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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승리호>에서 발견한 가족에 대한 바람 *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승리호>에서 발견한 가족에 대한 바람 *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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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이야기도 담기기 마련이다. SF영화도 마찬가지다. 미래나 가상의 세상을 배경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상상되기도 한다.

사실 SF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현재의 영역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추측 혹은 상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SF영화에는 가족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뿐만 아니라, 기대와 바람 등까지 담겨 가족에 대한 현재의 담론이 더욱더 명확히 드러난다.

2003년에 개봉한 SF영화 <원더풀 데이즈>(김문생)와 <내추럴 시티>(민병천)에서는 가족, 가족관계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마치 미래에는 가족 관계가 붕괴하고, 개인만 남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단순한 일반화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그랬다.

2021년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에서는 다양한 가족이 등장한다. 한국 SF영화로서 VFX 기술, 트랜스 내셔널 영화로서의 성취 등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승리호>가 담아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여러 인식과 바람을 찾아보고 싶다.

 

<승리호> 포스터

- <승리호> 속 부녀 관계, 한부모 가족

2092년 지구에 푸른 하늘과 숲은 사라졌지만, 가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순이(오지율, 고동연, 김도아)와 아빠 김태호(송중기), 꽃님(박예린)과 아빠 강현우(김무열)라는 부녀 관계가 등장한다.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아버지와 딸로 구성된 한부모 가족의 모습도 각각 순이와 강현우의 죽음으로 오래 유지되지는 못한다.

<승리호>에서 태호는 기동대 시절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다 아기 순이를 구하게 되고, 순이의 아버지가 된다. 단속과정에서 순이의 청력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태호는 괴로움 속에 기동대를 그만두고, 순이는 사고로 죽고 만다. 현재 태호는 우주를 떠돌고 있는 순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쓰레기 수거 우주선 일을 하며 돈을 모으는 중이고, 죄책감과 그리움에 괴로워하는 중이다.

과학자 현우는 아픈 꽃님을 살리기 위해, 연구 중이던 나노봇을 꽃님에게 이식했다. 그로 인해 꽃님은 다른 나노봇과 소통이 가능해져, 죽어가는 나무 등을 살려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추게 됐다. 나노봇 덕분에 꽃님은 살아났지만, 꽃님의 능력을 노리는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다. 현우는 납치된 꽃님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죽고 만다.

<승리호> 속 미래의 두 아버지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하며, 그들의 딸은 귀엽다. 위협받는 딸과 그런 딸을 구원하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아빠라는 (이전 영화에서 종종 본) 꽤 익숙한 부녀 관계가 미래에도 지속되고 있다. 두 아버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래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용감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가 바라는 부모의 모습, 아버지의 모습인 걸까?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승리호>에서는 소위 전통적인 범위의 가족보다는 좀 더 확대된 범위의 가족이 등장한다. 한부모 가족 역시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은 아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구성되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 역시 결혼이나 입양으로 시작되지 않은 ‘유사 가족’이나 비유적인 의미로서의 가족에 가깝다.

승리호 선원들은 처음에는 꽃님을 그저 큰돈을 벌게 해줄 로봇으로 여겼다. 그러나 점차 동생으로, 조카로, 딸로 여기기 시작한다. 딸을 잃은 아픔이 있는 기동대 출신 태호,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장 선장(김태리), 갱단 두목 출신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작살잡이 로봇 업동(유해진)은 꽃님을 살리는 과정에서 더욱 가족 같아진다.

 

<승리호>에서 꽃님과 태호
<승리호>에서 꽃님과 장선장

가족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노력은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행동보다는 가족을 구하겠다는 사적인 행동에 더 가까워 보인다. <승리호>는 지구 환경 파괴 등 인간의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인류를 위한 노력이라는 거창한 명분 대신, 딸 같고 조카 같은 아이를 지키고 싶은 지극인 사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소위 전통적인 가족의 아침 식사 장면까지 등장한다. 엄마, 아빠, 자녀라는 전형적인 역할은 없지만, 분명 서로에게 힘이 되는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혈연도, 인간과 로봇이라는 경계도 뛰어넘은 확대된 범위의 가족이라 하겠다.

 

- 그리고 가족에 대한 바람

현재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존재한다. 소위 ‘정상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화 중이다. 한부모 가족, 동성 가족 등 가족은 더 이상 남녀, 법적 부부, 혈연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물론 관련한 인식 차이와 갈등도 존재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승리호>는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는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 밖 현실에 기반 한 모습으로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가족에 대한 시선,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승리호> 속 가족의 모습을 보며, 궁금해진다. 과연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가족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얼마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게 될까? 과연 함께 행복할까? 미래도 또 다른 시간대의 현재이기에, 현재의 모든 가족도 정상, 비정상 구분 없이 인정받고,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 송영애, ‘한국 SF영화 <승리호>와 <서복>에서 발견한 가족’, 김경욱, 서곡숙 외, 『영화와 가족: 그렇게 가족이 된다』, 르몽드, 2022, 70~81쪽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 재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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