인기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프랑스는 “임무를 부여받은 느낌이며, 나의 시선을 통해 어떤 갈등에 관한 비전을 제시한다”고 자신한다. 사회자가 “모든 취재 영상에 항상 당신이 화면에 있다”고 지적하자, 프랑스는 “연출이 아니라 나의 스타일이자 탐방 취재 방식이다. 좀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접근을 하고 싶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할 필요가 있어서이다. 사람들은 내 취재 영상을 좋아한다”고 강변한다.

 

프랑스는 총알이 난무하는 위험지역에서 종횡무진하며 취재를 한다
프랑스는 총알이 난무하는 위험지역에서 종횡무진하며 취재를 한다

프랑스의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반복해서 드러난다. 카메라의 초점이 자동차 내부의 그녀에게 맞춰질 때, 초점이 맞지 않은 차창 밖의 풍경은 매우 흐리게 보인다. 또는 프랑스가 운전할 때, 자동차 앞 유리로 보이는 풍경은 커다란 스크린에 비친 풍경처럼 나타난다. 이러한 과장된 미장센 그리고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사운드트랙을 통해 프랑스와 세계 사이의 분리, 자신을 향한 관심밖에 없는 프랑스의 나르시시즘은 더욱 부각된다.

프랑스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 먼저 <세계를 향한 시선>의 PD 루는 언제나 프랑스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 그러나 진심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의 유명세와 스캔들 모두 자신의 프로그램 시청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의 남편 프레드는 소설가이다. 두 사람은 살가운 부부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관계(예를 들면, 프랑스는 돈을 잘 벌고 프레드는 아이를 잘 돌본다)로 유지되는 쇼윈도 부부처럼 보인다. 그들 사이에는 인간적인 교감이 없으며, 위로의 말도 형식적이고, 각자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프랑스와 프레드가 대화하는 장면의 투 쇼트에서, 두 사람은 마주 보지 않으며, 카메라의 초점이 맞는 프레드는 또렷하고 프랑스는 흐리게 보임으로써, 두 사람은 분리는 더욱 강조된다.

 

교통사고를 통해, 프랑스는 자신이 뉴스의 소재로 소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통해, 프랑스는 자신이 뉴스의 소재로 소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프랑스는 모로코 이민자 부부의 아들 바티스트를 차로 치는 사고를 일으킨다. 셀럽이 일으킨 교통사고는 화젯거리가 되고, 프랑스는 자신이 뉴스의 소재로 소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프랑스는 자신이 괜찮은 셀럽이라는 걸 과시하려는 듯, 바티스트 가족에게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보상을 한다. 여기에는 화목해 보이는 바티스트 가족에 대한 동경, 그들에게서 받는 감사와 찬사,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만족감이 뒤섞여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 가도를 달리던 프랑스의 삶에 생긴 균열을 암시한다.

대담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그 사고에 대해 질문할 때, 프랑스는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생방송 중에 자리를 뜬다. 이후, 프랑스는 태어나서 처음 눈물을 경험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프랑스 국기의 평등을 상징하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대사관의 디너 파티에 참석한다. 자선가와 은행가 등 초 부유층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자와 참석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옹호하며, “기업이 국가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는 타인에 대한 자신의 선물”이라는 말까지 한다. 프랑스는 화장실에서 마주친 부르주아 여성이 “당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라고 물으며, “사인해 달라”고 하는 해프닝(아마도 브뤼노 뒤몽 식의 웃음 코드)을 겪은 다음, 황급히 파티장을 떠나면서 눈물을 흘린다. <세계를 향한 시선>에 출연한 정치인이 “기자는 시청률, 정치가는 유권자가 필요해 선동한다는 점에서 같은 부류다. 그런데 기자는 수익성까지 추구하니 훈계질 따위는 하지 말라”면서 “너는 쓸모 있는 예쁜이”라고 조롱하자, 프랑스는 또 울음을 터트린다.

인간의 눈물에는 양면성이 있다.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운다. 눈물의 대상이 타인일 때도 있지만, 자신일 때도 있다. 프랑스가 처음 눈물을 흘릴 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반성과 바티스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이 다양한 상황에서 계속 반복되자, 그 눈물의 정체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에서, “사람들의 시선, 남편, 아이, 모두 다 버겁다.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불행하다. 행복의 조건을 다 갖췄는데 불행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 프랑스의 눈물은 자신의 불행을 나타내는 징표 같다.

 

프랑스는 알프스의 휴양지에서 만난 샤를과 사랑에 빠지지만 사기라는 것을 알게된다
프랑스는 알프스의 휴양지에서 만난 샤를과 사랑에 빠지지만 사기라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이후, 그녀에게는 계속 나쁜 일이 생긴다. 대표적인 악재는 프랑스의 남편과 아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과 프랑스가 방송을 그만두고 알프스로 휴양을 갔을 때 벌어진 사건이다. 그곳에서 프랑스는 라틴어 교수라고 하는 (이름부터 좀 의심스러운) 샤를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다. 샤를이 셀럽인 프랑스를 전혀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마음이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샤를의 정체는 프랑스에 대한 내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속임수를 동원한 기자이다. 프랑스가 사실을 알고 격분할 때, 샤를은 진짜 사랑에 빠졌다면서 매달린다. 프랑스와 샤를을 둘러싼 설정은 멜로드라마에 대한 풍자 가운데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진다.

불행의 나락 속에서, 프랑스는 다니엘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다니엘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성범죄의 전과가 있는 남자와 20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 남자는 다시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 프랑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는데, 인터뷰를 끝내고 다니엘의 남편에게 희생당한 소녀를 기리는 장소에 갔을 때는 처음으로 거절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소라고 해도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는 게 인간 세상이다.

결국 프랑스는 약간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현실을 긍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밝은 미래와 진보 따위를 믿지 않는 냉소주의에 빠진다. 그녀는 다시 찾아온 샤를에게 “다른 존재 이유는 없고 현재만 있다”면서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이때 분노에 가득 찬 청년이 길가의 자전거를 미친 듯이 부순 다음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을 위협하고 사라진다. 총알이 난무하는 위험지역에서 종횡무진하며 취재를 하던 프랑스는 자신 앞에서 펼쳐진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치 그런 세상이 없는 듯, 눈을 감는 것뿐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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