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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종족주의자들의 ‘일본 기억법’
친일종족주의자들의 ‘일본 기억법’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3.03.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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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의 교육철학 방향을 제시하는 일본 문부과학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지난해 고등학교 검정교과서에 나오는 ‘조선인 강제연행’이나 ‘종군위안부’ 등의 용어를 정정하도록 출판사에 직접 요구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이전에는 일본유신회 등 우익들의 요구에 일본 정부가 화답해 출판사에 정정을 권고하면 출판사가 정정 신청을 하는 형태로 일본 교과서가 수정됐는데, 지난해 통과된 일본 검정교과서의 경우 이런 형식도 갖추지 않고 일본 정부가 직접 출판사에 특정 표현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종군위안부’는 ‘군이 동원했다’는 맥락이 삭제된 ‘위안부’로, ‘강제연행’은 ‘동원’으로 수정됐다.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가 한·일 역사를 왜곡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했을 때에도,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 표기)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명확히 표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된 여인’이라는 표현을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여성’으로 하여 일본군의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2006년 국제해양회의에서 독도 인근 해역의 해저지명 등록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은 같은 해 4월 독도 주변 해역에 해양 탐사선을 보내는 등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노무현 정권은 그 이듬해인 2007년 일본의 ‘도발’ 행위에 보란 듯이, 모나코에서 열린 제20차 해저지명소위원회(SCUFN)에 우리식 동해 해저지명의 등재를 확정시켰다. 해저지명소위원회를 통과한 한국식 동해 해저지명은 ‘강원대지’, ‘울릉대지’, ‘우산해곡’, ‘우산해저절벽’, ‘온누리분지’, ‘새날분지’, ‘후포퇴’, ‘김인우해산’, ‘이규원해산’, ‘안용복해산’ 등 총 10개다. 동해 해저의 지명이 한국식으로 국제해저지명집에 등재되는 것은 지난 1974년 국제등재 업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인 셈이다.

 

<세종시 새롬고에서 학생들이 일본에 역사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독도 플래시 몹을 하고 있다. 2019. /출처=뉴스1>

독도와 동해바다를 둘러싼 일본의 도발은 끊이지 않는다. 거의 해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들이 시위하듯 독도 주위를 맴돌고, 우리 국민들의 합법적인 독도 방문조차도 문제를 삼는다.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범죄행위도 일부러 망각의 분칠로 윤색한다.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이 1993년 일본 검정교과서부터 2022년까지 30년간의 사회과 계열 교과서를 조사한 결과, 1993년에는 현대사회, 윤리 등 역사 외 과목 교과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담겨 있었지만 2022년의 역사계열 외 교과서에서는 위안부 관련 기술이 대부분 빠졌다. 세계사탐구 교과서 12종 중 2종, 공공 교과서 13종 중 1종에만 위안부 관련 기술이 실렸고, 윤리 교과서 5종은 모두 위안부 문제를 싣지 않았다. 이 단체의 와타나베 사무국장은 “그 결과 일본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사실들을 배울 수 없게 됐다”라고 지적한다. 교과서가 한반도 침략의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한국 근대사를 다뤘다는 일본 내의 비판도 적지 않다.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일본 교과서 대부분이 일본의 침략을 ‘한국 병합’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제국의 패망, 강제적 식민지화의 실태를 덮기 위해 일본이 만든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문제는 물론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까지도 일제의 강제성이 아닌 피해자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었다며, 피해보상을 철저히 외면한다. 독일이 자국의 역사 교과서에 홀로코스트 비극과 강제동원 사실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인근 폴란드와 체코 침공 등을 철저히 반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것은 일본 국내 정치문제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집권당이 우파세력을 결집시켜 표를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이런 외교적 무리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시다를 비롯, 역대 일본 총리가 전범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은 내무 외무성 보고서를 통해 일본 측에 피해보상을 주장해온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 대해 “국내 정치를 위해 일본을 의도적으로 악자(惡子)로 만들고 있다”고 평가해 한일관계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노무현 정권은 모든 국면에서 의도적으로 악자를 만들고, 이 악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이 정당함을 호소하는 정치 수법을 쓰고 있다. 또한 노 정권은 독도를 소재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부채질하고 있다.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임기 중에 반일 강경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1)

“역사를 왜곡하는 나라, 한국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 일본은 (한국과의) 갈등을 없애려고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왔다. 경제 지원 명목의 거액 배상(한일협정), 다케시마(독토)라는 일본 고유 영토의 상실, 사실 오인에 근거한 교과서 관련 불필요한 사과, 위안부 문제로 인한 불필요한 사과가 그러하다.”(2)

일본 정부의 이런 비상식적인 자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일본 정부의 비정상성은 극우 정권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의 대(對)한반도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암약해온 친일종족주의자들의 반(反)민족적 역사 인식에 기인하는 바 크다.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친일성향을 드러내는 우리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흡사하다. 특히 우리의 친일 지식인들은 근래 들어 ‘전통적’ 한미일 혈맹관계를 최우선시하는 뉴라이트 세력과 보수언론인들, 학문적 성과보다는 공중파 방송의 입담 경쟁에 치중하는 미디어 지식인 그룹,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활발한 ‘총궐기’에 힘을 얻어 일본 극우 매체와 보수언론 및 인터넷 매체 등에 경쟁이라도 하듯, 선정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행여 누구라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나 친일세력을 비판하면, 반일종족주의자로 몰아붙이며 ‘반일=친북=좌경=빨갱이’라는 등치 관계를 적용해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전방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뉴라이트 운동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자유시민연대’ 대표를 지낸 한승조(전 고려대 명예교수, 1930~2017)가 2005년 4월 일본 극우 잡지 <정론(正論)>에 게재한 글을 보면, 그가 고려대 정경대 학장을 지내는 등 30년 이상 교수로 활동했고,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자타가 공인한 ‘애국자’라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 스탈린은 민족 이주정책을 썼기 때문에, 한국인들을 시베리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을 것이고, 한국민은 사라질 뻔했다. 하지만 일본 밑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민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밑에서 경쟁의식을 느끼며 민족의식이 생길 수 있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수준 이하의 좌파적 심성 표출 중 하나가 종군위안부 문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성(性)도 혁명의 무기로 활용된다.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을 성적인 위안물로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일본이 한국 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한 것도 전쟁 동안 일시적인 예외의 현상이었다. 그런데도 굴욕을 당했다는 노파를 내세워 과장된 사실을 내세우며 몇 번이나 보상금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고상한 민족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일본 지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조기 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 

그의 발언은 박정희 시대의 독재적 경제지상주의를 예찬한 ‘안병직 류(類)’의 근거 없는 ‘친일예찬’ 및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이 닿아 있으며, 탈근대론자 ‘이영훈(전 서울대 교수)류’의 ‘정신대 자발적 취업론’과도 연결된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편향된 역사 인식을 심어준다며, 그에 대한 대안 모색을 명분으로 내세운 ‘교과서 포럼’이 2005년 출범했을 때에도, 이 포럼의 운영이사로 참여한 이영훈 교수를 비롯해 뉴라이트 세력은 친일적인 사고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급기야 이들은 이듬해에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펴내, 일본 극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필진은 서문에서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해방전후사를 ‘재인식’하는 게 이 책의 출간 의도”라고 설명하면서,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는 식민, 친일, 독재 청산 등 일체의 과거사 정리를 중단하라!”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은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화와 권위주의 정권의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찬양, 나아가 체제 옹호적, 수구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곤 한다.

윤석열 정권의 핵심 참모들 중에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해온 세력들이 포진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태동했던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의 주축 세력들이 대통령실에 포진, 대통령의 외교 정책 기조를 입론하고 있다. 최근에 윤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측 책임이 아닌,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배상해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밀어붙이는 처사는 근대화론을 통해 ‘일본 책임론’을 부정한 뉴라이트 세력의 주장과 맥이 닿아있다는 인상을 준다.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찾아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 자체적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안을 양쪽이 공식 확인하고 일본의 면죄부에 쐐기를 박았다. 4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 5월에는 일본 히로시마 한·미·일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릴 전망이다. 이는 윤석열식 ‘셀프 배상’ 해법을 공인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다지는 과정이다. 윤 대통령이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3자 변제라는 기상천외한 해법을 낸 것은 그를 둘러싼 인적 관계의 특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핵관의 핵심으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장제원 의원을 비롯, 대북 강경파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임헌조 시민소통비서관 등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의 강제동원을 부정한 뉴라이트 운동의 열성파 간부 출신들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 따른 비판적 여론이 비등하자,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역대 최장'인 약 23분에 걸쳐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생중계된 방송에서 그는 연일 방일 외교에 비판을 쏟아내는 야권을 겨냥,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라고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며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라고,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 정권을 탓했다. 

일본 언론이 지난 16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와 독도 문제가 다뤄졌다고 보도하면서 일본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고 밝힌 윤 대통령의 발언이 새삼 ‘공허한 다짐’이었던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대통령실이 언급 사실을 부정했다가 모호하게 답변하는 등 해명이 오락가락해 의혹은 증폭됐고 일본은 위안부, 독도 문제가 거론됐다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모습이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윤석열 정부의 ‘굴종 외교’ 비판에 박차를 가했고, 특히 <한겨레>는 기명 칼럼을 통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대한민국 대통령 면전에 대고 했다는 것”이라며 “문제는 능멸을 당하고도 당한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저 희희낙락”(3)이라고 혹평했다. 

자칫 이 글을 쓴 칼럼니스트가 정권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바이든-날리면’ 해프닝을 보도한 MBC가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의 우려대로, 우리는 혹시라도 탄압을 받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국산 소주와 일본산 맥주를 섞은 소위 ‘폭탄주 회담’을 한 것을 정상회담의 외교성과로 꼽는다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야 한다. 행여 그의 발언에 토를 달거나, 그 진위를 의심하면 ‘반일종족주의자’로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중앙일보>, 2006년 4월 5일.
(2) 코우모리 요시히, <머니투데이>,2019년 8월 7일.
(3) 손원제, <한겨레> 2월 23일 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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