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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는 왜 시민이 증발한 모종의 지배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나
근대국가는 왜 시민이 증발한 모종의 지배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나
  • 김유라
  • 승인 2022.07.21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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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더 늦기 전에, 정치 다시 읽기>

공상적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생시몽주의 주창자인 생시몽(1760~1825)은 백작이었지만 백작이라는 직위가 시민이라는 직위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작위를 내던졌다. 그의 말은 새로운 국가의 도래를 염두에 두었거나 염원하였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18~19세기를 거치면서 국가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인 국민국가가 서구를 중심으로 실체를 드러내어 20세기가 되면 세계를 빼곡하게 채우게 된다.

생시몽이 시민으로서 함께하기로 한 희망의 공동체가 국민국가였는지는 애매하다. 아마 아닐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에 든 공상적이란 말이 유토피아와 연관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는 이상향이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생시몽을 비롯하여 비록 그와 반대입장에 섰지만 근본지향은 같은 마르크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의미 있는 성찰을 남긴 헤겔 등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에게 근대에 등장한 국민국가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조지 오웰의 오세아니아정도는 아니지만, 유토피아에서는 한참 멀고 대체로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어떤 곳이다.

대체로 디스토피아로 변하는 듯한 현재의 국민국가에서 ()공간이나 ()공간과 같은 무익한 회피성 사념에 빠져들거나, 무망한 유토피아를 여전히 주창하거나, 디스토피아의 징후를 피해 숨어버리는 행동 모두 시민’(혹은 국민이라고 해도 좋다)의 삶의 방식은 아니다. 시민이 시민의 삶을 살기를 포기한다면, 디스토피아는 더 확고해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곳에서 더는 시민의 존재가 없을 것이다. 시민이 사라진 국민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모종의 지배체제에 불과하다.

근대의 공동체 기획은 왜 지배체제로 좌초하고 있을까. 인문학자 안치용은 이런 고민에서 더 늦기 전에, 정치 다시 읽기를 통해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근간으로 더 나은 국가를 먼저 고민한 선각의 생각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이 단순명료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한 국가체제이며, 들으면 아주 평범한 얘기지만 너무 자주 망각되기에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공준 즉 민주주의의 주인은 민()이라는 것이고, 그러려면 반드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 정치의 주체가 백작이 아니라 시민임을 굳이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겠다. 민주주의 부재와 정치 실종의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실천적으로 반성하는 데에 그들의 생각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저자는 본론에 해당하는 1~3부는 그들이 남긴 사유와 제안을 곱씹어보면서도 한국의 정치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게 여는글과 맺음말을 통해 동일한 맥락하에서 이곳 대한민국의 현실정치를 비판적으로 일별하였다.

더 늦기 전에, 정치 다시 읽기의 본문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근대국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서는 자크 랑시에르, 베네딕트 앤더슨, E. E. 샤츠슈나이더, 장 자크 루소를, [2부 근대국가 이전의 새로운 국가 모델 모색]에서는 마키아벨리, 토마스 모어, 토마스 홉스를, [3부 국가에 관한 원형적 모색]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들의 대표 저서와 함께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해설과 비평을 곁들여 그들의 정치사상을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현대에서 고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편의 정치철학 여행기이다.

 

저자 안치용

저자 안치용은 ESG연구소(옛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보통 전인적 지식인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ESG코리아 철학대표,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으로도 활동한다. 시민사회를 무대로 크게 두 방향의 일을 한다. 언론·연구 운동을 통해 지속가능성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등을 통해 대학생·청소년과 지속가능성을 비롯한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공유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경희대, 카이스트 등 여러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비전임 교원으로 책임경영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언론, 시민사회, 공공, 대학, 산업계 등 여러 논의의 장에서 ESG와 책임사회, 지속가능성, 현실정치 등을 주제로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종종 글을 써서 사회와 소통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문학, 신학, 춤 등을 공부하고 관심 있는 분들과 토론하는 삶을 산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이다.

경향신문에서 22년을 경제부·산업부·문화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2007년부터 2013년 퇴사 시까지는 사회책임 전문기자를 지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이 들어 경제학 석사(서강대신학 석사(한신대경영학 박사(경희대) 학위를 받았다.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착한 경영, 따뜻한 돈》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바보야 문제는 권력집단이야》 《예수가 완성한다》 《코로나 인문학등 약 40권의 저·역서를 냈다.

《더 늦기 전에, 정치 다시 읽기》

목차

책을 펴내며: 어떤 정치, 어떤 국가를 염원하는가

여는 글: 한국의 현대사, 한국의 정치 그리고 표류한 우리의 민주주의

1부 근대국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1장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증오하기

자크 랑시에르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2장 상상의 결과물이라 하여도, 민족주의는 무죄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3장 정당정치가 클릭 민주주의보다 우월할까

E. 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4장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자신을 얽매는 사슬을 끊어내려면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2부 근대국가 이전의 새로운 국가 모델 모색

5장 근대의 문턱에서

마키아벨리 군주론

6장 절대왕정 시대의 충신은 목이 잘리며 공화국을 꿈꾸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7장 여명에서 어둠으로 단호한 한 걸음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3부 국가에 관한 원형적 모색

8장 처자 공유의 철인이 통치하는 이상국가

플라톤 국가

9장 현실정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맺는 글: ‘정글민주주의시대, 정치 없는 정치를 넘어 새 정치는 가능할까

 

김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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