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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하는 아빠들
회생하는 아빠들
  • 송연주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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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제한> 포스터

 

<싱크홀> 포스터

2021년 한국 영화 흥행 5위권 내의 작품들 중에서 눈에 띄는 ‘아빠’들이 있다. 김지훈 감독의 <싱크홀>과 김창주 감독의 <발신제한> 속 아빠들이다.(1) <싱크홀>의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 싱크홀에 빠졌고, <발신제한>의 아빠는 아이들을 태운 차에 폭탄이 설치됐음을 알게 된다. 코미디와 스릴러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 속에서 아빠들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회생했을까?

 

무너진 집에서 아이들을 구한 아빠

<싱크홀>은 코미디 장르 영화로, 홍보용 장르는 ‘현실 재난 코미디’다. 영화는 서민에게 ‘집’이란 얼마나 마련하기 어려운 대상인지를 짚으며 시작한다. 37세 회사원인 동원이 신축 빌라로 이사를 온다. 그는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직장생활 11년 만에 ‘집’을 마련한 가장이다. 물론 3억 9천만 원의 집값에 대출을 ‘풀로 땡겨’ 삶의 여유가 크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아들 수찬과 아내를 위한 ‘우리 집’을 ‘서울’에 마련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동원의 아내는 ‘내 집’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에 행복해하고, 그간 고생한 동원을 위해서 이제라도 동원에게 경제적으로 힘이 돼주려 한다. 동원은 서울에 집을 마련했다고 회사에서 축하 박수까지 받는다.

동원과 이사 첫날부터 티격태격 다투는 빌라 주민 만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들 승태와 함께 사는 싱글대디인 그는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아들에게 대화를 시도하면 거절당하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담배는 나가서 피워라”, “PC방에 가지 마라” 정도의 잔소리와 아들의 공무원 학원비를 벌어다 주는 것뿐이다.

코미디 장르답게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두 아빠를 주인공으로 택했고, 싱크홀이 생기기 전까지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갈등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동원과 만수의 갈등에서 두 사람 모두 서민이지만, 그들 내의 경제적인 위계를 자연스럽게 노출한다. 동원은 5층 이주민이자 집주인이고, N잡을 뛰는 만수에게는 고용자가 된다. 만수는 2층 원주민이자 월세 세입자이며, 마치 ‘홍반장’처럼 동원의 동선에 등장해서 그의 피고용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동원은 아들 수찬에게 ‘우리 집’을 갖게 해준 아빠라면, 만수는 다 큰 아들 승태에게 공무원 학원비를 벌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지만, 신축 빌라 하자에 대응하는 둘의 태도는 닮았다. ‘집값’ 보다는 ‘안전’을 우선시한다. 두 아빠는 빌라 내부와 외부에서 발견되는 여러 하자를 보수하기를 원하지만, 입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동원이 11년 걸려 마련한 ‘우리 집’은 이사한 지 2주 만에 싱크홀에 빠져버린다.

싱크홀에서, 동원과 만수는 모두 아들을 구하려 노력한다. 여기서 ‘현실 재난 코미디’ 장르의 성격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위기의 상황에서 슬랩스틱을 벌이고, 현실적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환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동원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수찬을 구조한 뒤 다시 위층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평소 체력을 넘어서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 장면에는 아이를 구하려는 아빠의 절절함이 녹아있다. 또한 만수는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승태와 소통하는 데 성공하고, 이후에는 승태와 사람들 모두를 구하는 히어로가 된다. 싱크홀이 생기기 전에 구축했던 동원과 만수의 위계가 전복되는 것이다.

영화는 부실공사의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시스템을 비판하기 보다는, 개인의 인식변화를 강조한다. 동원에게 ‘집’과 ‘돈’에 대해 말하는 김 대리의 태도가 그렇다. 대출을 더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사야 한다고, 원룸에 살면 결혼조차 할 수 없다던 김 대리의 집에 대한 인식은, 싱크홀을 겪은 후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의 세계관으로 바뀐다. 그리고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사실은, 평범한 가장들이 직접 자신의 아이를 구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불꽃을 바라보는 아빠들의 시점에서 영화는 통합과 화합으로 낭만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아빠

<발신제한>은 액션, 스릴러로 구성된 ‘도심 추격 스릴러’다. 원작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감독:다니 델 라 토레, 2015)의 구성과 서스펜스 미스터리 요소를 대부분 따르면서도, ‘아빠’의 설정은 달리했다.

원작의 도입부가 스페인 바닷가 부촌, 고급 주택 속 시끄럽고 삐걱대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면, 

<발신제한>은 파도가 밀려오는 사진에서 시작한다. 카메라가 서서히 빠지면 사진의 전체가 보이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파도를 피해 달리는 아빠의 활짝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결말까지를 생각해보면, 사진은 문제의 6년 전보다 더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긴장감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음악과 함께 화면은 커트 되고, 고단하게 잠든 아빠, 바른 은행 PB센터 이성규 센터장의 얼굴로 이어진다. 잠든 그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아들 민준의 장난감 총이란 걸 알 수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활짝 웃던 사진과 달리, 아빠 성규는 아들의 장난에 피곤함을 호소한다.

성규는 바쁜 와중에도 직접 운전해서 두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아들에게 손흥민 사인볼을 선물하며 뿌듯해하는 아빠다. 그런 성규에게 발신번호 표시제한 번호로 전화가 온다. 현금으로 9억 6,000만 원을 준비하고, 17억 2,600만 원을 송금하지 않으면, 차량에 설치한 폭탄을 폭발시키겠다는 협박이다. 차량 시트에 장착된 폭탄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터지게 설계됐다. 차에는 아들과 딸까지 탑승한 상황이었다.

영화는 ‘성규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극 전체를 아우르며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협박범은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으로 미스터리를 형성한다. ‘협박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영화 중반, 협박범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다음 질문으로 미스터리는 이어진다. ‘그가 왜 이런 협박을 하는가?’다. 성규가 피해자이고 협박범이 가해자였던 그들의 구도는, 그 질문의 답 앞에서 뒤바뀐다. 6년 전 성규가 가해자였고, 협박범이 피해자였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협박범이 요구한 돈의 용도를 알고 성규는 무너진다. 그 돈은 바로 성규가 판매한 상품의 피해자들이 은행과의 소송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한 돈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빠, 성규의 잘못은 가족과 멀어지면서까지 열심히 일한 죄, 은행이 마련한 매뉴얼대로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죄였다.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매뉴얼대로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고, 피해자가 발생했다. 성규는 피해를 은폐했고, 이 실적으로 승진을 했다. 피해를 당한 협박범의 아내는 임신한 채 생을 마감했다. 협박범은 예비 아빠였지만, 성규로 인해 아빠가 되지 못했다.

성규는 그에게 사과하고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지만, 사적 복수를 저질러버린 협박범에게 미래란 없다. 성규는 딸 해인을 지켜내는데 성공했고, 협박범 또한 살리려 노력했으나 폭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기적처럼 홀로 생환한다. 그리고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은행을 상대로 싸우기까지 하는 ‘바른 아빠’로 회생하면서 히어로가 된다.

<싱크홀>과 <발신제한>의 주인공 아빠들은 경제적 여유를 꿈꾸는 시민이자, 아이를 아끼는 부모다. 그들은 ‘싱크홀이라는 재난’ 혹은 ‘협박이라는 위기’에서 직접 자신의 아이를 구해냈다. 이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의 표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빠들의 ‘회생’과 ‘낭만적 해결’이 주는 대리만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1)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싱크홀>은 8월에 개봉해 219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361만의 관객들이 찾은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에 이어 흥행 2위를 기록했고, <발신제한>은 <싱크홀>보다 2개월 앞선 6월에 개봉해 95만여 명의 관객이 들어 흥행 5위를 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 연간 이용 순위에서 밝히는 한국 영화 온라인 이용 건수는 <싱크홀>이 55만여 건으로 1위를, <발신제한>이 35만여 건으로, 47만여 이용 건수를 기록한 박정배 감독의 <도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모가디슈>는 온라인 개봉을 하지 않았기에, 온라인 이용 건수 차트에는 등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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